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로 바닥에 떨어진 벚꽃이 아니었다면 봄이 왔다는 사실을 잊을 법한 날. 14일 오후 7시 부산 북구 화명동 롯데마트 앞에서는 오늘도 어김없이 촛불이 켜졌다. 세월호 참사 8주기 이틀 전인 화명촛불의 455번째 집회가 열렸다. 화명촛불은 2014년 4월 19일부터 지금까지 매주 목요일 오후 7시에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촛불집회를 열었다. 2014년 4월 19일부터 세월호 참사 49재인 6월 3일까지 매일 촛불집회를 열었고, 이후 매주 목요일 집회를 8년째 이어왔다. 세월호 참사 실종자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노란 리본은 8년의 세월 빠짐없이 집회 참가자의 가슴팍에 매달려 있었다.

세월호 참사 8주기를 이틀 앞둔 14일 오후 부산 북구 롯데마트 화명점 앞에서 부산화명촛불 주최로 촛불 집회가 열리고 있다. 이원준 기자

이날 집회에는 회원 시민 등 4명이 참가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겨울용 외투를 입은 행인은 촛불집회에 관심을 가지다가도 돌풍이 일자 옷깃을 여미며 가던 발걸음을 재촉했다. 화명촛불 회원 김길후(59) 씨는 “오늘은 날씨도 춥고 해서 많이 못 오셨다”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본격적인 집회가 시작되자 바쁜 걸음을 옮기는 행인 사이 촛불 4개가 조용히 타올랐다. 8년째 꺼지지 않는 촛불. 집회 참가자 이현우(60) 씨는 그날의 기억이 자신을 촛불 앞으로 이끌었다고 답했다. 이 씨는 “8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며 참사가 많이 잊혀졌다. 하지만 여전히 ‘가만히 있어라’는 말 한마디에 수장된 아이들. 수학여행으로 들떴을 아이들을 생각한다. 너무 많은 영령이 피지도 못하고 졌다”고 말했다. 이 씨는 1998년 갑작스레 온 뇌졸중 후유증으로 지팡이에 의지해 걸어야 하고 지금도 쉽게 숨이 찬다. 이 씨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이유는 자라나는 아이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살아생전에 만들기 위해서다”고 밝혔다. 이 씨는 말을 끝내자마자 힘겹게 숨을 몰아쉬었다.

작은 촛불이 모여 세월호를 기억하는 횃불이 되는 순간. 바람이 불자 촛불들이 꺼졌다. 다시 촛불을 켠 집회 참가자 김문식(67) 씨는 “부산 곳곳에 있던 촛불집회 가운데 화명촛불만 남아 매주 촛불을 밝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화명촛불은 북구민의 자발적인 모임에서 시작했다. 8년의 세월 이 자리의 모임을 가능하게 만든 건 느슨한 연결 덕분이다. 김 씨는 “퇴근 시간인 7시에 맞춰 시간 맞는 동료가 하나둘 모인다. 강제하지도 않고 미리 오겠다고 말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 4년 만에 화명촛불을 방문한 깜짝 손님도 있었다. 박모(48)씨는 “늘 김길후 씨와 연락만 주고받다가 8주기가 다가와 4년 만에 와봤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화명촛불 참가자들은 박 씨를 반갑게 맞았다.

최근에는 집회 참가자가 3~4명 정도로 줄었지만 8년의 세월은 화명동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집회 참가자 강찬주(60) 씨는 “한 달 전부터 세월호 노란 리본을 가져가는 할아버지들이 늘었다. 하루에 2~3명 정도다. 예전에는 심한 욕을 하면서 지나가셨던 분들이 이제는 ‘고생한다’며 인사해주신다”고 말했다. 강 씨는 “7~8살쯤 돼 보이는 아이들이 엄마 손을 잡고 세월호에 관해 물어보면 엄마들이 우리를 보며 설명을 해준다. 그럴 때 이 자리에 설 수 있어 기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화명촛불은 오는 15일 오후 7시 북구 화명동 장미원에서 세월호 참사 8주기 추모문화제를 열고 연극과 합창도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