- 101대왕호로 1971년 첫 승선
- 인도양 거센 삼각파도에 후덜덜

- 유류파동에도 삼원21호 출항
- 1년에 청새치 1000t 잡아 성공
- 침몰 위기 임기응변으로 모면
- 선원 부상땐 직접 '수술'도 감행

- 오양수산 근무땐 외국어선과
- 카드놀이·축구로 '국위선양'

- 1987년 태평양 피지서 조업 중
- 사람 뼈조각 발견돼 미스테리로
- "한국 원양어선 전성기에 한몫"

그는 1944년 제주도 북제주군 추자면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이 어업에 종사해 자연스럽게 바다를 동경하게 됐다. 1964년 부산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군입대한 그는 월남전에 파병돼 복무하다 1967년 제대했다. 이후 부산의 한국어업기술훈련소에 입소해 교육을 마치고 1971년 5월 대왕수산의 101대왕호에 올랐다. 참치연승선으로 통조림용 참치를 잡는 배였다.
■인도양 조업

그는 101대왕호를 타고 인도양으로 나갔다.

"막상 현장에 가니까 (훈련소에서) 실습할 때하고 상황이 완전히 다른 거야. 파도가 엄청나더군. 큰 파도가 치면 선실에서 못 나가. 겁이 나니까. 또 그때는 기계가 모두 수동이라 조업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어요."

초창기 한국 원양어선은 남태평양에서 조업을 하다가 인도양으로 점차 어장을 확대했다.

"우리 배는 인도양 자오선 40도까지 내려갔어. 거기는 5~8월에 알바코(Albacore·날개다랑어)가 주어종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초창기였지. 당시 그 바다는 아주 거칠었어. 저기압이 끼면 파도가 3개 겹쳐서 몰려오기도 하고. 배 양쪽에 줄을 고정시켜 놓는데, 유사시 그 줄을 꽉 잡아. 그래도 삼각파도가 오면 선원들은 일손을 놓고 창고 안으로 피했어. 나는 브릿지(배의 상부 구조물)에서 조타를 하다가 삼각파도를 만나면 너무 겁이 났어. 파도가 오는 게 마치 창이 날라오는 것 같으니까."

그는 이런 생활을 어기 때마다 반복했다. 당시 인도양 어장은 인접국들과 마찰 없이 조업하던 시기라 파도만 아니면 큰 위험은 없었다.

"인도양의 한국기지는 아프리카 케냐의 몸바사(동부아프리카 최대 항구)에 있었는데, 30척 가량 드나들었어. 나중에는 모리셔스 공화국으로도 드나들었지. 그때, 고기가 만선이 되면 기지에 들어갔는데, 그 기간이 3~4개월 정도 됐어. 케냐는 그때도 한국보다 못 살았지."

101대왕호는 개척선으로서는 성공적이었다. 특히 그는 악천후 속에서도 선원 실종사건이 한 번도 없었던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

"배가 저기압 속에 들어가 비가 쏟아지면 물동이로 쏟아붓는 거 같아. 그럴 땐 일을 전혀 못해. 엔진을 끄고 파도를 타면서 버티지. 하지만 배의 복원력은 엄청나요. 20m나 되는 파도를 넘지. 물론 평소 안전사고에 철저히 대비를 하죠. 기상이 안 좋으면 항상 선원들한테 몸에 줄을 매놓도록 시켜. 그래서 대왕호에서는 실종사고가 하나도 없었어. 그건 내 원양어업 인생 35년 전체를 봐도 마찬가지야."

1975년 귀국한 그는 흥양통산 소속 삼원21호에 오른다. 이 배는 350톤급 참치연승어선이었다. 당시는 1차 유류파동으로 시끄러운 때였다. 20~30달러 하던 기름값이 100달러까지 치솟았다. 부산항에 묶여있던 삼원21호는 우여곡절 끝에 출항했다.

"처음엔 하와이로 갔어요. 거기까지 13일 걸렸지. 하와이에서 기름 보충 등을 하고 출항하려는데 문제가 생겼어. 우리 배 1항사가 '출항 오더'를 안 받았다는 거야. 그래서 이틀간 묶여 있었지. 그 뒤 과테말라로 갔어. 거기까지 또 열흘 걸렸지. 그곳 어장은 청새치가 주어종이었는데 고기가 참 많았어. 그때 1년에 1000톤 정도를 잡았으니까."

■선상에서의 긴급대응

이재옥 선장은 참치어선에서만 30년 넘게 일했다. 그 기간은 한국 원양어업의 전성기였다. 사진은 당시 잡은 참치를 배 갑판에 놓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이재옥과 선원들.

삼원21호는 과테말라 어장에서 조업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대서양으로 이동하려고 파나마로 운항했다. 파나마운하를 건너 대서양에 들어선 후 사흘쯤 지났을 무렵 갑자기 배에 물이 차기 시작했다.

"당시 배 기관장이 뛰어오더니 큰일 났습니다 선장님, 이러는 거야. 기관실 밑바닥에는 청수(배에 필요한 물)를 빨아올려서 냉각시키는 배관이 있고, 그기에 볼트가 4개 있는데, 거기로 물이 올라온다는 거였어. 바로 가 보니까 물이 콸콸 올라오는 거야. 앞이 캄캄했지. 그대로 두면 배가 침몰할 거 같더라구.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4개 중 2개는 아직 괜찮아 보였어. 모터로 물을 계속 퍼내면서 볼트가 빠진 부분을 막는 용접을 했지. 그럴 때는 당황하면 안되고 임기응변이 있어야 돼. 자칫 당황하면 대서양 한가운데서 침몰하는 거지. 겨우 물을 퍼내고 용접을 끝내니까 더는 물이 안 들어왔어. 그런 뒤에도 나는 걱정스러워 그곳을 계속 점검했지. 그러면서 브라질 어장으로 내려갔어. 거기까지 또 13일 걸렸지. 그곳에서 우리는 어기 동안 100만 달러어치 정도를 잡았는데 당시에는 엄청나게 큰돈이었어."

1977년 귀국한 그는 흥양통산의 세호1호를 타고 다시 인도양으로 알바코 조업을 나갔다. 그는 선장이라면 기본 응급처지는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위급한 상황에서 환자의 배를 찢어 바늘로 꿰맬 수 있다는 각오가 없으면 망망대해에서 선원의 목숨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느날 배의 낚싯줄에 상어 한 마리가 올라왔는데, 베트남 선원이 물렸어. 상어가 그 선원 다리를 꽉 물고 안 놔주는 거야. 다른 선원들이 상어의 턱을 억지로 벌려서 다리를 꺼냈는데, 피범벅이었지. 그럴 땐 과감하게 수술을 해야죠. 딱히 배운 건 없었지만, 과거 해군 중위가 배에 탔을 때 어깨너머로 꿰매는 걸 좀 배웠었지."

■피 터지는 축구시합

그는 선장으로서 말 못할 고충도 많았다고 토로했다.

"배를 타면 선장 자기 몸도 중요하지만, 선원들이 아프는 게 제일 머리 아파요. 혹시 다치거나 환자가 발생하면 망망대해에서 골치거든. 그 다음에는 기관 고장이고. 고기 안 잡히는 거 역시 머리가 아프죠. 선장들은 브릿지에서 편하게 있는 줄 아는데, 머릿속에는 늘 고기 잡을 생각뿐이야. 어획이 나쁘면 잠도 잘 안오고. 그런 때는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기도 하고."

1984년 오양수산으로 자리를 옮긴 이재옥은 오양87호를 몰고 태평양으로 떠난다. 이 배는 참치선망어선이었다. 그리고 1년 뒤에는 오양107호에 승선해 다시 인도양으로 나갔다. 이때는 외국 어선원들과도 자주 어울렸다.

"오양87호를 타고 있는데, 회사에서 오양107호로 옮기라고 했어. 이 배는 독항선으로 횟감용 참치를 잡았지. 그때는 기지에 들어가면 중국 선원들을 자주 만났어. 같이 놀고 그랬죠. 주로 카드놀이를 했는데, 그러면서 들은 정보를 조업할 때 써먹고 그랬어. 친해진 뒤로는 기지에서 양쪽 팀이 축구시합도 하고 그랬지. 그때는 축구를 하면 피 터지게 했어. 거의 국가대표 선수들처럼 뛰어다녔지. 이상하게 지기 싫더라고. 우리가 먼저 골을 먹었는데, 내가 열을 받아서 '오늘 이대로 지면 한 놈도 살아서 배에 오를 수 없다'고 엄포를 놨죠. 그래서 죽어라 뛰었는데, 결국에는 역전을 했어. 뱃사람들이라 거칠기는 똑같았는데, 중국 애들은 근성이 별로 없었어. 그래서 우리가 좀 세게 대했지. 그러다 중국 선원 한 명이 발목을 다쳐 입원한 일도 있어. 그때 우리 선원들의 애국심이 굉장히 강했거든. 가족도 가족이거니와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뿌듯함이 있었죠."

■고래뼈냐 사람뼈냐

오양107호에는 해병대 출신 선원이 한 명 있었다. 그런데 이 선원이 가오리의 독침에 맞아 기절한 사건이 발생했다.

"배의 주낙(낚시어구)에 가오리 한 마리가 감겨서 올라왔어. 가오리는 꼬리에 독침이 있는데, 이것이 선원의 머리를 탁 찔렀지. 지나가다가 찔린 거야. 그 독침은 낚시바늘처럼 빼내기가 힘들어. 다른 선원들도 그랬지만 해병대 출신 선원의 머리가 빡빡이였는데, 결국 독침 박힌 걸 빼냈지. 약을 발라주고 했지만, 당시 바다에서 응급조치란 것이 별 게 없었어. 물어보니까, 독침에 찔릴 때 번개가 치는 것처럼 정신이 없었다고 그러더군. 그 선원 혼자 미치는 거야. 눈이 풀리고 멍하게 앉아 있는데,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그를 귀국시켰지."

이재옥은 1987년 오양307호를 타고 태평양에서 조업할 때 이상한 뼈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우리가 야간에 한창 조업을 하고 있는데, 뼈조각 같은 게 하나 걸려서 올라왔어요. 아무리 봐도 그게 사람 대퇴골 같이 생겼어. 그곳이 어디였는가 하면 피지 쪽 바다였어. 피지는 과거에 상륙한 적이 있었지. 그곳 술집에 가면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어. 거기 원주민들은 덩치가 크고 힘도 쎄요. 옛날에는 식인종이었대. 피지뿐 아니라 그쪽은 작은 섬들에 식인풍습을 가진 부족이 많잖아요. 아무튼 사람 머리뼈 같은 것이 배에 떡 올라오니 다들 놀라서 보니까 그게 깨진 조각인 거야. 처음엔 고래뼈로 생각했는데, 그 뼈에 살점이 덕지덕지 붙어있는거야. 하지만 살점이 그리 오래된 건 아닌 것 같더라고. 그래서 1항사가 그 뼈를 자기가 가질려고 살점을 떼어내는데, 냄새를 맡아보니 아무래도 사람냄새 같은 거야. 나도 살펴봤지만 확신이 안 서. 그래서 버리라고 했어. 그런데 그날 그 지점에서 그런 뼈가 두 개 더 올라온거야. 그러고 보니까 얼마 전에 배 침몰사고가 있었다고 한 그 자리인 것 같기도 하고. 섬뜩해서 얼른 버리라고 했지. 지금도 생각하면 그게 뭔지 확실치 않아. 고래는 아닌 것 같고."

그는 오양수산 소속 어선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했다. 2004년 그가 원양어업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했던 항해 역시 오양356호였다. 2005년 그 배에서 하선한 뒤 육상근무로 전환했다.

"저는 참치어선만 30년 넘게 탔습니다. 그 기간이 한국 원양어업의 전성기였지요. 대단했습니다. 당시 원양어업에서 참치연승어선만 해도 300척이 넘었을 겁니다. 그때 원양어업은 한국경제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수산분야가 우리나라 발전의 기틀이 됐습니다. 거기에 저도 참치잡이로 한평생을 보내면서 한몫을 했다고 자부합니다."


※다랑어 선망어업

우리나라 참치잡이에 획기적인 변화를 준 어업이다. 다른 어업과 달리 일시다획성과 어군 추적, 투망 등의 측면에서 적극적인 특성을 지녔다. 보조 보트, 헬리콥터 등 기계장비와 과학적 어법으로 조업하는 형태다. 발달된 어로장비를 총동원해 어획 성과를 높이는 근대화된 어업인 셈이다. 어선 크기에 관계없이 16~25명 정도의 선원으로 조업이 가능하다. 일본의 경우 1945년 미국식 선망어업을 도입해 1960년부터 본격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1971년도가 출발점으로, 이재옥이 참치잡이에 뛰어든 해였다.

강성민 소설가

사업기획·참여: 부산시 수산자원과, 부경대 산학협력단,(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