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부다페스트 도심을 가로지르는 다뉴브강의 유람선 침몰 지점 바로 위에 놓인 머르기트 다리(사진). 부다페스트의 화려한 다뉴브 강변 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고, 도심의 휴식처인 머르기트 섬을 연결해 유동 인구가 많은 명소지만, 이번 참사 이전에도 2차대전 당시 수백 명이 희생된 슬픈 역사를 품고 있다. 프랑스인 엔지니어 에르네스트 구앵의 설계로 1876년 지어졌으나, 2차대전 때인 1944∼45년 두 차례 완파된 뒤 완전히 새로 지은 것이다.
1944년 11월 4일 머르기트 다리에서는 나치 독일군의 모의폭파 훈련이 잘못돼 다리의 동쪽 교각이 완파되면서 수백 명이 희생됐다. 독일의 패색이 짙어가던 무렵이었지만 파시스트 정권 치하의 헝가리는 나치의 편에서 최후의 항전을 결의했던 시점. 이에 따라 헝가리 공병대는 11월 초 머르기트 다리에 대량의 폭탄을 설치했다. 시시각각 진격하는 소련군이 다리를 통해 넘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방책이었다. 11월 3일 이 교량의 책임은 나치 독일군의 공병대로 이관됐고, 독일은 다음 날 교량을 통제하지도 않은 채 폭파 모의훈련을 했다. 그 결과 다리 위에 있던 100∼600명의 폴란드인과 40여 명의 독일군이 그 자리에서 폭사했다.
머르기트 다리 폭발 참사는 또 있었다. 이 사건이 있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부다페스트는 퇴각하는 독일군과 진격하는 소련군이 벌인 102일간의 공방전으로 초토화되다시피 했고, 독일군은 후퇴하면서 다뉴브강 위의 교량 전부를 폭파해버렸다. 머르기트 다리 아래의 다뉴브강 수중에는 여전히 2차대전 말기 두 차례의 폭파로 무너져 내린 잔해들이 가득하다.
실제로 한국인 실종자들을 찾기 위해 우리 정부가 파견한 해군·해경 등의 특수 잠수요원들도 당시의 잔해들을 직접 확인했다. 2011년에는 이 머르기트 다리 아래 수중에서 1944년 11월 4일 폭발사고 희생자들의 것으로 보이는 유골이 대거 발견되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머르기트 다리와 바로 그 하류의 명소인 세체니 다리 사이 강둑에는 2차대전 당시 파시스트 민병대에 의해 죽임을 당한 시민들을 기리는 조형물 ‘다뉴브 강가의 신발들’이 당시의 또 다른 비극의 역사를 증언한다. 영화감독 캔 토가이, 조각가 귈라 파우가 의기투합해 2005년 설치한 이 작품은 다뉴브 강가에서 신발을 벗어 놓고 일렬로 선 채로 민병대의 총격을 받고 숨져 떠내려간 3500명의 무고한 시민(이 중 800명이 유대인)을 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