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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의 중국인 이야기 <9> 역동적인 상족의 새로운 나라

청동기에 앞선 상족, 전차전으로 하 나라를 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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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9-04-14 19:4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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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윗과 골리앗의 전쟁

- 전차 70승·병력 6000명 가진 탕
- 흉포한 군주 걸왕 치러 들어가자
- 하나라 대군들 겁먹고 줄행랑 쳐
- 정예군사로 자만 빠진 군주 혼쭐

# 상족은 ‘동쪽 오랑캐’와 한 뿌리?

- 정착보다 유목적 삶 누리며 생활
- 허베이 남부·허난성 북부서 활동
- 동쪽으로 동이족 지역 경계 이뤄

# 금속 화살촉·창의 등장

- 구리·주석 합금인 청동무기 제작
- 광석 확보 위해 장강유역도 진출
- 문명 발달하면서 자연훼손 시작

‘하의 임금이 9주 목(牧)에게 금을 바치게 하여 그것을 녹여 정(鼎)을 만들어 상징물로 삼았다.’ ‘걸이 무도하여 정이 상(商)으로 옮겨졌다.’
   
중국 허난성 삼문협 괵왕묘박물관 내 대형벽화에 재현된 전차를 중심으로 한 고대 전장도 일부. 이 그림은 가로 10m, 세로 3m 정도 규모다.
공자의 ‘춘추(春秋)’를 노 나라 학자 좌구명이 해석한 ‘좌전(左傳, 춘추좌전)’에 나온 내용이다. 우 임금이 개척했다는 9주를 다스리는 자로부터 ‘금(청동무기)’을 내놓게 하여 ‘정’이라는 상징물을 만들었다는 것인데, ‘정’은 세 발(삼족정(三足鼎)) 또는 네 발(사족정(四足鼎))이 달린 솥으로 고대 중국에서는 왕권과 법의 상징이었으며, 예제(禮制)의 상징적인 기물이었다.

왜 하필 밥 짓는 솥이었을까. 아마도 백성을 배부르게 하는 것을 다스림의 근본으로 삼으라는 뜻이었으리라. 그런 ‘정’이 상으로 옮겨졌으니 단순히 권좌의 주인이 바뀐 것이 아니라 나라가 바뀌었다는 뜻이다.

■찬탈로 나라를 바꾼 상

   
하 나라를 멸하고 상 나라를 세운 성탕.
걸을 정벌하러 나선 탕의 격문을 보자.

‘여러분! 모두 이리 와서 내 말을 들으시오. 나같이 보잘것없는 사람이 감히 난을 일으키려는 것이 아니오. 하 왕조가 많은 죄를 지었기 때문이오. 그대들이 나를 원망하는 소리를 들었소. 그러나 나는 상제의 뜻이 두려워 정벌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오. 하 나라가 죄를 많이 지어 하늘이 그를 벌하라 명하신 것이오!

지금 여러분 가운데 ‘군주가 우리를 가엾이 여기지 않아 농사를 그만두고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말하거나, ‘임금이 어떤 죄를 지었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오. 하 임금은 백성들의 힘을 소진시키고, 나라의 재물을 약탈하였으며, 백성들이 나태해지고 서로 화목하지 않게 만들었소. 그리하여 ‘태양아, 네가 없어져야겠다. 우리도 너와 함께 멸망해야겠다!’라고 말하는 지경에 이르렀소.

하의 덕이 이와 같으니, 지금 내가 정벌해야만 하오. 내가 하늘의 징벌을 대신하도록 도와준다면 그대들에게 큰 상을 내릴 것이오. 내 말을 믿어도 되오. 나는 결코 약속을 저버리는 사람이 아니오. 만일 내 말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대들의 가솔을 데려다가 죽이거나 노비로 삼고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오.’

참 구차하다. 흔히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이고, 승자의 명분을 위해 패자의 과오는 더욱 저열하게 각색된다고 말한다. ‘주지육림’ 운운하는 사서의 기록에 따르자면 걸의 행태는 징벌돼야 마땅하다. 그런데 일부 백성, 혹은 세력은 탕에게 불만을 드러낸 것이다. 이에 탕은 걸의 죄를 늘어놓고 하늘의 명을 들먹이면서도 ‘나를 믿어주시오’ 애원하고, 상과 벌을 들먹여 협박까지 한다. 부덕과 음란이 있기는 했겠지만 모두가 수긍할 정도의 명분은 되지 못한 것이다. 명분도 없이 나라를 바꾸려 들다니, 뭔가 이상하다. 군사적 상황을 살펴보자.

■기마전(騎馬戰)의 시대

탕이 쳐들어가자 걸은 대군을 동원해 방어와 정벌에 나섰다. 그러나 걸의 군대는 탕의 군사와 대치하자 곧바로 지리멸렬해 등을 돌려 도망치기에 바빴다. 걸은 명조(鳴條)로 도망쳤다가 탕에게 잡혀 남소(南巢, 안휘성 소호의 동쪽)에서 죽었다. 이로써 하의 역사는 막을 내리고, 이계는 흉포한 군주라는 뜻의 ‘걸’로 기록됐다.

탕이 걸을 정벌하러 나섰을 때 병력은 70승(乘)의 전차와 6000명의 병력에 불과했고 하는 그보다 월등했다. 걸 또한 아무리 타락한 군주였다 해도 탁월한 용맹과 발군의 자질을 갖춘 당대의 군주였다. 그럼에도 진을 쳤던 하의 군사들은 한 번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등을 돌렸다. 군주의 나태함으로 군기가 흩트려져 있었던 것일까. 그렇더라도 너무 허망하다.

당시 전차에는 3명의 병사가 탑승했다. 왼쪽의 병사는 활을 쏘고 오른쪽 병사는 창을 썼으며 가운데 병사는 말을 몰았다. 먼저 전차대가 적의 진영을 헤집고 보병은 그 뒤를 따르며 적의 수급을 베는 기동전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지휘관의 지략과 전법, 그에 따른 군사의 사기가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핵심 요소가 된다.

자만에 빠져 나태한 군주의 군사와 잦은 전투와 훈련으로 단련된 군사의 대치라면 단번에 승패를 짐작하고 줄행랑칠 수 있다.

   
고대 중국에서 왕권과 법의 상징이었던 정(鼎).(왼쪽·가운데 사진), 왕권의 상징, 월(鉞 도끼)-하 나라 말기 유물.
■농경민족 하와는 다른 상족, 동이족이었나

사서에 따르면 상족의 시조는 설(契)이다. 그는 순 임금으로부터 사도(司徒)라는 관직을 명받고 윤리도덕으로 백성을 교화하라는 임무를 잘 수행하여 상에 봉해졌다. 상은 지금의 허난(河南)성 상구시 부근이다. 상족은 정착하기 보다는 유목적인 성향이 강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들은 하의 동쪽 황허 지류 언저리 지역인 상에 봉해졌지만 목축과 수렵에 능해 정착의 농경보다는 여러 곳을 찾아 돌아다니며 생활하기를 즐겼다. 하 나라를 멸하기 전 500여 년 동안 무려 여덟 차례나 근거지를 옮겨 다녔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주로 활동한 지역은 지금의 허베이(河北)성 남부와 허난성 북부 지역으로 동쪽으로 동이족 지역과 경계를 이루었다.

설에서 탕에 이르기까지 이미 열세 사람의 지도자를 거쳤다. 아버지인 13대 주계(主癸)를 뒤이은 탕의 이름은 천을(天乙)이다. ‘탕’은 폭정을 제거한 이에게 올리는 시호이기에 ‘사기’를 비롯한 사서는 그를 ‘성탕(成湯)’으로 상찬한다. 그럼에도 앞서 본 바와 같이 명분에서 여러 허점을 드러내 ‘성탕’이라는 상찬을 무색하게 한다. 특히 사마천은 전설시대부터 한 나라 대까지 수천 년을 역사로 만든 사람이고 ‘사기’는 문학적으로도 빼어나다. 결코 헛갈리거나 실수였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다른 까닭이 있지 않았을까. ‘동이(東夷)’에 주목하게 되는 대목이다. 탕은 ‘동쪽 오랑캐’인 동이와 매우 우호적이었고 한 뿌리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데 하를 이은 중국 역사의 주류로 기록해야 하니 붓끝이 고울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동이를 알자면 먼저 ‘치우(蚩尤)’를 만나야 한다. 다음 회에는 전설상의 황제와 건곤일척의 한 판 승부를 치렀다는 ‘탁록지전’의 현장으로 가겠다.

■청동기시대, 자연 훼손의 시작

이제 금속 화살촉과 창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특히 전차는 쇠붙이가 필수이니 금속시대가 열렸다는 것이다. 동이는 활을 잘 쏘고 쇠를 잘 다룬 족으로 알려진다. 아직 철기시대가 열리기 전이니 청동기시대였다.

청동은 구리와 주석의 합금이다. 불을 잘 다뤄야 하지만 양질의 구리와 주석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앞선 여덟 차례의 근거지 이동은 바로 그 광석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를 멸한 이후에도 상은 도읍을 옮기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고, 장강 유역까지 실제적인 군사적 발걸음을 뻗친다.
특히 장강 유역으로의 진출은 보다 양질의 풍부한 광석을 확보하기 위한 행보였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하나가 있다. 당시까지 기후는 여전히 온난 습윤했고 황허 유역의 대지는 울창한 숲의 세상이었다. 그런데 청동기시대가 열린 것이다. 청동기는 인간 문명의 진보에 획기적인 전기였지만 이제까지의 삶에서는 생각하지 못한 엄청난 열량의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 중국에서 석탄에 관한 기록이 나타나는 것은 서기 4세기경으로 동진(東晋)시대 무렵이다. 그러니 당시 에너지원은 우거진 숲의 나무에서 얻어내는 숯이었다. 인간 문명의 진보를 위해 엄청난 자연의 훼손이 시작된 것이다.


◆원하는 형태의 거푸집 만들어 단단한 청동 무기 보급

- 간쑤성 임가 유적 칼 조각·파편, 중국서 가장 오래된 청동 유물
- 문명동천설, 최근 허구 전락

   
중국 각지에서 발견된 화살촉 등 청동 병기류.
중국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청동 유물은 황허 상류에 해당하는 간쑤성 동향현 임가 유적의 청동 파편과 칼 조각이다. 청동기시대 초기인 기원전 3000년경의 것으로 서방에서 전래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아프리카에서 탄생하고 진화한 인류가 북쪽을 거쳐 동쪽으로 이동한 것처럼 문명 역시 그러했다는 ‘문명동천설(文明東遷說)’이 근거다. 간쑤성은 일찍부터 칭하이성 북쪽과 타클라마칸 사막 남쪽으로 연결되어 서방 통로의 길목으로 알려졌기에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사람의 이동이 편치 않은 티베트 고원과 산맥의 험준함은 꽤 오랫동안 동서의 이동에 장애가 되기도 했으니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수도 없다. 창조적 상상이 필요한 대목이다.

   
구리가 함유된 동광석.
알다시피 청동은 구리와 주석의 합금이다. 구리는 일반적으로 그 성분이 포함된 광물에서 추출하지만 요즘도 드물게 자연구리로 산출되기도 한다. 반짝거리는 황동색의 광물로, 굳이 보석이라는 개념은 아니어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뜨겁게 달아오른 숯불 속에 지니고 있던 자연구리 조각을 떨어트렸다. 당장 꺼낼 수는 없지만 불이 꺼지면 되찾을 수 있을 테니 지켜보며 기다렸다. 그런데 단단하던 구리 조각이 뜨거운 열기에 녹는 것처럼 이지러지며 모양을 바꾸는 것이 아닌가. 불이 꺼진 뒤 꺼내보니 이번에는 다시 단단한 원래의 성질 그대로. 아, 더 뜨거운 열기면 녹일 수 있고 그것으로 일정한 형태를 만들 수 있겠구나!

이미 토기를 거쳐 도기를 만들며 불을 다루는 법은 알고 있었으니 거푸집을 생각하는 것도 금방이었다. 과연 구리를 녹여 거푸집에 부은 뒤 식기를 기다려 꺼내니 생각한 모양대로 되었고 지금껏 다루었던 그 어느 것보다 단단했다. 그런데 아쉬운 점이 있었다. 단단하지만 구리 자체의 무른 성질로 대형 기물을 제작하기가 어려웠다. 문득 구리를 채취하던 곳에서 본 다른 광물이 생각났다. 그것들 역시 불에 녹일 수 있지 않을까. 과연 그랬다. 그리고 그것들이 섞여지니 구리보다 더 단단한 금속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마침내 청동기시대가 열린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의 영향으로 오랫동안 문명동천설을 수긍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인류의 이동이 어떠했던 인류의 지혜는 우연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또는 필요에 따라 저마다의 발견과 발명을 해왔고 교류로써 진보했다. 한반도의 문명 역시 다르지 않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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