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자체 매입, 시비 투입 가능

- 역사적·보전 가치 높은 공장들
- 공적 자원 투입해 재단장 ‘기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한 부산 사상공단 폐공장들이 역사·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그동안 걸림돌이 됐던 근대 건조물 지정 요건을 완화하는 절차가 추진돼 ‘사상판 F1963(옛 고려제강 수영공장을 개조한 복합문화 공간)’이 탄생할지 관심을 끈다.

시는 지난해 2월 시작한 ‘부산시 근대 건조물 보호 기본계획 재정비 용역’을 20일 마무리하고, 용역 결과에 따라 조례를 개정해 근대 건조물 지정 요건을 완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현행 ‘부산시 근대 건조물 보호에 관한 조례’는 19세기 개항 때부터 6·25전쟁 사이 세워진 건조물을 근대 건조물로 정의한다. 그러나 시는 이번 조례 개정을 통해 근대 건조물 정의를 ‘건립 후 50년이 지난 건조물’로 바꾸기로 했다. 시 관계자는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내부 회의와 시의회 심의를 거쳐 조례 개정을 마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되면 1960년대 중반부터 조성된 사상공단의 주요 폐공장은 근대 건조물 지정 요건을 충족한다. 폐공장이 근대 건조물로 지정되면 시가 적극적으로 나서 건물과 부지를 매입할 수 있다. 특히 유지·보수 비용도 시가 예산으로 지원해, 폐공장을 보전하고 문화 공간으로 바꾸기가 한결 쉬워진다.

2017년 시는 사상공단의 디에스피 폐공장을 문화공간으로 전환하려 했지만, 국비 확보에 실패하면서 결국 계획이 무산됐었다. 이에 따라 이번에 조례가 개정되면 사상공단 폐공장을 역사·문화공간으로 재단장하는 작업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다 지난 13일 문 대통령이 사상공단의 대호PNC 폐공장을 찾으면서 폐공장 보전 여론이 고조된 것도 ‘사상판 F1963’ 탄생에 힘을 보탤 것이라는 판단이 나온다.

그러나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일부 전문가는 시가 근대 건조물 지정 요건을 계획보다 더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소장은 “사상공단에는 지은 지 50년이 안 됐지만 보전 가치가 있는 공장이 많다. 따라서 시는 기준을 더 완화할 필요가 있다”며 “시와 사상구는 정부와 함께 재원 확보 등에 협력해 역사적 의미가 있는 폐공장 보전에 힘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대근 사상구청장은 “문 대통령과 오거돈 부산시장이 함께 대호PNC 폐공장을 둘러본 만큼 보전 및 역사·문화 공간 조성 필요성에 공감하셨을 것”이라며 “사상구는 폐공장 보전과 문화 공간화를 위한 전담 부서를 지정해 사상공단의 가치를 살려내는 데 행정력을 모으겠다”고 강조했다.

사상공단은 일제 이후 우리나라의 힘으로 처음 조성한 공단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공단에 일손이 부족해 호남 지역민이 대거 이주해오면서 영호남 교류와 화합의 장으로 활용됐다는 의미도 지닌다.

임동우 기자 guardia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