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종단 중인 제6호 태풍 ‘카눈(Khanun)’의 이례적으로 느린 속도를 두고 여러 해석이 제기된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중위도 지역의 바람 세기가 약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후속 태풍의 영향으로 현 태풍의 진로와 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본 한 세기 전 일본 학자의 이론도 관심을 끈다.

기상청은 10일 언론 브리핑에서 “카눈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형태로 종단하고 있다”며 “동서와 해역까지 모두 포함해 느리게 가면 영향도 길어지는 만큼 많은 비 피해가 있을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이날 경남 거제 근처에서 국내 상륙한 카눈은 오전 11시 경남 밀양 남남서쪽 20㎞ 인근에서 시속 31㎞ 속도로 올라갔다. 이 태풍은 낮에 대구 남남서쪽 약 50㎞ 인근을 지나면서 속도가 20㎞대로 느려진 뒤 오후 3시 충북 청주 남동쪽 60㎞ 지역을 거쳐 밤 9시 서울 동남동쪽 약 30㎞ 부근을 지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태풍이 이 같은 속도로 하루 종일 전국을 누비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봤다. 

기상청은 태풍 주변에 형성된 대기 흐름을 뜻하는 ‘지향류’가 약한 점을 카눈의 저속 이유로 꼽는다. 보통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는 태풍은 북태평양고기압 가장자리를 따라 남서에서 북동으로 빠르게 움직이는데, 이번에는 북태평양고기압이 우리나라 동쪽에 떨어져 있는 등 태풍 경로에 영향을 줄 만한 지배 기단이 한반도 주변에 없다는 것이다. 기상청 관계자는 “여름철 우리나라를 지배하는 덥고 습한 성질을 가진 북태평양 고기압 기단이 지금 상공을 뒤덮고 있어야 하지만 기압계가 계절에 맞지 않게 교란돼 있다”고 설명했다.

제6호 태풍 ‘카눈’ 상륙한 10일 부산 수영구 민락수변공원 인근 방파제에 거친 파도가 몰아치고 있다. 김영훈 기자

지구온난화도 태풍의 느린 속도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고위도 지역 평균 온도가 빠르게 상승하면서 고위도와 열대지역 온도 차가 작아지자 중위도지역의 바람 세기가 약해졌다는 것이다. 그 결과 태풍을 끌어주고 밀어주는 힘이 약해져 최근 들어 서태평양 태풍의 이동속도가 20% 줄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100년 전 일본에서 나온 ‘후지와라 효과’ 이론도 제기됐다. 후지와라 효과는 일본 기상학자 후지와라 사쿠헤이(1884~1950)가 1921년 주창한 이론이다. 태풍 간 거리가 1000㎞ 정도로 가까울 경우 서로의 진로와 세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게 이론의 핵심이다. 이 이론대로면 현 태풍 ‘카눈’이 후속으로 북상 중인 제7호 태풍 ‘란’과 상호작용해 진로와 속도가 달라졌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애초 카눈의 진로가 중국 쪽이었지만, 서쪽 제트 기류에 막혀 중국 쪽으로 가지 못하고 속도가 늦춰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상 분석이 나날이 발전하면서 태풍 진로와 세력에 여러 요소가 영향 미친다는 생각이 일반화 하자 후지와라 효과는 지지 받지 못하는 이론이 됐다. 기상청 관계자는 “란이 발달 중이지만 카눈과 거리가 멀어서 후지와라 효과가 발생하기 어렵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