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성 난청을 앓는 택시기사가 목적지를 착각해 잘못된 곳으로 향하며 난폭운전하자 위협을 느낀 승객이 달리는 택시에서 뛰어내렸다가 차에 치여 숨진 사건에서 택시기사에게 무죄가 확정됐다.

연합뉴스

대법원 3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18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택시기사 A(86) 씨와 택시에서 뛰어내린 손님을 친 차량 운전자 B 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A 씨는 2022년 3월 4일 오후 8시50분께 경북 KTX 포항역에서 여성 승객(당시 20세)을 태웠다. 이후 노인성 난청 증세가 있던 A 씨는 여성이 말한 목적지를 착각해 다른 경로로 이동했다. ‘이 길이 맞느냐’는 승객의 물음에도 A 씨가 답하지 않았고 최고속도가 시속 80㎞로 제한된 도로에서 시속 약 109㎞까지 과속했고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차로를 바꾸는 등 난폭운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납치 등 위험한 상황으로 판단한 여성은 택시 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이 여성은 B 씨가 몰던 승용차에 치여 사망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A 씨와 B 씨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 씨 입장에서는 피해 여성이 겁먹고 뛰어내릴 것을 전혀 예견할 수 없었다고 봤다. B 씨도 당시 평균 시속 103.7㎞로 과속하고 있었지만 자동차 전용도로에 사람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하기 어려웠으리라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자신이 납치 등의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착각하였다고 하더라도, 당시는 A씨가 택시를 운전하는 중이었지 피해자를 폭행, 협박하는 등의 급박한 상황이 아니었다”며 “이러한 경우 일단 경찰에 신고하는 등의 방법으로 그 위험을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거나 남자친구를 통하여 경찰에 구조요청을 할 수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B씨에 대해서도 “피해자를 발견한 직후 브레이크를 밟는 등 전방을 주시할 주의의무를 게을리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피해자 측은 상고했으나 대법원이 기각했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치사)죄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