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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의 중국인 이야기 <14> 점괘를 기록한 갑골복사

상나라 순장 문화와 교육 … 서구 문명과 어깨 나란히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5-26 18:43:19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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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허서 대규모 생매장 흔적

- 궁전·종묘 등 곳곳에 제사갱 분포
- 산채 또는 목 잘라 잔인하게 묻어
- 왕의 묘에선 200여 유골 발굴도

# 동서양 순장 풍습 성행

- 이라크 왕비묘에 매장된 여인들
- ‘수금’ 줄에 손 닿은 상태로 묻혀
- 이집트·마야 등도 순장유적 확인

# 19대 왕 반경 이후 문자 급증

- 부침 많았던 상, 교육 필요 절감
- 명석한 왕들 다양한 학교 설립
- 점복 후 결과도 기록 통치 체계화

- 당시 수메르서도 학교 세워 교육
- 역수학·의·신학·자연 등 가르쳐

점을 치고, 그 점괘를 기록한 것이 갑골복사다. 무엇을 묻고, 어떤 답을 얻었는지 복사의 내용을 살펴보자.
   
은허의 옛 건축물 흔적과 복원된 회랑이다. 방대한 규모의 궁전 터와 회랑은 상나라 시대 왕권의 간단치 않은 힘을 상징한다.
“임신일에 복을 하며 정인(貞人)이 묻습니다. 사냥을 나갈까요?” “나흘 후 함정을 파 순록을 잡아라.” “과연 점괘대로 209마리를 잡았다.”

“정인이 묻습니다. 소신이라는 관리에게 명해 사람들을 이끌고 기장을 심을까요?” “첫 번째 달에.”

“경오일에 정인 병이 묻습니다. 왕께서 새롭게 마을을 만들면 상제께서 순조롭게 하시겠습니까?” “여덟 번째 달에.”

과연 사냥에서 농사, 새로운 터전을 만드는 일까지 모두 점괘에 의지했다. ‘정인’은 점을 주재하고 갈라진 모양으로 신령의 답을 해석하는 사람이다. 

섬뜩한 복사도 있다.

“강(羌)을 잡을 수 있을까요?”

“아버지 정(丁)에게 제사를 올리는데 강 서른의 목을 칠까요?”

강은 강족을 말한다. 노예로 삼을 강족을 잡을 수 있을지 묻고, 제사에 쓸 숫자까지 묻는다. 

■영혼의 세상을 위한 순장

   
은허에서 가마와 함께 발굴된 인간의 유골 모습.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태초부터 있어온 일이다. 개인 간의 다툼이 씨족 간의 다툼으로, 씨족 간의 다툼은 다시 부족 간의 다툼으로. 그런 다툼이 전쟁으로까지 이어진 것은 인류 역사의 한 단면이고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그렇지만 다툼과 전쟁에서의 죽임은 자신의 생명과 이웃, 무엇인가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수동적 행위이다. 설령 먼저 도발하는 경우에도 죽임의 대상은 목적 달성을 위한 최소한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사람을 ‘제물’로 쓰다니,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사후세계의 믿음에 따른 순장(殉葬)이다. 순장은 하 나라 후기 유적인 허난성 등봉(登封)시 왕성강(王城岡)에서도 발견된바 있다. 왕을 비롯한 지배층의 권력이 강화되었음을 알게 하는 일이지만 하대의 것으로는 지금까지 유일하다. 

순장은 비단 고대 중국에서만 벌어진 일은 아니다. 이라크 우르 유적의 한 왕비 묘에 순장된 10여명의 여인 중에는 하프의 일종인 수금(竪琴) 줄에 손이 닿아 있는 상태로 발견된 경우도 있다. 아마 죽은 왕비의 영혼 세상에서도 수금을 타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밖에 이집트, 중앙아메리카 마야문명, 한반도 등지에서도 순장 유적이 발견되고 있으니, 영혼과 귀신을 믿는 고대 사람들의 생각의 한계와 그로 인한 풍습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상의 정주상성은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그곳 궁전 터에서는 100여개의 인골이 발견되었다. 순장이 아니라 궁전을 지을 때 땅의 신에게 제사지내며 제물로 바친 인간의 유골이다. 궁전 동북쪽의 지대가 약간 높은 제사터로 보이는 곳에서는 역시 인골 구덩이와 함께 92마리의 개가 제물로 묻힌 구덩이도 있었다. 상의 중흥기 도읍인 은허(殷墟)는 보다 선명하게 인간 제물의 양상을 보여준다. 

■은허, 그 무심한 인간 제물의 현장

   
제물로 바쳐진 인간의 유골.
은허는 안양시 원하(洹河)를 중심으로 남쪽 기슭에는 궁전과 종묘가, 북쪽은 왕릉 지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궁전 지역은 그 면적이 무려 30만 제곱킬로미터에 이르러 상대 초기의 다른 궁전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는 사회의 발전과 함께 강화된 권력의 영향일 것이다. 궁전의 건축은 지면에 흙을 다져 기초를 쌓은 후 기둥을 세워 양면으로 경사지도록 지붕을 만들고 짚을 덮는 방식이었다. 아직 기와를 생산하지는 않았지만 그 규모는 왕의 위용을 과시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이 궁전과 종묘 곳곳에는 수많은 제사갱이 널려있고, 대부분의 갱에는 인간의 유골이 묻혀있다. 모두 제사에 제물로 바쳐진 인간, 아니 노예의 유골로써 적게는 두세 명에서 많게는 수십 명에 이르기도 한다. 심지어 한 갑골복사에는 한 번의 제사에 2,656명의 노예를 바쳤다는 기록이 남아있기도 하다. 

왕릉 지역에서 발굴된 무덤에서는 거의 대부분 순장이 확인되는데, 왕의 묘로 추정되는 곳에서는 200여명의 순장 유골이 발굴되기도 했다. 순장의 방법 역시 잔인했다. 멀쩡한 목숨이 생매장 당하지 않으려 발버둥 치기도 했을 테니 목을 잘라 죽인 후 매장한 것이 있는가하면 새끼줄로 손발을 묶어 산채로 순장한 경우도 있다. 참으로 잔인한 도살이었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의 행태였다. 

앞서 말한 대로 상족은 수렵목축민적 성향을 가진데다 특별히 귀신을 숭배했다. 귀신을 숭배한다는 것은 영혼에 대한 믿음이 바탕이다. 몸은 땅에 묻혀도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살아있는 자들을 지켜보며 복을 주기도 하고 화를 주기도 한다는 믿음. 그렇다면 그런 귀신에게 정성을 기울이지 않을 방도가 없지 않은가! 그리하여 하늘과 귀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데, 그곳에서도 여러 가지의 것들이 필요하고, 노예도 그 중 하나라 생각했다면 제물을 인간으로 느끼는 죄의식은 덜 수 있었을 것이다. 

■4000년 전 동·서양의 교육과 학교

   
갑골복사의 내용을 현대 한자로 재현한 비석.
다른 특별한 내용의 복사도 있다.

‘정유(丁酉)일에 점을 치니 귀족 자제들의 교육에 힘쓰라 했다. 이에 왕이 미이(米伊:관직명)에게 열심히 가르치라 명했다’

이 갑골복사의 기록으로 최소한 은대에는 학교가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상서> ‘다사多士’에는 ‘…은의 선인(先人)들은 유책유전(有冊有典)하니…’라는 구절이 있어 책과 전적(典籍)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학교는 서(序), 상(庠), 학(學), 고종(瞽宗)이 있었다. 서는 무술과 예절을 익히는 곳이었다. 학은 우학(右學)과 좌학(左學)으로 나뉘었고, 특히 우학은 제사의 예절을 가르쳤다. 고종은 악사(樂士)의 종묘로, 귀족 자제에게 제사에 수반되는 지식을 전수했다. 

아마 상족은 탕 이후 수백 년 통치 기간 동안 여러 부침을 겪으면서, 특히 쇠약해진 국세를 회복하는 명석한 왕은 통치술의 체계화 필요성을 절감했을 것이다. 당연히 명석한 왕들은 그 체계화를 위해 교육의 필요성을 느꼈고 가르치는 학교를 세운 것이다. 책과 전적은 그 과정에서 편찬되었을 것이고 문자는 더욱 늘어나고 다듬어져갔을 것이다. 그래도 왜 하필이면 반경 이후에, 은허에서 수많은 문자를 남기게 된 것일까? 

사서에는 상의 왕들 중 반경에 관한 기록이 유독 많은 편이다. 그것은 그만큼 반경이 탁월했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또한 그가 수많은 반대를 물리치고 기어이 은으로의 천도를 강행하며 꾀하고자 한 기강의 쇄신이나 면모의 일신도 바로 그런 통치의 체계화가 아니었을까. 즉 점복에 기대서만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까지 문자로 기록하여 체계화하려는 의지. 과한 추론일지 모르나 역사는 때로 탁월한 한 사람-특히 군주-에 의해 그 물줄기가 바뀌기도 하니 말이다.

아무튼 인류는 그 속도에서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진보의 과정은 매우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동아시아 대륙에서 은상(殷商)이 역사의 주축을 이룰 때, 서방에서는 이집트·수메르 등을 중심으로 부족을 넘어선 도시 국가들이 저마다의 세력을 키우며 문명의 진보를 이뤄가고 있었다. 이집트에서는 파피루스를 이용한 기록용지를 만들었고, 수메르에서는 에두바라는 학교를 세워 아이들을 교육했다. 다만 다른 것은 서방의 기록과 교육은 역수학(曆數學), 의학, 신학, 자연, 기술 등이 주축이었지만 중국은 예절과 예제가 주였다는 것이다.


# 청해성 유목민 강족, 중원세력 박해·탄압에 끈질기게 저항

- 한나라 등 강국에 굽신거렸지만
- 배고플땐 주변부족 침탈도 마다
- 현재 30만 중국 소수민족 전락

‘강(羌)’은 양치는 사람을 형상화한 글자로 한자의 원형인 갑골문에서부터 등장한다. 초기 갑골문은 글자 수가 그리 많지 않았을 터인데, 더구나 종족 이름으로 조자(造字)되었다는 것은 그들이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고, 역사 전(前) 무대에서부터 간단치 않은 역할을 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강족 마을 입구에는 신양(神羊)상이 세워져 있다. 본래 유목민인 강족은 신양을 토템으로 삼았다.
강족은 본디 자신들을 ‘르마(日瑪)’ ‘루마(如瑪)’ ‘얼마(爾瑪)’ 등으로 자칭하는, 말과 가까운 유목 민족이었다. 그들의 주 터전은 간쑤(감숙)성 서쪽과 칭하이(청해)성 동쪽의 고원지대로 농경에는 불리한 환경이었기에 목축을 업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지만, 태생부터 용맹한 전투적 기질이 있었던 듯하다. 그들을 ‘강’이라 부른 것은 다른 민족들로, ‘서융(西戎)의 목양인(牧羊人)’이라는 뜻이니, 말을 타고 양몰이를 하는 전형적인 유목족에 대한 두려움도 내포되어 있는 것이었다.

‘시경’에 ‘성탕(成湯) 시절에 저강(氐羌)이 감히 조공(享)을 보내지 않거나 왕을 알현하러 오지 않는 일이 없었다’라는 구절이 있다. ‘조공’은 후대에 나온 상투적인 표현이고 우호적인 교류가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상이 잦은 천도 등으로 안정되지 않자 교류가 끊어졌던 모양이고, 강족은 노예로, 제물로 바쳐지기까지 하는 가혹한 박해를 받았다.

강족의 수난은 상나라 대에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죽서기년(竹書紀年)’ ‘후한서(後漢書)’ 등의 사서도 하·상·주를 이어 진(秦)·한(漢)대까지 중원세력에 복종하면서도 수시로 저항해 박해받은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유목이 생업이니 초목이 시들면 곡물 확보를 위해 중원을 침탈하는 어쩔 수 없는 한계도 있었지만, 저항의 끈질김과 사나움이 타고난 전투력 그대로였던 모양이다.

   
서융으로 불린 세력의 다수는 중원과의 마찰, 자체의 이합집산을 겪으며 점점 서쪽으로 밀려가 오늘날 중앙아시아, 심지어 서유럽의 종족 형성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며 원래의 이름을 잃었다. 그러나 강족은 티베트 장(藏)족을 비롯한 소수민족과 교류하며 4000년 이상의 모진 세월을 견뎌내 오늘도 중국 땅에서 그 이름을 지켜내고 있다. 다만 태생의 야성을 잃어버린 채 이제는 불과 30만여 명에 불과한 명색만의 소수민족으로, 더구나 2008년 쓰촨(사천)성을 덮친 대지진의 진앙지가 하필 강족자치구가 있는 원촨(汶川)이어서 막심한 피해를 입은 것은 더욱 비운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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