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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더러 ‘중국산’이라니…저열한 다문화 감수성에 상처

인구소멸 부산을 다문화 융합도시로 <2> 결혼이민자·자녀 배려를

  • 백창훈 기자 huni@kookje.co.kr
  •  |   입력 : 2025-01-05 19:34:50
  •  |   본지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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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한 행정복지센터서 만난
- 다양한 국적 결혼 이주여성들
- 한국생활 어려운 점 털어놔

- 모욕발언 포함한 사회적 차별
- 20명 40%가 “당한 경험 있다”
- 언어장벽에 일상영위 힘들어
- 소통문제 자녀까지 이어지기도

5일 부산 영도구의 한 행정복지센터 내 강의실. 다양한 국적의 결혼 이주민들이 약속한 시각에 맞춰 속속 모여들었다. 일주일에 두 번 있는 한국어 수업을 듣기 위해서다. 대개 동남아 출신 여성이다. “‘막다’와 ‘맞다’의 차이는 뭘까요?.” 한국어 수업을 진행하는 김미옥 교사가 한 학생에게 물었다. 얼굴이 빨개지며 답하지 못하자 강의실은 웃음바다가 됐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지만, 이곳에서 만난 이주여성은 마음속 깊이 묻어둔 한국 생활의 어려움을 털어 놓았다.
5일 부산 영도구의 한 행정복지센터 강의실에서 한국어 수업을 듣는 결혼이주여성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백창훈 기자
■부족한 다문화 감수성

중국 국적 류잉(38) 씨는 2010년 한국에 왔다. 사촌언니 소개로 만난 한국인 남편(48)과 결혼하면서다. 결혼 후 3년간 사하구의 한 아파트에서 시부모와 함께 살았다. 생소한 사투리와 함께 존댓말이 입에 붙지 않아 애를 먹었다. 그보다 더 힘든 건 국적과 관련한 차별적인 발언이었다. 중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주변에서 ‘메이드 인 차이나’라는 모욕적인 말을 종종 들어야 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는 더 혹독했다. 당시 류잉 씨는 2년에 한 번꼴로 친정이 있는 중국 하얼빈을 다녀왔는데, 코로나19의 시발점이 중국 우한으로 알려져 주변의 싸늘한 시선에 숨죽여 울어야 했다. 그는 “지금의 한국 사회는 이주여성이 늘어나면서 다문화 감수성이 높아졌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을 싫어하는 한국 사람이 꽤 있어 차별적인 발언을 많이 들었다”고 전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전국다문화가족실태조사 분석’에 따르면 결혼이민자·귀화 여성 50명 중 40.1%가 ‘사회적 차별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차별은 직장에서 가장 잦았고, 거리나 음식점 등에서도 차별 발언을 듣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어가 미숙한 이주여성

베트남 국적의 팜티또느(47) 씨의 자녀 김태윤(10) 군은 네 살 때 자폐증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언어 치료도 필요하다고 했다. 김 군은 2013년 팜티또느 씨와 그의 한국인 남편 B(57) 씨 사이에서 태어난 첫째 아이였다. 팜티또느 씨는 “내가 한국말을 잘 못하다 보니 아들이 말이 늦어 언어치료도 해야 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한국말이 미숙한 이주여성의 자녀 100명 중 3, 4명은 자폐 증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편 B 씨는 아이가 태어나고 ‘투잡’을 뛴다. 원래 하던 선박 용접 일에 더해 택배 배송도 시작했다. 안 그래도 없는 살림에 숟가락이 하나 더 늘어나면서 생활비가 빠듯해졌기 때문이다. 아빠가 집에 있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아들의 언어 능력도 눈에 띄게 떨어졌다. 팜티또느 씨는 “일주일에 다섯 차례 언어치료를 받는다”며 “치료 한 번에 9만 원이 드는데, 한 해에 6개월만 실손 의료보험이 적용돼 나머지 6개월은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한다”고 전했다.

또 다른 베트남 출신의 이주여성 이미야(23) 씨도 생후 11개월 아들이 아플 때면 발을 동동 구른다. 아이를 안고 집 근처 병원에 가도 한국말이 서툴러 증상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한다. 2년 전 국제결혼 중매업체를 통해 이미야 씨와 결혼한 한국인 남편 C(52) 씨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시어머니 역시 적지 않은 나이로 아이를 봐주는 데 한계가 있다.

그렇다 보니 이 씨는 통역사가 배치된 병원만 이용할 수 있다. 영도구에 사는 그가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병원은 동구 일신기독병원이다. 버스로 40분이나 걸리는 먼 거리지만, 이 씨에겐 선택지가 없다. 그는 “다문화 가정을 위해 병원마다 통역사가 있는데, 베트남 통역사가 있는 곳은 일신기독병원이 유일하다”며 “지금은 베트남 호치민에 계신 친정 어머니가 부산에 와 아이를 함께 봐주고 있는데, 우리 둘 다 한국 사람이 아니어서 육아가 힘든 건 마찬가지”라고 토로했다.

■떳떳한 한국민으로 거듭나

베트남 출신의 민가윤(38·베트남 이름 베티민) 씨의 사정은 조금 다르다. 2009년 고향인 하이퐁시에서 만난 한국인 D(46) 씨와 연애결혼으로 한국에 왔다. 현재는 두 아이를 둔 엄마이자, 부산 일선 경찰서와 검찰청에서 통역 업무를 맡고 있다. 지역 초등학교에 방문해 학생 상대로 다문화 감수성 강의도 5년째 하고 있다. 베트남 대사관에서 의사소통을 돕는 통역 경험도 쌓아 이제는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했다. 민 씨는 “결혼 이주민의 생활 여건은 조금씩 다르다”며 “나는 부산에 온 지 4년 만에 한국 국적을 얻었다. 이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고, 어떤 일을 해야 할지 판단이 섰다”고 말했다.

민 씨의 한국 국적 취득 과정이 처음부터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가 한국에 왔을 때만 하더라도 지금만큼 이주여성이 많지 않아 한국어를 가르쳐 주는 다문화센터가 없었다. 민 씨는 당시 부산 유일 한국어 학원이 있는 중구 남포동에서 한 달에 10만 원을 내고 주 5일, 2시간씩 수업을 들었다. 민 씨가 한국 국적을 따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휴대전화 개통’ 때문이었다. 그는 “외국인은 본인 명의의 휴대전화를 갖지 못한다”며 “당시 남편 전화기로만 친정 어머니와 통화하는 게 굉장히 불편하고 억울해 국적 취득을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결혼이민자가 귀화하기 위해서는 ▷한국인 배우자와 법률상 혼인신고한 상태 ▷한국에 2년 거주 또는 3년 경과 1년 거주 ▷귀화적격심사 통과자 등 조건을 갖춰야 한다. 민 씨는 “당시 귀화적격심사는 면접 형식으로 10분간 진행됐다”며 “한국에서 전쟁이 나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와 삼일절이 어떤 날인지 등을 물어봤다. 애국가도 불렀다”고 돌아봤다. 한국어 교사 김미옥 씨는 “국적 시험 난도가 외국인에게는 매우 어렵다는 평이 있는데, 심사를 통과해 국적을 딴 여성도 일상생활에서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며 “귀화한 외국인도 꾸준히 한국어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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