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업·연애 등 또래 공감글로 인기
- 창업팀 ‘소프터’ 전국 보급 목표

‘쌀쌀한 가을이네요/선선한 날씨에 설레는 오늘이네요/이런 날에는 소주 한 잔 하고싶네요/하지만 공부에 바쁜 지금이네요/취업준비에 치이고/시험준비에 힘들고/사람 때문에 아프고/사랑 때문에 지쳐도/매 순간 바쁘게 사는 우리는/가장 아름답네요’.(‘지금 우리는’, 공대 시인)

19일 부산대 새벽벌 도서관에 설치된 이야기자판기 ‘한바닥’ 앞에서 이 기계를 고안한 소프터 학생들이 자판기를 작동하고 있다. 서순용 선임기자 seosy@kookje.co.kr

이력서 쓰기에 지쳐 짧은 한 편의 글이 목마른 날, 취업준비생의 고된 마음을 달래주는 ‘글 자판기’가 부산대학교에 생겼다. 부산대 창업팀 ‘소프터’는 최근 글 자판기 ‘한바닥’을 부산대 새벽벌 도서관에 설치했다고 19일 밝혔다. 글 자판기는 학생이 쓴 글을 손바닥만 한 종이에 출력해주는 기계다. 글 자판기 이용 방법은 일반 자판기와 같다. 이용자가 자판기에 등록된 70편의 글 중 하나를 선택하면 가로 8㎝의 영수증 재질 종이에 글이 인쇄된다.

자판기에 들어있는 글은 ‘지금 우리는’ 같은 시부터 1500자 분량 단편소설까지 다양하다. 인쇄 비용은 무료다.

자판기 속 글 대부분은 20대 또래의 글이다. 소프터는 애초 취업과 학업 등으로 힘들어 하는 20대끼리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위로하는 것을 목적으로 고안했다. 소프터는 SNS를 통해 전국 대학생을 상대로 ‘한바닥 글쓰기 공모전’을 벌여 글을 수집해왔다. 지난달 제2회 공모전이 열렸는데 총 900편의 작품이 응모될 만큼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최근 소프터는 글 수집 범위를 넓혔다. 독립출판사 혹은 문학동네 등과 같은 대형출판사와 협력해 기성 작가의 글도 제공하기로 했다.

하루 평균 250명의 학생이 자판기를 이용한다. 특히 시험 기간 자판기 이용자 수는 배로 치솟는다. 김시형(24) 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도서관에 앉아 취업 준비를 한다. 혼자만 힘든 걸까 외로울 때 글 자판기를 발견했다. 취업 사랑 등에 울고 웃는 또래 친구들의 글을 읽으며 위로를 얻었다”고 말했다.

소프터는 전국 대학으로 자판기 보급에 나설 계획이다. 이미 인하대와 글 자판기를 설치하기로 협약했다. 소프터 최상인(26) 대표는 “서울에 있는 대학과도 현재 협의 중이다”며 “대학교에서 뻗어 나가 도시철도역과 관공서 등에서도 자판기를 보급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창업팀 소프터는 부산대 재학생으로 구성됐다. 최상인 대표부터 위수빈(여·23) 씨, 주연경(여·24) 씨 모두 부산대 재학생이다. 여기에 콘텐츠 개발·관리를 위해 영남대 재학 중인 강경민(25) 씨를 영입해 팀을 구성했다. 소프터는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응모해 선정됐다. 올해는 부산시의 창업지원사업 명목으로 500만~800만 원을 지원받는다. 김해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