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필리핀에서 괴한들에 의해 납치됐던 50대 한국인 남서이 피살됐다고 외교부가 17일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지난해 10월18일 납치됐던 한국인 사업가 지모(53)씨가 납치 당일 목이 졸려 살해됐다는 내용을 필리핀 경찰청으로부터 통보받았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사건은 현직 3명, 전직 1명 등 필리핀 전·현직 경찰관들이 주도적으로 가담했으며, 납치범들은 지씨를 살해 후 전직 경찰관이 운영하는 화장장에서 소각, 증거인멸을 시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 당국자에 따르면 지씨는 지난해 10월 18일 필리핀 앙헬레스의 자택에서 납치돼 지씨의 부인이 현지 경찰에 신고했다.

　범행을 주도한 현직 경찰관(경사)은 납치 당시 마약 관련 혐의가 있다며 가짜 압수영장을 제시하면서 자신의 부인 차량에 지씨를 태워 데려간 것으로 알려졌으며, 현지에서 인력송출업을 해온 지씨와는 평소 알고 지냈던 사이로 전해졌다.

　필리핀 현지 경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이들 전·현직 경찰을 포함해 8명 가량을 용의자로 추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납치 당시 지씨와 함께 차량에 태워졌던 가정부는 사흘 후 풀려났으나 경찰은 이가정부가 사건 발생 이틀 전에 새로 고용됐고 이름도 가명을 쓴 점으로 미뤄 공범 관계로 보고 수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범행 2주일가량 후에 몸값으로 800만 페소(1억9천300여만 원)를 요구한 납치범들은 지씨 가족으로부터 500만 페소(1억2천여만 원)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지씨는 살해된 뒤였다.

　외교부 당국자는 "필리핀 당국에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고 있다"면서 전·현직 경찰이 연루된 것과 관련, "국가권력에 의한 사건이기 때문에 국가배상 등을 제기할수 있는 건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필리핀 경찰 당국은 현지 경찰관의 연루 가능성이 제기되자 이번 사건을 납치 범죄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납치전담반'(anti-kidnapping group·AKG)에 담당하라고 지시, 수사를 통해 용의자를 특정했다. 납치전담반은 곧 용의자들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라울 헤르난데즈 주한 필리핀 대사가 17일 오후 서울 세종로 외교부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외교부는 필리핀 전·현직 경찰관들이 주도적으로 가담해 한국인 사업가를 피살한 사건으로 주한 필리핀대사를 불러 엄정한 수사를 촉구했다. 연합뉴스

　김재신 주필리핀 대사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이날 페르펙토 야사이 필리핀 외교장관과 만나 이번 사건에 대한 유감 표명과 함께 철저한 수사를 요청할 예정이다. 한동만 외교부 재외동포영사대사는 이날 오후 주한 필리핀대사를 불러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기로 했다.

　한편 외교부는 이번 사건의 용의자로 다름 아닌 현지 경찰이 지목됨에 따라, 필리핀 경찰 당국을 비롯한 여러 레벨을 통해 우리 정부의 우려를 전달하고 철저한 수사 및 진상조사를 촉구한다는 방침이다.

　야사이 필리핀 외교장관은 이날 윤병세 외교부 장관 앞으로 전화를 걸어 이번 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철저한 조사를 약속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