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술에 취해 배를 모는 행위를 가중처벌하는 해사안전법 조항은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11월 윤창호법(도로교통법)이 위헌 결정이 난 데 이어 ‘바다 위 윤창호법’ 역시 위헌으로 결정된 셈이다.

러시아 화물선 ‘씨그랜드호’가 광안대교를 들이받는 장면. 국제신문 DB

헌재는 31일 창원지법 진주지원이 제청한 위헌법률심판사건에서 재판관 7대2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선박 직원 A 씨는 지난해 2월 혈중알코올 농도 0.038% 음주 상태로 선박을 운항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2회 이상 술에 취한 상태에서 선박 조타기를 조작한 운항자는 2년 이상 5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상 3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는 해사안전법 가중처벌 조항의 적용을 받았다. 현행 해사안전법은 ▷혈중 알코올 농도 0.03~0.08%는 징역 1년 또는 벌금 1000만 원 이하 ▷0.08~0.20%는 징역 1~2년 또는 벌금 1000만~2000만 원 ▷0.20% 이상은 징역 2~5년 또는 벌금 2000만~3000만 원의 처벌을 받도록 규정한다.

A 씨는 이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그의 의견을 받아들인 진주지원은 과거 음주전력이 언제 있었는지 시간적 제한을 두지 않는 점 등을 이유로 헌재에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고 제청했다.

이 조항은 2019년 2월 27일 러시아 화물선 씨그랜드호(5998ｔ) 선장이 음주 운항(당시 혈중알코올농도 0.086%) 중 부산 광안대교와 충돌한 사고를 계기로 만들어졌다. 음주운항을 가중처벌하는 내용은 2018년 9월 고(故) 윤창호 씨가 부산 해운대구에서 만취 차량에 치여 숨진 뒤 생겨난 개정 도로교통법(윤창호법)을 차용했다.

헌재는 해사안전법의 음주운항 가중처벌 조항이 ‘책임과 형벌 간 비례원칙’에 어긋나는 과도한 법정형이라고 봤다. 헌재는 “가중처벌 요건이 되는 과거의 위반 행위와 처벌 대상이 되는 음주운항 재범 사이에 아무런 시간적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과거의 위반 행위가 상당히 오래 전에 이뤄졌다면 그 이후 행해진 음주운항 금지 규정 위반 행위를 ‘반복적으로 사회구성원의 생명·신체 등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평가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어 “강한 처벌이 국민 일반 법 감정에 부합할 수는 있으나, 결국 중한 형벌에 대한 면역성과 무감각이 생기게 돼 범죄 예방과 법질서 수호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반복적인 위반행위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로서 형벌의 강화는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문형배·이선애 재판관은 “음주운항은 음주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규모의 생명과 재산상 손실을 가져올 위험이 있다”며 가중처벌 조항에 합헌 의견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