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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의 중국인 이야기 <12> 도읍 8번 옮긴 상족의 기질

국가 중대사마다 ‘신의 뜻’ 점괘 보고 길흉을 판단하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5-12 18:52:24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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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목적 성향에 빈번했던 천도

- 10대 왕 중정 ‘오’로 도읍 옮긴후
- 17대 남경까지 다섯 번이나 변경
- 13대 조을은 ‘경’ ‘형’ 두 번 천도

# ‘제정일치’ 사회 서막 열다

- 몸 아픈 조을 점 쳐서 도읍 이전
- 천신·조상숭배 ‘신정 정치’ 강조
- 산 사람 매장 순장 풍습도 늘어나

# 정치는 과거 잘못 돌아보는 것

- 9대 왕 태무, 이윤아들 재상 기용
- 요망한 뽕나무 자라 불길함 엄습
- 재상 말듣고 덕 닦자 뽕나무 죽어

탕이 죽었다. 태자 태정(太丁)이 있었지만 즉위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태정의 동생 외병(外丙)이 즉위했지만 그 또한 3년 만에 죽었다. 뒤를 이은 동생 중임(中壬)은 4년 만에 죽었다. 이에 이윤은 탕의 장손인 태정의 아들 태갑(太甲)을 제위에 올렸다. 태갑은 즉위 3년이 지난 뒤부터 포악해져 법령을 어기고 도덕을 문란하게 했다. 이윤은 태갑을 동궁(棟宮)으로 내쫒고 자신이 직접 조회를 받고 국정을 관장했다. 태갑이 3년간 과오를 회개하자 이윤은 정권을 되돌려줬다. 태갑이 덕정을 베풀기 시작하자 사방의 제후들이 모두 복종했다.
   
상족은 제사를 드릴 때 사람을 산 채로 제물로 받쳤다. 그들은 노예였다. 1 조상제 땐 제물인 사람을 생매장했고 2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땐 산 채로 불구덩이에 던졌으며 3 강의 신에겐 물속에 던졌다. 그리고 4 땅의 신에게는 생매장을 했다.
상 나라는 하보다 권력체제는 훨씬 강화되었을 것이다. 제법 잘 짜인 관료제도만 봐도 알 수 있다. 당시의 국가권력 강화는 곧 왕권 강화에 다름 아니었다. 그런데 재상의 신분으로 ‘태갑을 제위에 올리고’ ‘내쫓고’ ‘정권을 되돌려줬다’라고 ‘사기’는 전한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이윤이 제위를 찬탈했지만 태갑이 다시 되찾은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렇지만 이윤은 죽은 뒤 상의 도읍 박에 묻혔으며 상의 조묘(祖廟)에 모셔졌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상의 조상과 같이 섬겼다는 의미이다. 훗날 이윤이 죽고 그의 아들 이척(伊陟)이 재상에 올랐는데, 그때의 왕 태무(太戊)가 ‘불신(不臣, 신하로 삼을 수 없다)’이라 말했다는 기록이 있다. 즉 재상이지만 신하로 여길 수 없다는 것이니, 그만큼 이윤의 공적은 아들에까지 미치도록 컸다는 의미이다. 이윤은 반심이 있었다기보다 건국과 치국에서 큰 공적으로 탕으로부터 특별한 권한 행사를 인정받은 신하 이상의 위치였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요사스러움, 덕행 못 이겨

개심한 태갑의 공적이 뛰어났던 모양이다. 이윤은 그의 공적을 기린 태갑훈(訓) 3편을 짓고, 사후에는 태종(太宗)이라는 시호를 올렸다. 태갑을 뒤이은 아들 옥정(沃丁) 8년에는 이윤이 죽자 천자의 예로 장사를 지냈다. 옥정 이후 그의 동생 태경(太庚), 태경의 아들 소갑(小甲), 소갑의 동생 옹기(雍己) 등이 뒤를 이었다. 그런데 이때 제후들이 조회에 들지 않을 만큼 국세가 쇠해졌다.

당시 왕은 전제적 권력과 권위를 가졌지만 온전히 절대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곳은 일부에 국한된 작은 지역이었다. 황허 연변 넓은 구역에 산재한 제후국이라는 이름의 여러 부족과의 관계는 여전히 부족연합체적 성격이 짙었다. 즉 직접 맞설 수 없으면 조회에 들고 공물을 바치던 관계였던 것이다. 그러니 왕의 실질적 힘, 특히 무력이 약해지면 언제라도 외면하고, 여차하면 반발할 수 있었다. 제후뿐 아니라 영향력 큰 일부 신하까지도 포함됐다.

옹기의 뒤를 이은 동생 태무(太戊)는 이윤의 아들 이척을 재상으로 삼았다. 이때 박에서 뽕나무와 닥나무가 함께 자라기 시작하더니 하룻밤 사이에 한 아름이 넘게 커졌다. 이를 불길하게 여긴 태무는 이척에게 까닭을 물었다. 이척은 “신이 듣자니 어떤 요사스러움도 덕행을 이기지는 못한다고 합니다. 임금께서 행하신 정치에 잘못은 없었는지요. 임금께서는 덕행과 수양에 힘을 쓰시지요”라고 했다. 태무가 그 말을 따르자 뽕나무가 말라 죽었다. 태무가 이척을 칭송하며 그를 신하 이상으로 대우하려 하자 이척은 사양했다. 상 나라는 다시 흥하게 되어 제후들이 복종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정치의 요체를 가르침이다.
   
■천도를 주저하지 않았던 상

태무가 죽고 아들 중정(中丁)이 뒤를 이었다. 중정은 오(隞, 허난성 정주시)로 천도했다. 그 뒤 하단갑(河亶甲)이 상(相, 허난성 내황현), 조을(祖乙)이 형(邢, 허베이성 형태시), 남경(南庚)이 엄(奄, 산둥성 곡부시)으로 각각 천도했다. 더군다나 뒤에 따로 보겠지만 갑골문이 발견돼 그 내용을 해석한 바에 따르면 조을은 형으로 도읍을 옮기기 전에도 경(耿, 하진시)으로 천도했는데 이유가 몸이 아파서라는 것이다. 황당하다. 또한 형으로 옮긴 뒤에도 다시 비(庇, 산둥성 어태현)로 천도했다.

정리하면 하를 정벌하고 300여 년 사이에 임시 도읍으로 삼은 서박을 제외하고도 언사→박→오→상→경→형→비→엄, 뒤에 다시 은(殷)으로 천도하니 모두 여덟 차례다. 지역도 산시(산서)성 서쪽 끝자락인 하진에서 북으로는 허베이(하북)성 형태, 남으로는 허난성 상구, 동으로는 산둥(산동)성 곡부까지 그야말로 종횡무진이다. 이동에 거침없는 유목적 성향 때문이었을까.

상족 역시 황허 지류 언저리를 터전으로 삼은 부족이었다. 그러니 다른 부족들이 주 경제활동으로 삼은 농경과 그에 따른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생산의 이점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당대 가장 앞선 청동기문화를 일군 그들은 능력을 농경에 활용하지 않고 무기를 발전시켰고, 그것으로 하를 정벌했으니 어찌 도읍을 옮기는 일 따위에 거침이 있었으랴. 언제부터인가 중국의 역사서는 상족을 하족의 일원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렇지만 상족은 확실히 하족과는 다른 성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신정(神政)의 나라, 상

특이한 것은 중정이 천도한 오의 정주상성(鄭州商城)을 제외하고는 은에서 거대한 도읍을 일굴 때까지 다른 도읍지에서는 이렇다 할 유적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중정 후기 이후로 내내 국세의 부침이 반복됐다. 사방의 이족(異族)을 정벌하러 나섰다는 기록도 산재한다.

어쩌면 이윤이 구축하고 아들 이척까지 이어진 정교한 명분의 통치가 시들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쳐들어오면 나아가 쳐부수고, 따르지 않으면 짓밟아 정복하는 무력의 정치.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조을이 몸이 아파 천도할 때 점을 치니 도읍을 옮겨야 한다는 점복의 결과가 있었다는 것이다.

농경족인 하는 하늘의 실체를 알았기에 다스리는 자를 ‘하늘의 아들’ ‘천자’로 섬겼고, 조상의 경험과 지혜를 삶의 근본으로 삼았다. 하지만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며 하늘과 산천을 신으로 숭배하는 유목족은 인간이 만든 ‘천자’는 허울임을 간파해 적당히 활용할 뿐이었고, 조밀한 지배체제는 거추장스러웠을 것이다.

조을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상족은 중요한 일을 앞두고 신의 뜻을 알아보기 위해 점을 쳤고 그에 따랐다. 이른바 ‘신정정치’였다.

갈수록 깊어지는 정치에서의 인간의 간교함과 사악함을 보자면 수긍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상의 신정은 참으로 잔인했다. 하의 유적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순장(殉葬)이 상에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늘어난다.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는 사람을 산 채 불구덩이 속에 던져 제물로 삼았다. 땅의 신에게는 사람을 생매장해 제물로 삼았다. 강의 신에게는 물속에 던져 제물로 삼았다. 제사가 크면 클수록 희생 제물은 많았고 거침이 없었다. 다스리는 왕뿐 아니라 귀족에 해당하는 상층까지 순장이 만연했다. 제물과 순장을 위해 노예를 확보해야 했고 그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그 잔인한 현장을 곧 만나게 될 것이다.


# ‘城의 나라’ 중국…성 안팎 경계로 계급화 이뤄져

- 안정적인 삶 누리려 ‘성’ 건립
- 왕과 장인 중상층 살았지만
- 약탈 등 위험 노출된 성밖 서민
- 차별 피하려 성 내부 진입 꿈꿔

중국은 성(城)의 나라다. 아니다, 이제는 성(省)의 나라이니 성(城)은 과거이고 관광유산 정도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성의 역사는 ‘중국인’에게 관광유산 이상의 큰 영향을 끼쳤고, 여전히 유효하다.
   
위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산서성 진중(晉中)시의 평요(平遙)고성, 허난성 정주시의 정주상성 유지, 복원중인 정주상성. 규모가 엄청나다.
유목의 삶에도 물은 필수이거늘 하물며 농경민족의 경우라면 강줄기를 벗어날 수 없다. 중국 문명의 젖줄인 황허는 골 깊은 고원지대를 달려오다 허난(하남)성에 이르면서부터 황토의 대평원을 적시고, 그 땅의 사람들이 역사의 주인공이 됐다. 강줄기에 기댄 대평원에서의 삶. 이미 하 나라 성지(城址)에서 봤지만 사방이 평원인 땅에서 안전을 확보하려면 울타리는 필수이다. 처음에는 목책 정도였겠지만 생산성의 증가에 따라 인구가 늘어나며 더 튼튼한 성을 쌓을 수 있게 되었다. 나무로 틀을 짜고 지천에 널린 황토를 이겨 넣은 뒤 다지고, 다시 그 위에 더하는 판축법의 방법이었다.

일정한 규모의 성이 완성되면 그 안에 왕을 비롯한 치자(治者), 주요 생산물을 담당하는 장인(匠人) 등과 함께 일정 규모의 사람들이 거주한다. 하지만 드넓은 농경지를 모두 성으로 에워쌀 수는 없으니 다수의 사람은 여전히 성 밖에 거주할 수밖에 없었다. 가정해보자. 적이 쳐들어온다. 성 밖의 거주민들은 안으로 피신하려 하겠지만 그들 모두를 수용할 수는 없다. 나가 싸워 물리칠 수 있는 적이 아니라면 일단 성문을 닫아걸고 농성을 하며 승기를 노려야 한다. 그 사이 피신하지 못한 성 밖 거주민은 어찌될까. 당연히 약탈당하고 쫓기며 도륙당하기 십상이다.

성 안 사람들은 선민의식을 넘어 치자에 대한 복종심과 함께 성의 보호를 절대적 가치로 인식하게 된다. 성 밖 사람들은 단순한 소외감 정도가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야만 생명을 지키고 소중한 것들을 보존할 수 있는 절박한 원(願)의 대상이 된다. 상 나라 때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호구(戶口)제도가 그 연원이라면 무려 4000여 년의 세월이다.

   
중국인은 오늘도 호구에 따라 삶에 큰 차별을 받는다. 호구는 우리의 호적이나 주민등록과 유사하지만 다르다. 태어나고, 살고 있다고 얻게 되는 것이 아니다. 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중화인민공화국 설립 이후 1958년 법제화됐다. 요약하면 도시와 농촌으로 주민을 이원화한 것이다. 그 차이를 간단히 이해하자면 농촌주민이 도시에 들어와 공사장에서 일을 하더라도 합법적으로 거주할 자격은 없다. 그러니 그 자식들은 도시의 초중고에 취학할 수 없는 따위의 차별이다. 당연히 없어져야 할 제도이지만 여차하면 도시 인구는 폭발하고 농촌은 공동화되기 십상이니 요원하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당과 정부에 대한 순종과 지지, 어쩌면 그 근원은 성 안에 대한 선망의 유산인지도 모른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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