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취자 만나면 스스로 움츠려”
- 트라우마 시달려도 스스로 감내
- 현장서 대응할 방안 마련 시급

취객에게 폭행당한 119 구급대원이 숨진 사건 이후 폭행 위험에 시달리는 소방대원의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달 2일 전북 익산에서 도로에 쓰러진 취객을 도와 이송하던 전북소방본부의 강연희(51) 소방위가 구급차에서 취객에게 머리를 수차례 폭행당한 후 지난 1일 숨을 거두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7일 부산소방안전본부에 따르면 2013년부터 5년 동안 부산지역에서 평균 한 해 13건꼴로 구급대원이 시민에게 폭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올해는 지난달까지 3건이 발생했다. 비교적 피해가 크지 않아 보고되지 않는 경미한 사건까지 포함하면 실제 피해는 훨씬 더 클 것으로 보인다. 국제신문 취재 결과 폭행을 당한 소방관은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부소방서의 강지훈(31) 소방교는 지난 1월 폭행을 당한 환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출동했다. 강 소방교는 김모(36) 씨를 구급차에 태운 뒤 응급처치를 하며 인근 메리놀병원으로 후송했다. 사건은 병원에 도착한 후 일어났다. 치료도 잘 받고 대화도 잘되던 강 씨가 갑자기 강 대원의 멱살을 낚아채려한 것. 가까스로 손길을 피했지만 무전기 선이 붙잡혔고 김 씨는 강 대원의 옆구리를 발로 찼다. 함께 있던 응급구조학과 실습생도 얼굴을 주먹으로 강타당했다. 강 소방교는 지난해 9월에도 자갈치 시장 앞에 드러누워 있던 취객이 내지른 주먹에 무방비 상태로 얼굴을 맞았다. 강 소방교는 “출동이 늦다고 욕을 먹기 일쑤다. 폭력성을 보이는 주취자 신고를 받고 출동할 때면 나도 모르게 움츠러든다”고 말했다.

지난달 해운대구 중동의 한 목욕탕에 출동한 이명철(36) 소방교도 폭행을 당했다. 주변 사람에게 신고를 부탁했던 50대 남성이 도리어 이 소방교에게 다짜고짜 욕설과 함께 주먹을 내질렀다. 이 소방교의 눈 주위가 부어오르고 멍이 들어 CT 촬영까지 했다.

이처럼 폭행 사건이 잦은 와중에도 소방관이 현장에서 조처할 방안은 별로 없다. 소방본부 특별사법경찰이나 경찰의 조사 후 검찰에 송치하는 방안이 전부다. 폭행당하거나 끔찍한 현장을 겪은 뒤 트라우마를 겪는 경우에 받는 외상후 스트레스 심리 상담을 받으면서 소방관이 스스로 극복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폭행에 관해 엄중하게 법을 적용하고 구체적인 대응 요령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의대 류상일(소방방재행정학과) 교수는 “소방 활동 역시 공무집행으로 구급대원을 폭행하는 건 폭행죄에 공무집행 방해죄까지 추가된다. 그러나 경찰에 비해 서비스적 성격이 강해 법적 제재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류 교수는 이어 “현장에서 대원을 향해 폭언, 욕설, 성희롱성 발언을 할 때부터 처벌받을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지적하고 폭행 위협 시부터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봉기 기자 superche@kookje.co.kr

지역별 구급대원 폭행 현황 (연도 / 발생 건수)   2013 2014 2015 2016 2017 서울 22 26 32 46 38 부산 12 8 13 21 10 경남 7 6 6 7 4 경북 14 8 15 10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