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독관 생겨나고 노예도 등장
인류의 발전에는 반드시 당대의 전략물자라 할 무엇이 있었다. 석기가 그 시작이라면 비웃겠지만 그때는 그랬다. 또한 아무리 하찮게 보여도 원자재 확보에는 희생이 따랐고, 반발을 억누를 권력이 있었다. 아직 전쟁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겠지만 그 승자들이 문명의 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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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룡성 터에서 출토된 동월(銅鉞) 및 면구(面具·1 2 3)와 신감대묘에서 출토된 유물인 신인수면동두상, 와호입이편족정, 대월(4 5 6) 그리고 은허서 출토된 사모무정(7). |
석기시대의 뗀석기도 발에 차이는 돌이라고 아무 것으로나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다. 쪼개면 날카로운 빗면이 형성되는 돌은 따로 있고 그런 석재는 특정 지역에 한정되었다. 사람이 거주하기에는 마땅치 않은 지역이지만 중요한 도구의 원자재로는 꼭 필요하니 1차 가공으로 크기와 무게를 줄여 수송해야 했다. 무리의 구성원 중에서 손재주가 있거나 힘이 센 사람이 맡아야 했다. 아주 고된 역할인 것이다.
산싱투이의 그 엄청난 양의 황금은 어디에서 생산된 것일까? 아무런 기록도, 어렴풋한 구전(口傳)조차 없다가 수천 년이 지난 어느 날 불쑥 모습을 드러내 세상을 놀라게 한 산싱투이문명은 얼마 뒤 쓰촨성 청두(成都) 시내 서쪽에서 또 다른 황금문명으로 이어진 것이 밝혀졌다. 이른바 금사(金沙)문화다. 그런데 청두평원에는 금 생산지가 없다. 가장 가까운 곳이 200㎞ 이상 떨어진 금사(金沙)강 유역으로, 고대로부터 사금(沙金) 산지로 유명하다. 생산과 운송을 맡을 인력이 따로 있었을 것은 분명하고, 감독하는 무력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상나라 시기 구리와 주석 광산 분포도를 보면 장강 유역이 훨씬 많고 매장량도 풍부했다. 그런데 상나라 초기의 정주상성이나 반룡성 등에서 발굴된 청동기에 포함된 납 성분은 다른 지역 유물에 비해 동위원소 비율이 아주 높게 나타난다. 신감대묘와 산싱투이에서 발굴된 청동기 납 성분의 동위원소 비율도 그와 같다. 그들 납의 출처는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윈난성 동부나 구이저우(귀주)성 서부일 가능성이 높다. 두 지역에 동위원소 비율이 높은 납 광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술 역시 풍부한 자원에서 발전의 속도가 빨랐을 것이다.
황허유역의 새로운 주인이 된 동이세력 상족은 이전 하나라 세력과는 완전히 다른 행보였다. 창강유역 세력과 교류하며 원자재를 확보하고, 창강 하류유역 세력은 상류 쓰촨성의 고대 주역들과 연결되고, 그 고리에는 염제 혹은 치우의 후손들이 있었다. 인간을 노예로 삼아 잔혹하게 다루기도 한 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