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금정구에서 또래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정유정의 재판이 진행 중인 가운데 정유정과 조부에 대한 증인신문이 열렸다. 정유정 측은 재판부의 선처를 의식한 듯 불우한 성장환경에 대해 강조하는 한편 “같이 가고 싶었다. 환생이 있다고 생각했다” “유족이 슬퍼할 것 같아 사망이 아닌 실종으로 꾸미려 했다”고 주장하는 등 다소 황당한 답변을 이어갔다.

검찰로 송치되는 정유정. 국제신문 DB

16일 부산지법 형사6부는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정유정 본인과 정유정의 조부에 대한 신문을 진행했다. 이날 정유정 측은 불우한 성장환경에 대해 밝혔다. 부모가 이혼한 후 만 2세부터 조부와 살았고, 중학생 시절에는 친부의 상황이 개선돼 함께 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해 낙담했다는 것이다. 또한 중학생 시절까지 원만한 교우 관계를 유지했으나 고교 입학 후에는 그렇지 못했고, 수능생 시절에는 수도권 대학의 합격 메시지를 받았으나 등록금을 구하지 못해 입학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후 재수 삼수 중 경제적 이유로 조부로부터 공무원 준비를 강요받았다고 주장했다.

정유정의 조부 정모 씨는 지난해 7월부터 손녀의 성격이 변해 지자체에 심리 검사를 요청했다는 사실도 밝혔다. 정 씨는 “손녀가 평소와 다르게 화를 잘 내고 성격이 달라져 북구청에 심리검사를 요청했다. 구청 직원이 두 번 나와 확인한 뒤 (정유정이) 우울증이 심해 보인다며 검사를 권유했으나 본인이 거부해 결국 치료를 받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고 말했다. 정 씨는 유족에게 사과하고자 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며 “이 자리를 빌어 피해자 유족에게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했다.

정유정은 피해자를 살해한 이유에 대해 “같이 죽을 사람이 필요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자신이 처한 환경에 대한 분노로 사람을 죽여서라도 분노를 풀기 위한 것이 아니었냐”고 묻자 “분노를 풀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같이 죽을 생각으로, 마지막으로 제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피해자를 죽이고 극단적 선택을 할 생각이었다”고 답했다. 하지만 검찰은 정유정이 사체 훼손을 위한 준비는 한 반면 극단적 선택을 위한 준비는 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자살할 생각이라면 굳이 왜 사체를 훼손·유기한 것이냐”고 반박했다. 정유정은 “피해자 가족사진을 봤다. 사망한 것을 알면 슬퍼할 것 같아 실종으로 처리해 어딘가에 살아있다고 믿게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고 한 뒤, 극단적 선택을 이루지 못한 것은 “중간에 (경찰에) 붙잡혔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또한 검찰은 정유정이 범행 당시 맥주를 챙겨간 이유에 대해 “범행을 자축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냐”고 지적했고, 정유정은 “날씨가 덥고 목이 말랐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정유정의 반성에 의구심을 표했다. 검찰이 “피해자가 피고인 본인과 가족에게 욕설했다는 등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해왔다”며 “반성문과 관련해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발언도 했다. 반성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정유정은 “꾸준히 반성하고 있었다”고 답했다.

재판부의 신문도 이어졌다. 피해자가 흉기에 찔린 뒤 몇 분 뒤 죽었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정유정은 “술을 먹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더불어 재판부는 “성장과정에 특이한 사정이 있었던 것은 같다. 그런데 왜 무관한 피해자를 살해했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정유정은 “같이 가고 싶었다. (같이 가면) 환생이 있다고 생각했다”며 다소 황당한 답변을 했다. 재판부는 다음 기일에 구형과 피고인 최후변론을 진행하기로 했다. 정유정은 지난 5월 26일 과외 선생님을 구하는 척 피해자의 집을 방문해 살해한 뒤 사체를 훼손·유기한 혐의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