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백, 어진 정치로 후대 준비

- 선정 베풀자 제후들 왕으로 칭송
- 적극적 외교로 주변국 지지 얻어
- 상나라 정벌 앞두고 죽음 맞아

# 희발 ‘폭군 처단’ 대업 받들어

- 아버지 스승 강태공 군사에 책봉
- 동생들 정무 맡기며 조력 삼지만
- 병력 턱없이 부족해 일보 후퇴

# 때를 기다린 끝에 출정 단행

- 발, 목야에 모인 4만 병력 이끌어
- 동이족 싸움에 군대 보낸 상 기습
- 절대권력 주왕 폭정도 최후 맞이

갑골문에 있는 ‘주(周)’ 자(字)의 원형은 ‘밭 전(田)’ 자와 흡사한, 땅을 네모로 구획한 사각 안에 각각 좁쌀 이삭 형태의 점을 하나씩 더한 것이다. 시조인 후직이 농경에 밝기도 했으니 농사와 관련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후직과 부줄은 농관의 직에 있기도 했다. 그렇지만 주가 하와 같은 족이나 직속 후예라 단정할 일은 아닌 듯하다. 직이 폐해졌다고 곧바로 도망친 것도 그렇고, 하필 오랑캐의 땅으로 간 것은 당시 주도세력이던 하의 영향에서 멀리 벗어나려는 뜻이었을 테니 말이다.

	태공망에게 군사의 일을 관장하는 사(師)의 직을 맡긴 주 무왕 희발이 병력을 이끌고 지금의 하남성 낙양 인근 포구인 맹진에 이르렀을 때 그를 따르겠다며 주변에서 군사를 이끌고 모인 제후가 800명에 달했다. 맹진회맹이라 하는데, 그림은 당시의 일을 그린 맹진회맹도이다.

그런데 농경에 밝았다는 것은 신의 뜻에 의한 운명이나 자연의 우연보다는 인간 지성에 대한 믿음이 컸다는 의미일 수 있다. 과연 주족은 변방으로 도망친 뒤 농경을 일구고 어진 정치로 인심을 얻어 주변국들을 안심시키고 끌어들였다. 당시 방국연합적인 체제에서 힘을 길러 세를 모으면 주도국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깨우쳤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서백 창이라는 탁월한 후손이 태어났다.

■서백, 선정으로 인심 얻고 후대 준비

	주 무왕의 초상화.

창이 선정을 베풀자 많은 곳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공정한 판결을 청했다. 우(虞)와 예(芮)의 사람들이 송사가 있어 주를 찾았다. 주의 경내에 들어서니 농부들은 서로 밭의 경계를 양보하고, 백성들은 연장자를 우선으로 매사에 양보하는 풍속이 아름다웠다. 우와 예의 사람들은 창을 만나기도 전에 부끄러워하며 서로 양보하고 돌아갔다. 소식을 들은 제후들은 창을 천명을 받은 군주라 말하며 이때부터 왕이라 칭했다.

창은 무정의 정복 전쟁으로 무너지거나 쫓겨 간 강족 등의 서북지역 유목 세력을 달래서 지지를 얻는 외교활동을 펼쳤다. 할아버지 고공단보에 의해 교류가 시작된 서남쪽 사천 지역의 파, 촉 등에 대한 외교활동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견융(犬戎) 밀수(密須) 기(耆) 우(邘) 등의 소국에 이어 숭후호를 정벌하고, 지금의 섬서성 서안시 인근 호현(戶縣) 동쪽 지역인 풍읍(豊邑)으로 도읍을 옮겼다. 그가 정벌하여 세력을 넓힌 지역은 섬서성을 중심으로 인근의 감숙·산서·하남성 일원이었다.

이미 고공단보 때 마련된 오관유사(五官有司)의 관직과 관등에 더해 법령을 제정하고 주력(周歷)을 채용하는 정삭(正朔)도 행했다. 오관유사는 ‘예기’에 ‘천자의 오관은 사도(司徒), 사마(司馬), 사공(司空), 사사(司士), 사구(司寇)이다’ 라고 기록한다. 각각 교육, 군사, 토지, 예법, 법을 담당하는 직을 말하는 것으로 주 왕실의 독특한 정치체제의 근간을 마련했던 것인데, 한 해의 시작을 정하는 정삭까지 행했으니 상의 영향에서 벗어나 새로운 천자의 주도국임을 밝힌 것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서백 창은 대를 이은 지 50여 년, 왕의 칭호를 받은 지 10여 년 만에 죽음을 맞는다.

역사에 가정은 의미가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후대에 교훈이 된다면 해볼 만하지 않은가. 만약 창이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치적을 위해 상에 대한 정벌을 서둘렀다면 어찌 되었을까? 승패의 가능성은 반반이지만, 그가 죽은 뒤로도 11년이 더 걸려서야 상을 정벌한 사실을 감안하면 패했을 확률이 크다. 설령 이겼다 하더라도 곧바로 무왕 대처럼 통치의 안정까지 이루었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니 무릇 뜻을 세운 자라면 조급하게 치적을 쌓으려 해서는 아니 될 것이고 바른 뜻을 세워 지극한 정성을 기울여 그에 만족해야 할 일이다.

■주변 부추김에도 때를 기다린 희발

창의 뒤를 이은 희발(姬發)은 태공망을 사(師)로 삼아 군사의 일을 맡겼다. 동생들 중 단(旦)을 보(輔)로 임명하여 정무를 책임지게 했고, 석(奭)과 고(高)를 좌우의 조력자로 삼아 아버지의 대업을 완성하고자 했다.

발이 군사를 이끌고 맹진(孟津 : 하남성 낙양 인근 포구)에 이르렀을 때의 일이다. 따로 회맹의 날짜를 정한 것도 아닌데 군사를 이끌고 모인 제후가 무려 800여 명이었다. 그들이 모두 “상을 정벌할 수 있습니다”라고 주청했다. 그러나 발은 “아직 천명의 때가 아니니 정벌할 수 없소”라며 반대했다. 일부 소국의 제후들이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지만, 불시에 병력을 점검하려는 관병(觀兵)의 목적이 컸을 것이다. 이를 일러 역사는 ‘맹진관병’ 또는 ‘맹진의 서약’이라 한다.

한번 따져보자. 제후의 수는 무려 800명이다. 그런데 당시 장강 이남이나 ‘홍산문화’ 권역에 속하는 북방 세력이 중원의 중대사에 참여했다는 기록은 없다. 서남부 사천성 쪽의 파촉 세력도 험난한 지형을 고려하면 실제적 병력 참여는 그다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섬서와 하남성을 중심으로 산서·하북·산동·강소·호북성 일부 세력이었던 셈이다. 숫자는 800명이라 해도 그야말로 소단위 부족 규모였음을 짐작할 수 있고 아직 상의 적수가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결국 천명을 내세워 군사를 돌린 것은 발의 현실적 선택이었다. 또한 당시 방(方 또는 邦), 국, 제후 등의 명칭이 얼마나 과장된 것인지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아무튼 그로부터 2년 뒤인 기원전 1046년, 상의 왕 제신의 음란은 갈수록 더하고 나라의 혼란도 심해지자 발은 드디어 군사를 일으켜 목야로 나아가 진을 쳤다. 목야는 상의 도읍 교외에 있는 들판이고 모여든 군사는 전차 300승, 죽음을 각오한 용맹한 군사 3000명, 갑옷 입은 군사 4만5000명이었다.

그렇다면 왕이 음란에 빠져있었다는 상의 군사력은 어땠을까? 당시 상의 군사는 동남지역 동이족과 맞서고 있어 급히 돌아올 수 없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에 제신은 노예와 포로를 대거 징발해 임시 군대를 편성했다. 그 규모가 무려 70만 명에 달했다니 결코 무력하지 않은, 당대를 호령하는 군주의 역량이었다.

■거칠 것 없는 극성, 그 턱밑

상의 주력군이 출병한 동남지역에는 동이족 방국 인방(人方)이 있었다. 그들은 금속을 다루는 데 능하고 활을 잘 쏘는 유목적 기질이 강했으니 그리 고분고분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그들 지역은 해안을 끼고 있어 내륙에서 생산되지 않는 여러 재보(財寶)가 있었다. 이를 테면 당시 화폐 역할을 한 자안패(子安貝 : 주로 열대지방 해안에 서식하는 어패류로 중국 연해 지역에서도 흔하지는 않았다) 같은 것들이다.

이미 서북쪽 변방의 거친 세력들도 무력화시켜놓은 데다 이질적인 장강유역 세력도 어지간히 다스렸다. 심지어 선대에는 신권의 뿌리를 흔든 조갑이 있었고, 신을 희롱한 조을이 있었다. 신권의 나라에서 신마저 흔들리고 있었으니 견제 받지 않는 절대 권력이 되었고 필연적으로 자기 과신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더 큰 재보를 확보하는데 집중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은 동이족과는 출신지역이나 혈연적으로 무관하지 않은 사이였다. 그럼에도 도발을 해오니 동질적 의식을 지닌 그들로서는 분노가 더욱 컷을 테고 반발이 극렬했으니 주력군까지 보냈던 것인데 결정적 패착이었다. 동족상잔의 비극이랄까.

기록에 따르면 제신은 지모나 용력, 화술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걸출한 인물이었다. 또한 가장 강력한 국가의 왕이었다. 그렇지만 절대와 극성은 바로 종점이고 몰락이 코앞일 수 있다. 걸출하여 모자람이 없을수록 귀를 열고 몸을 낮추지 않으면 파멸의 문턱을 단번에 넘어서는 법이다. 역사의 증언이 참으로 섬뜩하고 명징하지 않은가!


# 암화에 새겨진 집단 군무…신석기 시대 음악과 함께 춤도 성행

- 남녀 200~300명 벌거벗은 채
- 씨족 번성 기원하는 춤 벌이고
- 상나라 땐 기우제서 무용 공연

	신강위구르자치구의 호도벽현에서 발견된 강가석문자도 암화. 신석기시대 유적인 이 암화에는 200~300명의 남녀가 나체로 군무를 추는 모습이 표현돼 있다.

현대에도 일정한 집단적 행위에서는 구령을 외치고 통일된 동작으로 일체(一體)를 도모한다. 그에 음악이 더해지면 훨씬 더 장엄한 기운 가운데 효과적인 성과를 거두게 된다. 고대의 그들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아직 언어의 표현이 다양하고 섬세하지 않았을 그때에는 집단의 일체를 도모하는 데 원초적 소리라도 함께 합창하고 같은 동작의 군무를 추는 것이 무엇보다 효과적임을 알았을 것이다. 음악과 춤이 함께하고 이어져온 까닭이다. 다만 소리는 세월이 흐르며 상실되거나 변형되어 그 원형을 알 수 없게 되지만 춤은 또렷한 흔적을 남긴다.

	1973년 칭하이성 서녕시 북쪽 대통현에서 발견된 무용문채도분.

1973년 칭하이성 성도 서녕시 북쪽의 대통(大通)현 상손가채(上孫家寨)에서 일련의 사람들이 손을 맞잡고 군무(群舞)를 행하는 문양이 새겨진 14.1㎜ 높이의 무용문채도분(舞踊紋彩陶盆)이 발굴되었다. 신석기시대의 것으로, 그때 벌써 제법 체계적인 군무(群舞)가 성행했다는 증거이다. 그보다 더 앞선 것으로 추측되는 유적도 있다. 신강위구르자치구(新彊維吾爾自治區) 호도벽(呼圖壁)현의 강가석문자도(鋼家石門子淘) 암화는 200~300명에 이르는 대형 군무 조상(彫像)이다. 한 줄로 늘어서 춤추는 나체의 여성들, 한 손으로는 자신의 크고 긴 생식기를 가리키고 다른 손으로는 뒤쪽 여성의 음부를 가리키는 남자 등 남녀 성애의 환락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아마도 씨족의 번성을 희망하는 의미일 것이다.

고대의 가무는 주로 어떤 경우에 행해졌을까? 공동의 노동을 시작하기 전이나 끝낸 후, 특히 수확 뒤의 축제 같은 때에 행해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장엄한 의식이 필요했던 때는 종교나 장례와 관련된 예식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하늘과 조상에 대한 두려움과 숭모의 감정을 밑바탕으로 하는 것이기에 말이다.

‘여씨춘추’ ‘회남자(淮南子)’등에 상나라 궁정에는 ‘대호(大濩, 또는 大護)’ ‘상림(桑林)’이라는 악무(樂舞)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음악을 주로 무용이 보조했다는 뜻이다. 특히 상림은 탕이 하 나라의 걸을 멸한 후 5년간의 가뭄을 겪으며 신에게 비를 바라는 기우제를 지낼 때, 춤을 어떻게 얼마나 춰야 하늘에 그 간절한 뜻을 고할 수 있을지 등을 고민하여 제정한 악무라고 기록하고 있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