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계약 생각에 손실 떠안아
- 원청사 갑질관행 도산 위기

사상 최악의 조선·해운 경기 불황 속에서 조선업 하청사들이 불공정 계약 관행에 두 번 울고 있다.

B사는 부산의 대형조선소 A사 앞에 공사비 지급 촉구 집회 신고를 했다고 16일 밝혔다. B 사는 2015년 1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계약을 맺고 선박 블록 탑재 작업을 했는데 A 사가 공정 변경에 따른 인건비와 작업비 9억여 원을 체납했다고 주장했다. B사 측은 "불황에 공사비 체납까지 겹쳐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반면 A사는 B사가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추가 작업을 요청한 것은 맞지만 공정 변경에 따른 대기비용과 추가 인원 고용· 작업 지연 비용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B사는 자신들이 추가 작업을 위해 지급한 근로자 임금 2억5000만 원이라도 달라고 요구했으나 A사 측은 7000만 원만 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조선업계에서는 이런 갈등의 원인이 불분명한 계약 관행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보통 원청사는 추가 작업이 필요할 경우 "시간이 촉박하니 작업부터 하라. 공정이 끝나면 비용을 정산하자"고 하청사에 제안한다. 한 하청사 측은 "선박은 건조 도중 설계가 바뀌는 경우가 다반사인 탓에 추가 작업이 불가피하다"며 "작업을 끝낸 뒤 정산하는 경우가 많아 원청과 하청이 생각하는 작업비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이런 관행은 수십 년간 되풀이되고 있지만 바뀌지 않고 있다. 향후 재계약을 원하는 하청사 입장에서는 원청이 제시하는 금액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B사 측은 "하청사가 산출한 공사비에 한참 못 미치는 돈을 받아도 재계약 탓에 울며 겨자 먹기로 합의한다"고 전했다.

다른 조선소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4월 STX고성조선해양의 임금체납에 항의하며 농성을 벌인 한 하청사는 "원청사는 공사 입찰 때 금액을 공시하지 않는다. 선박 구조물이 마무리되는 시점이 돼서야 자신들이 추산한 금액대로 계약서를 작성한다"고 주장했다.

부산고용노동청이 지난해 11월 도산한 73개 조선업 하청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69.9%가 원청의 '갑질'을 도산 원인으로 꼽았다. 46%(34개)는 불공정 도급 계약을 맺었다고 응답했다. 이 중 8곳은 도급 계약 변경에 따른 비용 증가분을 떠안았다고 밝혔다.

한국노동연구원 조성재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하청사가 전문 기술력을 갖고 대형화할 수 있게 해야 원청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며 "조선업계에서 계약 때 정확한 하도급 공사비를 산정할 수 있는 공동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박장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