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53) SK그룹 회장의 횡령사건 핵심 인물로 지목된 김원홍(52) 전 SK해운 고문의 체포를 둘러싸고 '기획입국설' '기획체포설' 등이 나온 가운데 그가 체포 가능성을 사전에 예견하지 못한 정황들이 파악되고 있다.
8일 대만 경정서(경찰청)와 현지 소식통 등에 따르면 김 전 고문은 지난달 31일오후 7시 대만 북부 지룽(基隆)시의 한 지방도에서 현지 경찰에 체포될 당시 반바지에 운동복 상의 차림이었다.
그는 경정서 형사국으로 연행돼 기초 조사를 받은 직후 지인에게 부탁해 양복을가져오도록 한 뒤 옷을 갈아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고문은 체포 뒤 지인을 통해 신변 정리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경찰 당국은 김 전 고문이 체포에 적극적으로 대비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김 전 고문의 체포 과정도 속속 확인되고 있다.
◇ "차량추적 신병 확보…외부 제보 없었다" = 대만 경찰은 지난달 31일 김 전 고문이 평소 타고 다니던 BMW 차량이 북부 신베이(新北)시 진산(金山)구에 있는 한 온천시설에 주차된 사실을 확인하고 1차로 이곳을 급습했지만 김 전 고문 일행이 이미 떠난 뒤였다.
경찰은 김 전 고문의 차량을 뒤좇아 진산구와 인접한 지룽(基隆)시 지방도로에서 그의 차량을 제지했다.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풀)의 수배 사실을 제시하자 그는 고개만 끄덕여 신분을 인정했다.
SK에 따르면 김 전 고문이 체포될 당시 최재원 SK 부회장도 같은 차로 이동 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두 사람은 저녁 식사를 같이 한 뒤 운전기사까지 3명이 한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이었다.
당시 최 부회장은 김씨와 함께 인근 파출소까지 동행했다가 신분 확인을 거쳐 풀려났다.
SK의 한 관계자는 "최 부회장은 피의자인 김씨와 같이 있었기 때문에 임의동행 식으로 가까운 경찰서로 가서 신분확인 절차를 거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최 부회장은 이날 김씨를 만나 재판에 나와 진실을 밝혀달라고 설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 부회장은 최근 항소심 공판에서도 "한 달에 한두 번씩 대만으로 가 김씨를 만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SK는 김씨의 체포와 관련해 모종의 역할을 수행했다는 기획입국설 또는 기획체포설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경정서 고위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김씨가 체포될 당시 여권이나 거류증 등 신분을 확인할 증명 자료를 가지고 있지 않아 일행과 함께 인근 파출소로 임의동행됐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일행은 체포 대상이 아니었으며 최종적으로 김씨만 타이베이 경정서 형사국에 연행해 조사했다고 밝혔다.
이 고위 관계자는 김 전 고문의 소재에 대한 외부 제보 여부를 묻는 연합뉴스 질문에는 "차량을 추적해 단서를 확보한 것이며, 제보는 없었다"고 밝혔다.
소식통에 따르면 최 부회장은 김씨가 체포된 뒤에도 타이베이 도심의 한 호텔에머물려 상황을 주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이민법 근거…조사 끝나는대로 강제추방" = 최태원 회장에 대한 내달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김 전 고문의 한국 송환 시기에 대해서도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대만 당국이 강제 추방 방침을 사실상 굳힌 것으로 전해졌다.
대만 당국자는 연합뉴스에 대만 이민법상 강제추방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대만 이민법 제36조는 대만 내에 이미 입국한 외국인이더라도 과거 범죄행위가 확인됐을 경우 강제추방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앞서 대만 당국은 김 전 고문을 체포할 당시 이민법 제18조 대만 또는 외국에서 범죄 기록이 있는 자는 입국을 금지한다는 규정을 근거로 제시했다.
대만 당국자는 김씨 사건이 검찰로 이첩돼 김씨가 운영한 것으로 알려진 무역회사와 관련, 대만 내 채권·채권 관계에 대한 막바지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당국자는 "형사 부분에선 별다른 범죄 혐의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당국은 조사가 끝나는 대로 결과를 이민서에 통보해 강제출국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현지 소식통은 김 전 고문이 대만 변호사들을 고용해 체포 사유가 된 이민법 위반 등의 혐의 등에 대해 대응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 전 고문은 이민법 위반 혐의와관련, 합법적인 거류증을 받아 체류했기 때문에 법 위반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한국 송환을 사실상 거부하는 것으로도 해석되는 태도다.
대만 당국 측은 김 전 고문이 송환 거부를 위해 소송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과 관련해서도 강제추방 등은 행정조치에 해당하기 때문에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한 대만 정부의 결정에 따라 정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김 전 고문이 여권이 무효가 된 상태여서 한국 송환을 위해서는 임시 단수 여권의 발급이 필요한 데 이 여권은 한국으로 갈 때만 발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