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부산진구·동래구 등 지역 곳곳에서 오피스텔을 임대한 뒤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혐의로 기소된 일명 30대 ‘서면 빌라왕’(국제신문 지난 2월 9일 자 1면 보도 등)의 재판이 진행 중인 가운데 빌라왕 이모 씨의 명의를 빌려 실제 임대를 한 인물은 따로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지법 형사11단독 정순열 판사는 5일 사기 혐의로 기소된 이 씨의 세 번째 공판기일을 열었다. 공소장에 따르면 이 씨는 전세보증금 반환 의사가 없음에도 동래구 온천동 A 오피스텔, 부산진구 가야동 B, 사상구 C 오피스텔 등 오피스텔 6곳 세입자 62명으로부터 62억4700만 원을 받아 편취한 혐의를 받는다.

구속 상태인 이 씨는 지난 기일에서 “자신의 직업이 배달대행업이며 명의를 빌려달라는 지인 서모 씨의 요청에 따라 명의만 빌려줬을 뿐이며 전세 계약 현장에는 없어 서 씨의 범행을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피해자들 역시 “서 씨 등이 이 씨의 위임장을 가지고 다니며 수많은 계약을 체결했다”며 조직적 사기를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법원은 이날 서 씨의 증인신문을 진행했다. 서 씨는 현재 별개 사건으로 구속돼 있다. 수의를 입고 증인석에 선 서 씨는 이 씨의 주장대로 명의를 빌려 임대·매매·분양 사업을 했다고 밝혔다.

서 씨는 “제 명의로 사업을 하지 못할 사정이 있어 평소 알고 지내던 이 씨에게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으니 명의를 빌려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62억 원대 보증금을 받은 이가 실제 건물 주인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검찰은 서 씨가 이 씨에게 2021년 3월부터 지난 2월까지 22회에 걸쳐 6250만 원을 지급한 것에 대해 ‘명의 대여 대가’로 지급했다고 주장했지만, 서 씨는 “단순히 고마움의 표현이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서 씨는 이날 몇 채의 오피스텔을 가지고 있느냐는 검찰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건물을 가지고 있었으며, 전세 보증금은 대출금 등을 갚는 데 사용했던 것도 드러났다.

사기 의혹에 대해서는 시세 차익을 노리고 건물을 사 임대를 했을 뿐 의도적으로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부인했다. 서 씨는 “새로운 세입자가 오면 기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전달했지만 부동산 경기가 나빠지면서 세입자가 줄어 보증금을 주지 못한 것 뿐”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