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의 “주변인과 아픔 나누고
- 사실관계 따져 대책 마련 필수”

12·3 비상계엄사태와 무안 제주항공기 참사로 지난해 연말 사회적 비극과 혼란이 극에 달한 가운데,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공포로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이가 많다. 정신건강의학 전문가들은 사회적 연대로 트라우마를 해소하는 한편, 참담했던 연말을 극복하고 새해를 맞이하기 위한 시발점으로 명확한 사실관계 규명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1일 부산시청 1층에 마련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시민이 조문하고 있다. 전민철 기자

1일 오후 2시30분께 부산시청 1층에 마련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 앞. 무안 제주항공기 참사로 세상을 떠난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모인 인파가 줄을 지었다. 분향소에는 국화가 수북이 쌓였고 방명록도 명복을 비는 애도의 글로 빼곡했다.

분향소를 찾은 이들 중에는 눈물을 참지 못하는 이가 많았다. 초등학교 6학년 아들과 함께 분향소를 찾은 송주은(41) 씨는 “참사 소식을 외신으로 접했는데 사고 장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줘 큰 충격을 받았다”며 “슬픔이 가시지 않아 오늘 분향소를 찾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 추모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사상 최악의 항공 참사에다 12·3 비상계엄사태를 겪으면서 불안을 겪으며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이가 많다. 지난달 31일 오후 부산진구 서면 놀이마루 앞에서 참사 희생자를 애도하는 ‘부산시민 추모연대의 밤’에 참여한 이예지(34) 씨는 “처음 참사 소식을 접하고 ‘실제인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현실감이 없었다”며 “사람 많은 곳은 잘 가지 않고 항상 위험 상황을 걱정하게 됐다”고 토로했다. 정아미(33) 씨는 “비상계엄사태 등을 겪으며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 아기 분유를 잔뜩 주문하고 수시로 뉴스를 확인하게 됐다”며 “우리나라에서 이런 참혹한 일들이 일어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에 일상이 마비될 수 있다는 공포와 부담감이 생겼다”고 호소했다. 다른 참가자 이흥만(71) 씨는 “2002년 중국 민항기 참사가 생각나면서 마음이 갈갈이 찢기는 듯했다”고 말했다.

정신건강의학 전문가들은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을 위해 사회적 연대가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부산 해동병원 권명환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부장은 “비상계엄 사태 직후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 유사한 상황을 겪은 분들의 방문이 늘었다”며 “‘간접적 경험’으로 참사를 겪은 이들에게도 당사자와 동일한 수준의 트라우마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집단 트라우마는 사회적 연대가 굉장히 중요하다”며 “사회 어느 곳이든 모두가 고통과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연대감을 줘 고립감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권 진료부장은 집단 트라우마의 궁극적 해소를 위해선 진상 규명이 필수라고 했다. 그는 “‘왜 이런 일이 발생했나’는 의문을 해소해야 하고 사회적 책임을 지는 과정이 중요하다”며 “비상계엄과 항공기 참사 모두 발생 원인과 사실관계를 밝혀내고 대책 마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