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 10대 우수사업에도 선정
- 의회서 “협의 없었다” 예산 삭감

부산 금정구가 국·시비 12억 원 등을 확보해 짓기로 한 ‘금정 가족센터’가 지원금을 한 푼도 써보지도 못한 채 사업비를 반납할 상황에 처했다. 금정구의회가 ‘지역 주민과 의회와의 사전 협의 없이 진행됐다’며 예산을 전액 삭감했기 때문이다. 구청과 의회 간 의사소통 부재에 따른 갈등 때문에 애꿎은 주민 편의 사업이 된서리를 맞게 됐다는 지적이다.

14일 금정구에 따르면 금정구의회는 ‘금정 가족센터 생활SOC 복합화 사업’ 설계에 필요한 국비 3억2000만 원을 전액 삭감해 예산결산위원회(예결위)로 보냈다. 총사업비 16억7000만 원이 투입되는 이 사업에는 국·시비 12억7000만 원이 지원될 예정이었다. 아이돌봄·한부모가족 지원사업, 다문화가족·결혼이민자 정착 지원 프로그램 등이 제공되는 복합 돌봄 공간을 만드는 게 골자다. 지난해 10월 국무조정실 생활SOC추진단 공모에 선정된 사업으로, 당시 전국 10대 우수 사업에 꼽혔다.

예산 불발로 사업을 시작하지 못하게 된 금정구는 국·시비를 반납할 처지에 놓였다. 국가균형발전 특별법상 지자체는 회계연도가 2년 이상 지나는 동안 사업에 진척이 없을 때 국비를 반납해야 한다. 이 사업은 지난해 12월 2022년도 본예산 심의 때 공사비로 국비 3억2000만 원이 신청됐다가 ‘0원’ 처리된 것을 시작으로, 지난 9월과 지난 8일 열린 추가경정예산(추경) 심의 때 올린 각각 1억 원과 3억2000만 원도 전액 삭감됐다. 오는 21일 예결위가 남아 있지만, 현재로선 예산이 반영될 여지가 적다.

구의회는 예산을 깎은 근거로 주민·구의회와의 소통 부재를 든다. 사업이 추진되는 장소는 구서2동 행정복지센터다. 구는 1986년 설립돼 노후한 이곳을 대신해 내년 4월 새 행정복지센터 준공을 목표로 공사를 하고 있다. 행정복지센터 이전으로 기존 건물이 비게 되면, 리모델링해 금정 가족센터를 설립할 계획이었다. 구서동에 어린이집과 초등학교가 밀집해 있고, 결혼이민자 수도 많은 편이라 이곳을 거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구의회는 “결정 과정에서 주민이 바라는 활용안 등에 관한 청취 절차가 없었고, 사업의 실효성 또한 높지 않다”고 지적해왔다. 한 구의원은 “다문화가정이 많은 남산동에 가족센터가 이미 있다. 굳이 노후 건물로 옮겨갈 이유가 없고, 빈 건물의 활용안을 주민과 논의한 선례가 있는데도 이를 생략했다”고 설명했다. 2020년 기준 남산동에는 77명, 구서2동에는 48명의 결혼이민자가 살고 있다.

애써 확보한 사업비를 써보지도 못한 채 날아가면서 구의회를 향한 볼멘소리가 쏟아졌다. 금정구 관계자는 “주민 복지와 편의 증진에 필요하다는 점을 여러 차례 얘기했는데도 구의회와 주민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며 예산을 삭감했다. 결국 어느 한쪽도 득을 보지 못한 채 사업비만 반납할 처지에 놓였다”고 하소연했다. 이외에도 금정구 공무원들은 구 게시판 등을 통해 연일 성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반면 구의회는 사업의 절차와 실효성 모두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함부로 예산을 처리할 수 없었다고 반박한다. 최봉환 금정구의회 의장은 “낡은 구서2동사를 리모델링해 쓰는 비용이 추가로 필요할 것이 분명하다. 새 건물을 짓는 돈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새 건물을 짓든지 해서 다시 사업계획을 짜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