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물로 사람 바치기 주저 않아
- 묘 곳곳엔 인골 묻은 제사갱도
상의 형벌은 가혹했다. 법은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이지만 특히 노예를 대상으로 엄격히 집행됐다. 단순히 도망치거나 반항하는 노예에 대한 징벌만이 아니라 신하와 백성에 대한 경고의 뜻도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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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가장 대묘 묘실 입구에서 발견된 순장유골. 문을 지키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은 후가장 대묘 묘실 옆의 제사갱들인데, 각각 순장 유골과 예기가 출토됐다. |
목을 베는 대벽지형(大辟之刑), 궁형(宮刑), 코를 베는 의형(劓刑), 문신을 새기는 묵형(墨刑), 다리를 자르는 비형(剕刑)의 5형은 순(舜) 임금 때부터 시행되었다지만 그 방법이 참으로 잔혹했다. 궁형은 남자만이 아니라 여자도 질을 꿰매거나 불로 지져 유폐(幽閉)했고, 비형은 다리 복사뼈 위를 톱으로 잘랐다. 그밖에 생매장이나 사람을 얇게 저며 육젓을 담는 잔혹한 형벌도 있었다. 은허에서는 양손을 앞으로 해 수갑을 찬 여자와 뒤로 찬 남자 토용(土俑)이 각각 발견되어 당시의 형벌 집행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기왕에 전해져온 형벌에, 하늘을 비롯한 자연의 신과 조상의 영혼에 제사를 지내며 사람을 제물로 바치기를 주저하지 않은 그들이었다. 갑골을 이용한 신점을 믿고 따르며 영혼의 세계에 빠지자, 신의 이름으로 절대 권력을 장악한 왕은 이제 자신의 사후 세계를 설계하기 시작한다. 은허의 원하(洹河) 북쪽 기슭에 있는 후가장(候家莊) 대묘가 대표적이다. 이름조차 그들의 장원이라는 뜻의 그곳은 반경의 천도 이후부터 조성되기 시작해 상 왕조가 끝날 때까지 지속됐다.
‘중(中)’자 형으로 조성된 각각의 묘들은 모두 왕의 묘로 추정되는데, 그중 1기는 후대 무정 왕의 묘로 확인되었다. 묘에는 갖가지 진귀한 기물이 부장품으로 묻혀있는 것은 물론, 순장된 신하와 비빈·노예의 인골이 무더기로 발견되어 현실에서의 화려한 영화를 명계(冥界)로까지 가져가려던 집착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또 그들의 묘 곁에는 수많은 제사갱이 있는데, 각 갱에는 10여 명 안팎의 노예 인골이 묻혀있다. 그것은 제사를 지낼 때마다 제물로 매장한 것으로, 신권을 장악한 왕권의 위세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역사의 증거이다. 지난 연재에서 보았던 사모무정(思母戊鼎)의 경우도 ‘사’는 제사를 지낸다는 뜻이고, ‘모무’는 묘호(廟號)로서 모무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주조했다는 것을 명문으로 새겨 넣은 것이었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