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충원 이장 후 묘지석만 남아
- 천도교 대연교구가 50년간 보존

- 2016년 대연2구역 재개발 때
- 딴 곳으로 옮기려 파내다 파손
- 이전 부지 못찾아 교인집 방치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자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빛나는 홍암 라인협(1872~1952·사진) 선생의 묘 표지석이 재개발 과정서 파손된 후 방치되고 있다.

	천도교 대연교구 한 교인이 27일 부산 남구 자신의 집에 보관 중인 홍암 라인협 선생의 부서진 묘 표지석을 바라보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kookje.co.kr

천도교 대연교구는 현재 홍암 선생의 묘 표지석이 세 동강 난 채 한 교인 집에 보관돼 있다고 27일 밝혔다. 천도교도였던 홍암 선생은 천도교 지도자였던 손병희, 오세창 등과 함께 1919년 2월 27일 독립선언서 초안을 검토한 인물이다. 민족대표 33인에 이름을 올린 홍암 선생은 1919년 3월 1일 서울 인사동 태화관에서 만세를 외치고 일본 경찰에 자진 출두해 서대문 형무소에서 2년간 복역했다. 출소 후 홍암 선생은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천도교 포교 활동을 하다가 6·25전쟁 당시 1·4 후퇴 때 부산으로 왔다.

전쟁 중이던 1952년 홍암 선생은 숨을 거뒀다. 1973년 국립현충원으로 이장될 때까지 홍암 선생의 묘는 남구 대연고갯길에 있었다. 현재 도시철도 2호선 못골역과 지겟골역 사이 홍암 선생이 묻혔던 대연고갯길의 도로명 주소도 선생의 호를 따 ‘홍암 1길’로 이름 지어졌다. 홍암 선생의 묘가 이장된 후에도 천도교 대연교구는 50년 가까이 묘 표지석을 원형 그대로 보존했다. ‘홍암 라인협 선생 묘 입구’라고 쓰인 표지석은 부산에 홍암 선생의 묘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자산 중 하나다.

하지만 2016년 대연2구역 재개발 공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천도교 대연교구가 이주를 위해 표지석을 파내는 과정에서 그만 두 동강 나고 말았다. 이후 교인 집에 보관하는 중에도 내부 공사를 하다 한 차례 더 부서져 표지석은 결국 세 조각이 됐다. 표지석 글귀 중 ‘협’ 자 부분에서 잘려 큰 조각엔 ‘홍암 라인혀’까지만 남았다. 파편 곳곳에 페인트도 묻었다. 유재원 천도교 대연교구장은 “표지석을 파내는 업체에 중요한 유산이니 조심스럽게 작업해 달라고 당부했는데도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고 했다.

	홍암 라인협 선생

천도교 대연교구는 2017년 남구에 청원서를 보내는 등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표지석을 복구하고 기념비를 세울 계획을 추진했지만, 마땅한 부지가 없어 불발됐다. 유 교구장은 “내년 중으로 교당을 짓고 독립선언서 작성에 참여한 홍암 선생과 3·1운동을 기리는 공간을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홍암 선생의 증손자 라명재 씨는 “증조할아버지는 6·25전쟁으로 나라가 다시 위기를 맞았을 때도 부산에서 군인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강연을 다니며 흔들리는 마음을 잡기 위해 노력하셨다”며 “시대가 변하며 재개발을 하더라도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역사적 유산은 지켜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류민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