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년전 쓰레기장 된 공·폐가
- 30그루가 어느새 500그루

- 어린이 체험 학습장으로 활용
- 죽어가던 마을 생기 되찾아

21일 오후 부산 영도구 봉래동 봉산마을. 깎아지른 듯 급격한 오르막길로 연결된 산동네 사이로 초록빛 블루베리 나무가 모습을 드러냈다. 빈 집터 곳곳에서 자라는 블루베리는 성인 남성 허리 높이만 한 나무부터 묘목까지 다양했다. 저마다 알찬 보랏빛 열매를 맺었다.

21일 부산 영도구 봉래동 봉산마을 주민들이 철거된 빈 집터에 만든 블루베리 재배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갓 수확한 블루베리의 달콤한 과즙을 맛보는 주민들의 표정이 흐뭇했다. “60대가 젊은 축에 속한다”는 산비탈 마을에 빈 집터를 활용한 이색적인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봉산마을 블루베리의 시작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을 일대에 널려 있는 공·폐가가 철거된 뒤 쓰레기장으로 변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던 주민들은 집터를 정리하고 블루베리 묘목을 기르기 시작했다.

공·폐가 철거 조건으로 3년간 공공용지로 쓸 수 있는 집터가 재배지로 활용된 것이다. 집터에 울타리를 치는 것부터 묘목을 나르고, 물·거름을 주고, 수확하는 전 과정이 주민들 손을 거쳤다. 헐값에 사들여 심은 30그루의 블루베리 나무는 어느덧 500그루 가까이 늘었다.

죽어가는 동네를 살려보자는 주민들의 의기투합은 통통한 블루베리처럼 결실을 보고 있다. ‘체험장’의 이름을 단 공식 재배지가 3곳으로 늘었고, 수시로 생기는 빈 집터와 마을 오솔길에도 블루베리가 들어서 마을 분위기를 톡톡히 살려내고 있다.

지난해 부산시 ‘마을공동체 역량 강화 공모’에 , 올해는 ‘행복 마을 만들기’ 공모에 선정돼 블루베리 재배를 통한 마을 살리기가 탄력을 받았다. 주민 문용선(여·68) 씨는 “쓰레기로 넘치던 빈 집터가 블루베리 덕에 산뜻해졌다. 이젠 빈 집터만 생기면 묘목부터 가져다 놓는다”고 말했다. 최국옥(65) 씨도 “다 함께 기르는 블루베리가 주민 간 소통까지 좋게 만든다”고 웃어 보였다.

재배지는 아이들 체험장으로도 활용된다. 지난 19일 영도의 한 어린이집에서 체험학습을 다녀갔다. 40여 명의 아이는 고사리손으로 블루베리를 만져보고 맛보는 시간을 가졌다. 봉산행복마을주민협의회 김정환 위원장은 “죽어가던 마을이 조금씩 살아나는 게 느껴진다. 체험장을 확대해 블루베리 마을로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영도에서는 주민들의 주도로 고구마 재배도 한창이다. 지난 5월 말 청학동 일대에 273평의 텃밭을 만들어 주민들이 함께 고구마를 기르고 있다. 곧 청학동 공·폐가 철거부지 2곳에도 관상용 고구마 텃밭이 조성될 예정이다.

박장군 기자 genera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