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동수 씨, 형님 유해찾다 사실 확인
- 日 시민단체 "정부가 진상 밝혀야"
일제가 태평양전쟁 말기에 일본 군인과 군속으로 강제 동원한 조선인 가운데 수만 명 분의 명부가 증발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이를 은폐·방치해온 것으로 24일 드러났다.
이러한 사실은 최동수(86·충남 태안군) 씨가 지난 6일 일본의 시민단체 관계자, 한국 및 일본의 변호사들과 함께 후생노동성을 직접 방문해 1945년 5월에 강제 징병된 형님(고 최동언 씨·1924년생)의 유해 행방과 입대 사실 등을 따지는 과정에서 확인됐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가 1971년과 1993년 한국 정부에 각각 전달한 조선인 군인·군속 명부(24만3992명)와 사망자 명부(2만1699명)는 물론 전체 동원 피해자 및 사망자 숫자가 전면적으로 수정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후생노동성 사회원호국 관계자는 최 씨가 지난 2010년부터 형님의 징병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명부·군번·근무 위치 등을 파악해 사망 일시와 장소를 알려줄 것을 요구한 데 대해 "현재 후생성(정부)이 갖고 있는 명부로는 관련 사실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무성의한 답변만을 되풀이했다.
최 씨는 이날 "조선인들을 전선의 총알받이로 강제 징병해 놓고 입대 사실조차 확인할 수 있는 서류가 없다니 말이 되느냐"고 따졌다고 밝혔다.
후생성 관계자는 또 1945년 이후 일본 패전까지 강제 징병된 조선인들의 명부가 없다는 것이 사실이냐는 시민단체 관계자 등의 거듭된 질문에 "구 일본육군과 해군 관련 명부는 후생성에 전부 인계됐으나 전쟁 혼란 상황 등 때문에 부대별 명부 등이 없는 경우가 있다"는 궁색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후생성의 이러한 답변은 태평양 전쟁 말기에 군인과 군속으로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의 명부가 상당수 '증발된 상태'임을 사실상 시인한 것이다.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증발된 조선인 명부가 최소 수만 명 분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일제 징병제에 따라 1944년 4월부터 조선에서 1924년생(갑자생) 남자를 상대로 실시됐던 징병검사('징병 1기') 수검 인원이 20만6000여 명에 이르는 것과 '징병 2기' 검사가 1945년 1∼5월 실시된 사실 등을 고려한 추산이다.
이와 관련해 후생성 인양원호국이 1963년 펴낸 '속속 인양원호의 기록'은 패전 당시의 조선인 군인, 군속 숫자를 36만4186명(군인은 육군 18만6980명, 해군 2만2299명 등 20만9279명)으로 집계해 놓고 있다. 이 집계대로라면 일본이 1993년 한국에 전달한 24만3992명 분(군인은 11만6300여 명)의 명부는 약 12만 명이 부족한 셈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일본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전후처리의 기본인 생사 확인 등도 안된 상황에서 1965년 한일협정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느냐"면서 "일본 정부가 조사위원회를 만들어 책임지고 진상을 조사해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