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과 장인 중상층 살았지만
- 약탈 등 위험 노출된 성밖 서민
- 차별 피하려 성 내부 진입 꿈꿔
중국은 성(城)의 나라다. 아니다, 이제는 성(省)의 나라이니 성(城)은 과거이고 관광유산 정도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성의 역사는 ‘중국인’에게 관광유산 이상의 큰 영향을 끼쳤고,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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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산서성 진중(晉中)시의 평요(平遙)고성, 허난성 정주시의 정주상성 유지, 복원중인 정주상성. 규모가 엄청나다. |
유목의 삶에도 물은 필수이거늘 하물며 농경민족의 경우라면 강줄기를 벗어날 수 없다. 중국 문명의 젖줄인 황허는 골 깊은 고원지대를 달려오다 허난(하남)성에 이르면서부터 황토의 대평원을 적시고, 그 땅의 사람들이 역사의 주인공이 됐다. 강줄기에 기댄 대평원에서의 삶. 이미 하 나라 성지(城址)에서 봤지만 사방이 평원인 땅에서 안전을 확보하려면 울타리는 필수이다. 처음에는 목책 정도였겠지만 생산성의 증가에 따라 인구가 늘어나며 더 튼튼한 성을 쌓을 수 있게 되었다. 나무로 틀을 짜고 지천에 널린 황토를 이겨 넣은 뒤 다지고, 다시 그 위에 더하는 판축법의 방법이었다.
일정한 규모의 성이 완성되면 그 안에 왕을 비롯한 치자(治者), 주요 생산물을 담당하는 장인(匠人) 등과 함께 일정 규모의 사람들이 거주한다. 하지만 드넓은 농경지를 모두 성으로 에워쌀 수는 없으니 다수의 사람은 여전히 성 밖에 거주할 수밖에 없었다. 가정해보자. 적이 쳐들어온다. 성 밖의 거주민들은 안으로 피신하려 하겠지만 그들 모두를 수용할 수는 없다. 나가 싸워 물리칠 수 있는 적이 아니라면 일단 성문을 닫아걸고 농성을 하며 승기를 노려야 한다. 그 사이 피신하지 못한 성 밖 거주민은 어찌될까. 당연히 약탈당하고 쫓기며 도륙당하기 십상이다.
성 안 사람들은 선민의식을 넘어 치자에 대한 복종심과 함께 성의 보호를 절대적 가치로 인식하게 된다. 성 밖 사람들은 단순한 소외감 정도가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야만 생명을 지키고 소중한 것들을 보존할 수 있는 절박한 원(願)의 대상이 된다. 상 나라 때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호구(戶口)제도가 그 연원이라면 무려 4000여 년의 세월이다.
중국인은 오늘도 호구에 따라 삶에 큰 차별을 받는다. 호구는 우리의 호적이나 주민등록과 유사하지만 다르다. 태어나고, 살고 있다고 얻게 되는 것이 아니다. 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중화인민공화국 설립 이후 1958년 법제화됐다. 요약하면 도시와 농촌으로 주민을 이원화한 것이다. 그 차이를 간단히 이해하자면 농촌주민이 도시에 들어와 공사장에서 일을 하더라도 합법적으로 거주할 자격은 없다. 그러니 그 자식들은 도시의 초중고에 취학할 수 없는 따위의 차별이다. 당연히 없어져야 할 제도이지만 여차하면 도시 인구는 폭발하고 농촌은 공동화되기 십상이니 요원하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당과 정부에 대한 순종과 지지, 어쩌면 그 근원은 성 안에 대한 선망의 유산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