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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의 중국인 이야기 <10> 치우, 황허세력 황제에 당하다

황제 자손 자칭한 중국, 동이족 치우도 조상 삼아 ‘역사 왜곡’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4-21 19:22:41
  •  |   본지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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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중국 첫 전쟁 ‘탁록지전’

- 삼황 ‘신농’ 쇠하자 제후들 반란
- 황제 백성들 고통받자 징벌 조치
- 제후들 복종했으나 치우만 불복
- 산둥서 잡아 목 베고 탁록에 묻어

# 치우에 대한 또다른 신화

- 황제 군의 흉포한 공격 이어지자
- 자애로운 염제 몸 낮춰 귀양살이
- 청동기 잘 다룬 아들 치우는 분노
- 남방 묘족 사람 모아 복수 꿈꿔

# 황제세력 발상지는 탁록?

- 사기 수록 ‘탁록지야’ 구절 근거
- 최근 중국 곳곳에 ‘삼조당’ 건립

- 황하와 500㎞나 떨어진 들판서
- 치우 물리쳤다는 건 납득 어려워
- 동이 세력권으로 보는 게 설득력

오늘날 중국인은 자신들을 ‘염황(炎黃)의 자손’이라 말한다. 염제(炎帝)와 황제(黃帝)는 모두 전설상의 인물이다.
   
고대 중국 대륙 최초의 전쟁으로 불리는 탁록지전의 현장인 허베이(하북)성 탁록에 최근 급조한 중화삼조당에 걸려 있는 벽화. 치우와 그 군사들이 황제에 맞서 싸우는 모습이다.
그런데 고대 사서가 전하는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여러 설이 있지만 수인(燧人)·복희(伏羲)·신농(神農)을 삼황으로, 황제·전욱(顓頊)·제곡(帝嚳)·요(堯)·순(舜)을 오제로 받든다.

수인은 나무를 비벼 불을 만든 중국판 프로메테우스다. 복희는 어로와 수렵을 가르치고 팔괘를 창제했으며 매듭으로 숫자 세는 방법을 만들었다. 신농은 땅을 경작하여 농사짓는 방법을 가르친 이다. 오제는 황제로부터 순차적으로 황허 중류유역의 주류세력이 된 지도자들이다. 마지막 순의 선양으로 우 임금이 하 나라를 세웠음은 이미 보았다. 염제는 없는 것이다.

■포악한 치우, 황제에 불복하다

   
‘사기’의 기록을 보자. ‘신농의 세력이 쇠해가자 여러 제후가 서로를 침탈하며 백성을 못살게 굴었다. 이에 헌원(軒轅, 황제)은 신농에게 조공을 바치지 않는 제후들을 징벌했는데 치우(蚩尤)만 포악하여 따르지 않았다. 헌원은 염제가 제후들을 침범하려 하였기에 맹수들을 조련하여 판천(阪泉, 지금의 허난(河南)성 부구(扶溝)현의 들판에서 세 번 싸워 이겼다. 치우가 다시 난을 일으키자 헌원은 제후들의 군사를 소집하여 탁록의 들판에서 치우를 사로잡아 죽였다. 이에 제후들은 그를 천자로 받들어 신농씨를 대신하게 하였으니, 바로 황제이다.’

‘치우가 다시’라는 대목에서 염제와 치우의 연관성이 읽혀지고, 염제는 오제에 들지 못하는 반란세력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중국인은 ‘염황의 자손’을 자칭한다.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당시 황허 중하류 유역에는 1만 개가 넘는 크고 작은 부락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중에서 지금의 허난성 지역에 근거를 둔 신농씨의 진구(陳丘) 부락과 황제의 소전(少典) 부락, 산시(山西)성 운성(運城) 혹은 산둥(山東)성 지역의 치우가 이끄는 구려(九黎) 부락의 세력이 가장 강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기’는 ‘치우만이 포악하여 따르지 않았다’고 기록한다. 여러 제후가 헌원에게 복종하는 상황에서도 어지간히 뻣뻣했던 모양이니 군사력이 배경이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전쟁은 시작됐다. 이른바 ‘탁록지전(涿鹿地戰)'이다. 이전에도 염제와의 ‘판천 전쟁’ 같은 기록이 있지만, ‘탁록지전’은 고대 중국 대륙 최초의 전쟁으로 불린다. 그만큼 치열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전쟁의 양상은 내내 황제의 고전이었다. 치우는 바람을 다스리는 신 풍백(風伯)과 비를 다스리는 신 우사(雨師)의 도움을 받아 땅이 진동할 만큼 천둥과 번개를 내려치고, 눈앞이 보이지 않도록 자욱한 안개로 땅을 뒤덮기도 했다니 말이다. 그러다가 황제가 지남거(指南車, 수레 위 인형의 팔이 항상 남쪽을 가리키도록 한 장치)를 만들어 전쟁의 판세를 뒤집을 수 있었다. 패퇴하는 치우를 황제는 산둥 지역까지 추격하여 붙잡아 죽인 뒤 그 목을 베어 탁록에 가져다가 묻었다.


■치우에 대한 또 다른 신화

   
동이족이 쇠를 잘 다룬 민족이었음을 보여주는 벽화. 역시 중화삼조당에 있다.
다른 이야기도 있다. 남쪽 소수민족에게 전해지는 염제와 치우에 관한 신화다. ‘자애로운 염제는 온갖 맹수를 앞세운 황제 군의 흉포한 공격에 제대로 응전도 펼치지 않고 남방으로 도망쳤다. 승자가 된 황제는 염제의 등 뒤에 대고 거만한 웃음을 터트리며 ‘다시는 중원 땅에 발을 딛지 마라!’ 했다. 염제는 몹시 자존심이 상했지만 그래도 전쟁으로 백성이 상하는 것보다는 나은 일이라 생각해 남방에서 몸을 낮추고 조용히 살기로 했다.

염제에게는 치우라는 자식이 있었다. 혹은 자식이 아니라 염제를 따르는 부족 중 하나인 구려족의 수장이라는 설도 있다. 아무튼 치우는 그처럼 맥없이 도망친 것이 몹시 분했다. 그는 황제와 함께 ‘전쟁의 신’으로 불리기도 하는, 싸움에서는 탁월한 존재였다. 당장 그 생김새만 해도 머리는 구리로 만들어진 데다 이마는 쇠로 되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게다가 무기를 만드는 능력도 뛰어나 머리에 쇠뿔을 달고 있을 정도였다. 청동기를 다루는솜씨가 뛰어난 부족이었던 것이다.

치우는 복수전을 건의한다. 하지만 염제는 많은 피를 흘려야 하는 전쟁에 반대한다. 치우는 남방에 살고 있던 묘족(苗族) 사람들을 전쟁에 동원하기로 마음먹는다. 일설에는 그 묘족이 치우가 수장이던 구려족이라는 설도 있고, 지금도 묘족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화에 따라 치우를 조상으로 여긴다.’ 탁록에서 한바탕 결전을 치른 내용은 같은데 뿌리와 배경은 완전히 다르다. 수상하면 현장검증이 단서를 찾는 길이다.

■탁록지전의 현장을 검증하니

탁록은 지금의 허베이(하북)성 서북쪽, 베이징에서 장자커우(張家口)시로 가는 길의 중간 지점 남쪽에 있다. 황제 세력의 주된 근거지가 지금의 허난성 신정(新鄭)시 일원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 탁록을 발상지로 보는 의견이 개진됐다. ‘사기’에 나오는 ‘탁록지야(涿鹿之野)’라는 구절을 근거로 황제 세력의 첫 발상지로 삼는 것이다. 즉 탁록에서 시작해 신정 일원까지 세력을 펼친 뒤 염제 세력을 쫓아내고, 다시 자신들의 발상지 탁록에서 치우까지 물리쳤다는 이야기이다. 최근 들어 급조된 ‘중화삼조당(中華三朝堂)’도 그에 근거하는 셈이다.

하지만 황제 세력의 첫 발상지를 탁록으로 인정하더라도 황허 남쪽, 판천 들판에서 염제를 무너트렸다니 이미 주된 근거지는 그곳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치우 세력이 쳐들어오니 다시 황하를 건너 족히 500㎞ 이상 되는 탁록 들판까지 나아가 물리쳤다? 이어서는 산둥까지 수백 ㎞를 쫓아가 치우의 목을 베고, 그 목을 다시 탁록으로 가져와 묻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현대의 기동전으로도 감당하기 버거운 전선이다. 더구나 적장인 치우의 목은 왜 굳이 탁록으로 되가져와 묻어야 하는 것인지? 

한 번 달리 생각해보자. 일단 묘족의 전설을 포함해 각색된, 지금의 구이저우(貴州)성 지역으로 도망가 있던 치우와 그의 구려족, 혹은 묘족이 황제에게 도전했다는 설은 접어둬야 하겠다. 구이저우성에서 북으로 올라가면 곧장 만날 수 있는 허난성 신정의 황제 근거지를 두고, 굳이 1000㎞도 훨씬 더 돌아 허베이(湖北)성 서북쪽에 진을 쳤다면, 아무리 오묘한 진법이라도 너무 무리한 행군이다. 게다가 그 원정군이 개전 초기 한동안 승세를 누리다가 황제의 지남거 발명으로 일거에 패퇴했다니….

탁록을 황제가 아니라 치우의 세력권으로 보면 어떻게 될까. 치우가 동이족이라는 데 특별한 이견이 없고, 산둥성 일원과 랴오닝(遙寧)성 남쪽, 허베이성 동북지역을 아우르는 그야말로 ‘동이’의 지역이니 훨씬 합리적이지 않은가. 이럴 경우 황제가 신정 남쪽 판천 들판에서 인근의 염제 세력을 몰아낸 뒤, 다시 북쪽의 탁록으로 쳐들어가 치우 세력과 겨뤄 이겼다면 일련의 행보가 일목요연할 것 같다. 탁록지전 초기에 황제군이 고전한 까닭도 장거리 원정에 기인한 것으로 설명이 가능할 터이다. 또한 치우 세력의 발상지에 그의 목을 묻어 장사 지내는 것도 그럴듯하지 않은가. 


■동이족을 주목하는 까닭

지난 연재로 보았듯 황허문명의 주류세력은 황허 중서부 유역을 터전으로 삼은, 농경을 주된 경제활동으로 하는 세력이었다. 반면 동이족은 중국 동북부를 흐르는 랴오허(遙河)문명권과 산둥지역을 배경으로 훨씬 역동적인 활약을 펼친 다른 세력이다. 그럼에도 더 북쪽 홍산(紅山)문명까지 중국의 역사로 독점권을 주장하려는 시도가 공공연하기에 그들의 사서에 기록된 동이족의 허점을 되새겨두려는 것이다.  



# 중국 왕조 ‘하·은·주’가 ‘하·상·주’보다 익숙한 이유는

- 상나라 때 도읍 된 은 중흥 이뤄
- 상보다 ‘은나라’로 많이 불려
- 씨를 짓는 방법도 일정치 않아
- 조상 시호·관직·나라 등서 따와

‘하·은·주와 하·상·주’.
   
허베이성에 최근 조성한 중화삼조당.
중국 왕조 변천을 ‘하·은·주’로 배웠는데 ‘하·상·주’로 쓰고 있다. 사마천도 ‘사기’에서 ‘은(殷)본기’로 쓰지만 중국은 여전히 ‘하·상·주’로 교육한다.

   
중화삼조당에 모셔진 삼조의 상과 위패(아래 사진). 왼쪽부터 염제, 헌원황제, 치우.
‘은’이 등장한 것은 상 나라 중기에 도읍을 지금의 허난(하남)성 안양시(安陽市)인 ‘은’으로 옮겨 중흥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래는 상이었기에 중국의 일반적 표기에 따른 것이다. 기왕 나온 김에 고대 중국의 나라 이름, 성(姓), 씨(氏)의 개념도 미리 알아두는 것이 편할 듯싶다.

성은 개인이나 가족을 넘은 종족 전체를 이르는 칭호이고, 씨는 성이 번창하여 분가(分家) 등의 방법으로 갈라져 나온 경우이다. 고대 중국의 8대 성은 희(姬) 강(姜) 규(嬀) 영(嬴) 사(姒) 길(姞) 요(姚) 운(妘)으로 모두 ‘계집 女’가 들어가는 모계 성이다. 일부일처제가 아닌 성(性)에 자유로웠던 시기, 혈족의 확인은 모계로만 가능했던 모계씨족사회의 반영이다.

씨를 짓는 방법은 일정하지 않아 조상의 시호나 관직, 조상이 세웠던 나라, 주거지 등 다양한 것들에서 가져왔다. 하여, 고대 사서에 나오는 백성(百姓)은 지금 우리가 흔히 쓰는 일반 국민으로서의 백성이 아니라 백관(百官), 즉 여러 관직에서 이름을 따 씨로 삼은, 각각의 많은 종족을 이르는 의미이다.

비교적 엄격하던 성과 씨의 구분은 훗날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며 성씨의 합류현상을 보이게 된다. 오늘 우리가 쓰는 성씨이고 부계사회로의 변화가 가져온 결과이기도 하다.

   
나라 이름 역시 뒷날 주 나라가 세워지며 여러 제후가 봉해지는데 노(魯)지역에 봉해지면 노 나라, 제(齊)지역에 봉해지면 제 나라로 칭해진 것처럼 상족의 시조 설은 허난성 상구지역의 상에 봉해졌다. 이름이 천을(天乙)인 탕 임금의 나라가 상인 것도 그 때문이며, 중기에 은으로 도읍을 옮기며 은 나라로 불린 것도 같은 이치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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