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궁 라이 박물관의 설립자 아궁 라이는
- 섬의 전통예술 보존과 예술가 육성을 위해
- 예술박물관을 세우고 리조트와 호텔도 짓는다
- 이 섬의 소년소녀들이 예술가로 자라나
- 우붓 회화라는 유파를 형성하게 됐다

인도네시아 발리(Bali)에서 거북이라는 뜻을 가진 ‘쿠라-쿠라(Kura-Kura)’ 버스를 타고 거북이걸음 걷듯 우붓(Ubud)으로 가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박물관이 앞을 가로막는다.

	우붓의 번화가에서 발리 전통음악 공연이 열리고 있다.

‘회화의 궁전’이라는 뜻을 가진 푸리 루키산(Puri Lukisan) 박물관. 박물관은 수카와티(Agung Sukawati, 1899년 1월 15일~1967년)를 감독으로, 보닛(Rudolf Bonnet, 1895년 3월 30일~1978년 4월 18일)을 큐레이터(curator)로 하여 1954년 건립된다.

보닛은 발리를 방문한 유럽 최초의 예술가 니엔캄캄프(WOJ Nieuwenkamp, 1874년 7월 27일~1950년 4월 23일)의 권유로 우붓에서 화실을 열고 평생을 살면서 전통 회화들을 수집, 보존한다. 박물관으로 들어서면 전설에 나오는 기묘하고 이상한 괴물이나 마녀를 그리는 바투안 회화(Batuan), 파스텔 색상으로 거대한 바다 경관 및 바다 생물과 에로틱한 장면을 즐겨 그리는 사누르 회화(Sanur), 종교 생활을 비롯한 일상사를 그리는 우붓 회화 등을 만나게 된다.

■‘우붓 회화’의 발상지

	발리 우붓의 명소 ‘원숭이숲’.

박물관을 지나서 자연보호구역인 ‘원숭이 숲’(Monkey Forest)에 이르는 길가엔 미술관들이 줄지어 서 있다. 영어로 올빼미, 신비한 새, 귀신 새로 번역되는 섬의 수호신 부룽한투를 그리는 화가 실라(I Wayan Sila, 1970년생)의 올빼미 박물관, 마음의 소리를 전통적인 기법을 사용하지 않고 점, 선, 도형으로 장식하는 화가 수제(I Nengah Sujena, 1976년생)의 고마네카 미술관(Komaneka Fine Art Gallery)은 여느 미술관과 달라 보인다.

원숭이 숲에서 되돌아 나와 여객선 터미널 파당바이(Padang Ba)로 가는 쁘라마(Perama) 버스 정류장을 찾아서 나선 길에도 펜데 박물관(Pendet Museum)이 발걸음을 막는다.

화가이면서 조각가인 펜데(I Wayan Pendet, 1936년 생)의 이름을 딴 박물관은 아이다 메구스(Ida Bagus Made Poleng, 1915년~1999년)가 1999년 4월 14일에 설립하여 2002년 12월 22일에 개관한다. 박물관은 공식적으로 우붓 출신 화가로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설립자 ‘메구스’의 터전과 작업실(The Home & Studio)로 불린다. 박물관으로 들어서면 펜데의 작품들, 종교의식이나 행사, 전통 인형극 와양(wayang) 공연 중에 나오는 가믈란(gamelan·인도네시아의 전통 음악 연주단 또는 그 음악)에서 다양한 악기를 는 연주하는 사람들, 전통춤을 추는 남녀, 사냥꾼, 어린이들을 익살스럽거나 해학적이고 웃음기 넘치는 모습으로 보여준다.

■아궁라이 예술박물관의 매력

	우붓 회화 계열의 그림.

박물관이 문을 닫자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어둠이 쌓이기 시작한다. 어차피 하루나 이틀 정도 머무를 계획인지라 ‘아무렴 어때, 몸만 뉠 수 있으면 되지’라는 생각이 오히려 여기저기 기웃거리게 한다.

‘박물관과 리조트’라는 간판이 특이하여 안내실로 가서 숙박비를 묻자 안내인은 하룻밤 100만 루피아(약 9만 원)부터 시작하지만 허풍 섞인 투로 “한국 사람은 특별히 할인한다”고 한다. 그러고는 가수 싸이(PSY)의 ‘강남스타일’을 흉내 내는 안내인의 춤 솜씨가 배낭을 저절로 내려놓게 만든다. 숙소는 뜨갈랄랑 계단식 논(Tegalalang Rice Terrace)에서 흘러내리는 하천을 한쪽 경계로 삼고 비탈진 언덕을 따라서 층층이 지은 전통 가옥으로 되어 있다.

여장을 풀고는 멀리서 악기 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나선 곳이 아궁 라이 예술박물관(Agung Rai Museum of Art·ARMA)이다. 설립자 아궁 라이(1955년 7월 17일 생)는 박물관에서 2km도 되지 않는 펠리아탄(Peliatan) 마을 출생이다. 그 마을에는 1927년부터 스파이스(Walter Spies, 1895년 9월 15일~1942년 1월 19일)라는 화가가 화실을 짓고 살았다. 보닛(Rudolf Bonnet)과 함께 그는 1937년 피타 마하 예술가 협동조합(The Pita Maha Artists Cooperative)을 설립해 섬의 전통 예술을 수집, 보존하고 젊은 지역 화가들을 교육하며 육성하기 시작한다.

■지역 예술의 미래를 대비하는 저력

아궁 라이도 한때 화가의 꿈을 꾸었지만 가난 탓에 그 꿈은 이룰 수 없었다. 그는 그림수집가가 되어갔다. 그는 섬의 전통 예술을 보존하고 젊은 예술가들을 육성하기 위하여 박물관 ‘아르마’(ARMA, Agung Rai Museum of Art)를 설립한다. 그의 열정은 그림의 수집과 보존, 화가의 육성에 그치지 않고 문화예술 세미나와 공연으로 이어진다. 그는 관객뿐 아니라 일상에서 탈출하여 대안을 찾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피난처로 박물관과 리조트 호텔을 한자리에 만든다. 바로 그 박물관에서 전통 공연을 보고 리조트 호텔에서 지낸 하루는 일주일로 연장됐다. 바깥에 나가지 않고 낮에는 산책을, 밤에는 전통 공연을 보고 지낸 7일은 여러 가지를 되돌아보게 했다. 이방인 예술가와 지역 예술수집가의 열정으로 섬마을 소년소녀들이 예술가의 꿈을 키우고 자라면서 우붓 회화(Ubud Painting)라는 한 유파를 형성하고 있다.

내 고향 부산에도 그렇게 많은 예술가과 예술의 열정- 전통 유산을 복원하고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고자 하는 열정-이 잘 숨 쉬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민병욱 부산대 국어교육과 교수 bmw@pusa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