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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의 중국인 이야기 <18> 중국 최초 여장군 ‘부호’

1만여 군사 이끈 ‘여중호걸’… 귀환 땐 왕이 직접 마중 나가기도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6-23 19:06:43
  •  |   본지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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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묘 터 묻힌 무정왕 유일의 처

- 제후 땅 ‘봉지’ 다스린 지역 수장
- 제사 주관 등 정치활동 깊이 관여
- 전장도 휘저으며 작위·시호 받아

# 무덤에서 발굴된 화려한 유물

- 800여 점 옥기·보석기 왕묘 능가
- 청동기·토기는 당시 기술 보여줘
- 8.5㎏ 도끼, 대장군 위용 드러내

# 사마천 ‘사기’ 모계사회 부정

- 제사장·정인서 女 존재 뚜렷하나
- 관련기록 없고 등장 여성들 홀대
- 권력 독점 위해 의도적으로 묵살

기원전 100년께 거의 2000년을 소급하여 정연(精硏)하고, 때로는 절절하게 쓴 기전체(紀傳體) 역사서가 사마천의 ‘사기’다. 전해져온 이런저런 글과 전언(傳言)이 있기는 했지만, 다른 어느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참으로 놀라운 기록물이다. 그래서 중국 역사는 사마천이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후대에 발견되는 유물과 기록들에 의해 그가 한 의도적인 묵살이나 왜곡이 드러나는 것은 진정 아쉬운 부분이다. 그중 하나가 여성에 관한 기록이다.

인류가 무리를 짓고 성장한 것은 모계사회로 시작되었고 필연이었다. ‘사기’의 기록이 시작되는 기원전 2000년 무렵에도 모계사회의 흔적과 영향은 있었다. 특히 제사를 주관하는 제사장이나 갑골복사와 같이 점을 치는 정인(貞人)에서 여성의 존재는 뚜렷하다. 그러나 ‘사기’에는 그에 대한 기록은 단 한 줄도 없고, 어쩌다 등장하는 여성은 모두 하찮고 부정적이다. 과연 그랬을까?

■종묘 터에서 발견된 부호의 묘, 쏟아져 나온 기록과 유물

   
중국 상나라 시대 정복군주 무정의 60여 부인 중 한 명이자 중국 최초의 여장군으로 기록된 부호의 동상이 은허에 세워져 있다. 무게가 결코 가벼워 보이지 않는 청동 도끼를 손에 쥔 모습이 그의 완력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한다.
1976년, 안양시 은허 종묘 터에서 무덤 1기가 발굴됐다. 출토된 청동기 명문에 의해 무정의 처 60여 명 가운데 한 사람인 부호(婦好)의 묘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종묘는 왕성 안에 자리한 제사를 지내는 장소이고, 하물며 정복군주 무정도 원하(洹河) 북쪽 후가장(候家莊)에 묻혔다. 그런데 60여 명 중에 한 사람인 그녀가 버젓이 종묘 터에 묻힌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혹여 왕인 무정이 특별히 총애했다고 하더라도 귀족과 신하의 동의 없이는, 아주 특별한 지위와 위상이 받쳐주지 않았다면 결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함께 출토된 200여 점의 갑골편에 따르면 부호는 자신의 봉지를 다스리며 3000명의 군사를 보유한 지역 수장이기도 했다. 왕실에서는 조정 회의에 참석해 의견을 개진하고, 나라에 중대한 일이 있으면 점을 쳐 복사를 해석했다. 제사를 주관하고, 제문을 읽고, 제사에 참여하는 복관을 임명하기도 했으니 고도의 정치적 활동에 깊이 참여한 것이었다. 또한 왕과 신하들이 그녀의 건강과 장수를 신에게 축원하기를 여러 차례였다니, 과연 어떤 이였을까?

어느 해, 북방 정벌전이 수월치 않자 그녀는 출전을 자청한다. 무정은 내키지 않았으나 점을 쳐 길하다는 답이 나오자 총사(總帥)라는 군사(軍師)의 직과 함께 병사를 내줬고, 그녀는 대승을 거두었다. 이후 무정의 명을 받아 출전하기를 여러 차례, 북쪽 토방과 동쪽의 이방(夷方)을 정벌했고, 강족 정벌에 나섰을 때는 1만3000명의 군사를 지휘하기도 했다. 어느 전쟁에서 승리해 귀환할 때에는 무정이 친히 80㎞ 밖까지 마중을 나가기도 했으니 총애만이 아니라 전공도 대단했던 모양이다. 무정이 파방(巴方) 정벌에 나섰을 때는 함께 종군하기도 했다. 파방이라면 쓰촨성 동부, 지금의 충칭(重慶)시 일원을 말하는 것으로, 선뜻 믿기지 않는 장거리 원정이었다.

다행히 그녀의 묘는 도굴 흔적도 없었다. 750점이 넘는 옥기, 50여 점의 보석기는 그 화려함이 후대의 왕묘를 능가할 정도이다. 그밖에 수많은 청동기와 60여 점의 토기도 출토되어 당시의 문화와 기술 수준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특히 두 마리 호랑이가 사람을 씹어 먹는 형상인 쌍호복서인두문(雙虎扑噬人頭紋)이 새겨진 ‘상부호대동월(商婦好大銅鉞)’은 그 무게가 9㎏에 이르고, 용무늬가 새겨진 무게 8.5㎏의 도끼도 있어 대장군으로서 그녀의 위용이 뚜렷하다.

   
중국 안양시 은허 종묘 터에서 발견된 부호의 무덤 발굴 당시의 매장 상황. 부호 묘는 도굴을 당하지 않아 750점이 넘는 옥기와 50여 점의 보석기, 수많은 청동기, 60여 점의 토기가 함께 출토됐다.
■전장을 누비고, 작위와 시호를 받은 또 다른 여성들

부호라는 명칭에서 ‘부’는 왕의 처에게 주는 작위였고 ‘호’는 그녀의 이름이다. 그렇다고 모든 처첩에게 다 작위가 내려지는 것은 아니었다. 또한 ‘부’는 자신의 봉지가 있었고 그곳을 다스리기 위해 왕의 곁을 떠나있기도 했다. 여전히 모계사회의 유풍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물론 춘추시대에 들어서면 여성의 지위는 눈에 띄게 내려앉지만 그것은 아직 1000년쯤 뒤의 일이다.

여기서 우리가 오해에 빠질 수 있는 것은 이미 무정의 경우만 해도 60여 명의 처첩이 있었으니 일부다처제 하의 여성의 지위만을 생각하는 그것이다. 하지만 왕의 일부다처제는 정략혼의 결과이기 십상이다. 즉 왕과 제후, 또는 유력 부족과의 동맹을 위한 담보로서의 결혼 말이다. 부호도 그런 동맹의 담보로서 혼인관계를 맺은 어느 부족의 수장일 수 있고, 그녀는 다스리는 부족의 보존을 위한 기꺼운 선택이었는지 모른다. 또한 일부 역사가들은 부호를 중국 역사상 최초의, 유일한 여장군으로 칭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부호의 경우처럼 묘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갑골편에는 ‘부정(婦妌)’이라는 ‘부’의 작위를 하사받은 다른 왕후의 이름도 있다. 그녀 역시 전쟁과 관련된 기록이 보이고. 지금의 허베이(河北)성 형태(邢台)시 지역에 봉지가 있었다. 부호는 ‘비신(妣辛)’으로 기록되기도 한다. 그녀가 죽은 뒤 내려진 시호가 ‘신’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부정은 ‘비무(妣戊)’로 기록되기도 한다. 갑골편에는 ‘비계(妣癸)’라는 이름도 정벌전 기록과 함께 보인다. 시호만 있고 이름은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이로써 무정의 처 60여 명 중 ‘부’의 작위를 받은 이는 최소한 3명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멸실되어 버린 것인지 아직 손길이 미치지 않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부’의 작위를 받은 다른 여성이 있을 수 있고, 전쟁과 같은 남성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부분에서 활약한 여성도 더 있을 가능성은 충분하지 않은가, 어쩌면 정치에서도.

   
‘대장군’ 부호가 휘둘렀다고 하는 무게 9㎏짜리 청동 도끼인 상부호대동월(왼쪽)과 거기에 새겨진 쌍호복서인두문. 쌍호복서인두문은 두 마리의 호랑이가 사람의 머리를 씹어 먹는 문양이다.
■권력 독점을 위해 여성을 묵살한 비겁한 역사기록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전환된 것은 ‘소유’에 대한 인식으로부터였다. 핏줄에 대한 자애와 생존을 위한 무리 지은 삶의 초기에는 공유가 기본이었다. 점점 무리가 커지자 질서를 위한 다스림이 작동하며 소유의 개념이 꿈틀거리기는 했지만 모계가 중심인 동안은 차이 정도였지 여전히 공유는 유지되었다. 무리가 더욱 커져 부족체제가 되고 문명의 진화에 따라 생산이 늘어나자 완력은 다른 무리의 것을 탐하기 시작했다. 빼앗고 지키려는 다툼 속에 완력이 중심이 되자 무리 안에서도 소유가 작동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권력을 낳았다. 먹거리와 같은 생존의 요소뿐 아니라 사랑과 같은 감정의 독점적 소유에까지.

이미 하나라 시기에 혼인제가 정착되고 일부다처의 흔적이 엿보이는 것으로 보아 벌써 남성의 완력이 권력의 주인이 되었던 듯싶다. 상 또한 기본적으로는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여겨왔다. 그런데 여성이 권력에서 완전히 배제되지는 않은 증거들이 갑골편 복사로 뒤늦게 발견된 것이다. 상뿐만 아니라 당시 창강 유역에서 가장 강대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형초(荊楚)나 대팽(大彭)같은 소수세력은 물론, 황허 중하류 유역의 동이(東夷) 계열 시위(豕韋) 같은 세력도 여성이 전장에서 상당한 활약한 것으로 갑골편은 전하고 있다.

전쟁에의 참여 여부, 완력이나 용맹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권력이 여성에서 남성으로 넘어갔다 할지라도 하루아침에 몰락하지는 않았을 터인데 중국의 사서는 일관되게 여성은 애초 권력과 무관한 존재였던 것처럼 시침을 떼고 있다는 것이다. 상은 그들의 기록물인 갑골복사로 증언했으니 혐의가 없다. 하는 기록의 방법이 없었으니 혐의를 둘 증거가 없다고 하더라도 상을 뒤이은 주(周)는 감추기와 왜곡의 주범이었음이 명백하다. 도대체 왜?

신과 영혼을 믿는 것과 농경으로 자연의 운행을 파악해 사람을 천자, 즉 하늘의 아들로 삼은 차이가 아닐까. 천지와 귀신에 대한 믿음의 뿌리가 깊은, 핏줄에 대한 연민이 짙은 여성은 이제 천자를 하늘로, 상하귀천의 질서로 권력을 휘두를 세상에 위험한 불만 세력이 될 수 있었다. 가족을 단위로 농경이 중심이 되는 사회에서도 역할을 나눌 필요가 있었고. 앞으로 더 깊이 따져보겠지만 정말 그렇다면 너무 졸렬하고 비겁한 짓이 아니었던가.


◆철제 무기 등장하며 집단 경작·양잠 기술도 진일보

- 청동 몸체에 날 부분은 ‘운철’, 상 왕조 무덤서 ‘청동월’ 발굴
- 골조각품 등 다양한 문화 성장

잠시 눈길을 서방으로 돌려보자. 동아시아 대륙에서 상이 청동기 무기를 바탕으로 세력을 키우고 있을 때, 지중해 연안의 유라시아 지역에서는 히타이트의 무와탈리스 왕과 이집트의 람세스 2세가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히타이트 군은 1만7000명의 병력과 전차 2000대, 이집트 군은 4500대의 전차와 2만여 명의 병력. 결과는 뜻밖에도 병력과 특히 전차 수에서 절반도 안 되는 히타이트 군이 이집트 군을 격파하고 시리아를 거머쥐는 이변을 일으켰다. 다름 아닌 청동기보다 월등히 높은 강도를 가진 철제 무기로 무장한 까닭이었다. 중국에서의 철기 발전은 어땠을까?
   
부호 묘에서 출토된 다양한 옥기(玉器)들. 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옥인상(玉人像), 옥봉(玉鳳), 옥비녀, 옥검(玉劍), 옥어(玉魚).
상 왕조의 한 무덤에서 발견된 월은 청동의 몸체에 날 부분은 운철(隕鐵)인 형태였다. 운철은 천연 철로 제련과 야금을 거치지 않은 것이니 철이 청동보다 강한 것은 알았으나 아직 제련의 수준에는 이르지 못한 것이었다. 물론 곧 철기시대가 열리겠지만 서방보다는 늦은 것이다. 그렇다고 또 서방에서의 전래 운운할 바는 아니다. 인류의 문명은 그 발전 속도에서 약간의 차이를 둘뿐, 아주 다른 자연환경이 아니라면 유사한 과정을 거치며 발전하는 것이기에 말이다.

상은 농업에서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었다. 비록 아직 청동제 농기구는 보편화되지 않았지만 다양한 석기와 목기 등의 농기구가 개발되고, 넓은 농토에 노예까지 동원하는 집단 경작으로 생산량은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남은 곡식은 술을 담거나 각지에 창고를 만들어 저장하고 군대가 지키게 할 정도였다. 특히 목축은 그것을 관장하는 ‘목’이라는 관직이 있었고 각종 제사갱에서 발견되는 가축의 수만 해도 엄청난 규모였다. 소, 돼지, 양, 말, 개, 닭 등은 물론 당시까지 황하 유역에 살았던 코끼리도 사육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또한 기왕의 양잠도 더욱 발전하여 복식에서도 변화가 일어나는데 ‘상의하상(上衣下裳)’, 즉 위에는 저고리를 아래에는 바지나 치마를 입는 풍속이 정착되었다. 눈에 띄는 것은 청동이나 상아 등의 짐승 뼈로 만든 비녀와 옥인상(玉人像)에서 볼 수 있는 둥근 갓이다. 귀족 이상의 사람들이 사용한 것이겠지만 생활의 질이 높아지면서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격식을 갖추는 당연한 현상을 읽을 수 있다. 특히 정교한 골조각품(骨彫刻品)은 예술의 경지로 상 문화의 또 다른 꽃이다. 그밖에 목기, 칠기 등 여러 분야에서의 문화적 발전도 엿볼 수 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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