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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의 중국인 이야기 <28> 주공 단의 죽음과 치세의 양면

킹메이커 덕에 누린 태평성대도 잠시… 탐욕에 빠져든 귀족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9-01 18:51:16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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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력 2인자의 서글픈 말로

- ‘종법제’로 스스로 발목 묶었지만
- 주변 견제·의심에 자유롭지 못해
- 죽어서도 유언과 다른 곳에 묻혀

# 서주 시대 짧게 끝난 ‘정전제’

- 나라를 주인으로 한 토지 공유제
- 경작지 ‘井’자로 나눠 과세했지만
- 사욕에 눈먼 제후들에 의해 붕괴

# 화평과 안정기 결국 깨지다

- 강왕 붕어하자 아들 소왕 즉위
- 제후국과 세금 놓고 갈등 심화
- 반란 막으려 전쟁… 쇠락 길 걸어

성왕 7년, 어린 왕이 장성하였으니 주공은 정권을 돌려주고 남면(南面)하던 이전과 달리 북쪽을 향하는 신하의 자리에 서서 두려운 듯 삼가 성왕을 공경했다. 그러나 어떤 이가 주공을 참소하여 남쪽 초(楚) 땅으로 망명했다. 성왕이 다시 그를 믿어 귀국하게 하니 상나라 대와 선대(先代)의 명군과 암군의 예를 들어 ‘다사(多士)’와 ‘무일(母逸)’을 지어 올려 음란과 방탕을 경계하게 했다.
   
전통시대 중국에서 가장 이상적인 세제로 일컬어지는 정전제(井田制)의 개념을 설명해주는 그림.
마침내 병이 깊어진 주공은 죽음이 눈앞에 이르자 ‘나를 반드시 성주(成周 : 낙양을 지칭) 땅에 묻어서 내가 감히 성왕을 떠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주오’ 했다. 그러나 성왕은 주공의 시신을 필(畢 : 섬서성 함양 북쪽) 땅에 묻고 문왕과 함께 모셔 자신이 그를 감히 신하로 생각하지 않았음을 밝혔다.

편치 않은 내용이다. 특히 초나라로 ‘망명’이라는 기록도 그렇지만, 성왕은 숙부이기도 한 주공의 유언을 거부하고 굳이 필 땅에 묻었다. 과연 존경의 예우이기만 할까?

주공은 무왕 사후 자신의 형제에게도 의심을 받아 그로 인한 난을 평정하는 데 3년이 걸렸다. 정권을 돌려준 뒤에도 참소와 망명의 불명예를 겪었다. 이에 ‘망명(‘사기’ 원문은 분(奔))’을 ‘도망’으로 해석하며, 그의 ‘역심’을 의심하는 사가도 있다. 진위야 어떻든 ‘장자 세습’을 기본으로 하는 종법제로 스스로의 발목을 묶었음에도 주공은 견제와 의심에서 영원히 자유롭지 못했다. 권력의 세계에서 발군의 2인자는 안팎에서 의심을 살 뿐 아니라, 때로는 자신의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해 서글픈 말로를 걷기도 한다. 참으로 역사는 두려운 거울이다.

■성강치세와 나라 ‘國’

   
주공 단이 성왕을 보좌하는 모습의 그림을 그린 한나라 대의 화상석 문양이다.
어쨌거나 성왕은 주공이 다진 발판 위에서 치세를 구가했다. 성왕이 붕어하고 태자 교(釗)가 즉위하니 강왕(康王)이다.

강왕은 선대 문왕과 무왕의 위업을 제후에게 두루 알려, 언행을 신중히 하고 정치에 힘쓸 것을 요구했다. 또 북방을 안정시키기 위해 귀방을 정벌하고 동쪽 지역을 순시했을 뿐 국력을 낭비하는 무리한 일은 벌이지 않았다. 이에 성왕과 강왕의 시대 40여 년간은 천하가 안정되어 형벌이 쓰이지 않을 정도였다. 후대 사람들은 이 시기를 ‘성강의 치세(成康之治)’라 일컫는다.

과연 치세라 일컬어지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우리는 앞에서 요 임금 시절의 ‘격양가’를 들은 바 있다. ‘해 뜨면 밭에 나가 일하고, 해 지면 집에 돌아와 쉬는’ 삶. ‘임금의 힘이 나와 무슨 상관이랴’ 말하는 삶. 백성에게 치세란 결국 그런 삶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이리라.

‘나라 국國’은 백성의 ‘입(口)’과 ‘땅(一)’을 ‘무기(戈)’로 지키는 ‘울타리’를 합한 조자(造字)라고도 한다. 즉 나라를 다스리는 치자는 백성이 제 뜻대로 일하고 배를 채우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안전을 지켜주는 것이 주된 역할이지 시시콜콜 간섭하여 옥죄거나 과도한 부담을 안기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언행을 신중히 하라는 강왕의 주문도 백성의 삶에 가능한 간섭하지 말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국력을 낭비하는 무리한 일을 행하지 않았다는 것은 백성에게 부과되는 군역(軍役)과 부역(負役)이 적었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스스로 일해 배 불리 먹고 쉴 수 있으니 벌 받을 짓을 행할 리도 없었다. 인류가 꿈꿔온 이상향이 따로 없다.

하지만 나라의 방비를 위해서는 군사와 무기가 필요하고 그에는 막대한 재원이 소요된다. 혹여 적의 침략이 있어 전쟁이라도 벌어진다면 인명과 재산의 손실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국방과 전쟁이 아니더라도 저마다 다른 사람들 간에서 서로의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질서의 규제가 필요하다. 이와 같은 나라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조직과 제도가 필요하고, 그 운영을 위해서는 또 재원이 있어야 한다. 이에 세(稅)의 부과는 필연이니 치자와 피치자의 갈등은 모순이면서도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가장 이상적인 세제(稅制), 정전제

   
반란군 정벌에 나선 주나라 소왕이 아교로 만든 배인 교주를 타고 한수를 건너는 모습을 그린 상상도.
서주도 제후를 통한 군역과 부역의 부과와는 별도로 정전제(井田制)에 의해 백성에게서 세금을 거두었다. 정전제는 일정 규모의 경작지를 ‘井’자 모양으로 나누어 세금을 부과한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즉 ‘井’ 자 모양으로 나뉜 아홉 구역의 경작지 중 가운데를 둘러싼 여덟 구역은 개별 가구에 나누어줘 소출을 갖도록 하고, 가운데 한 구역은 여덟 가구가 공동으로 경작하여 나라에 바치도록 하는 제도이다.

정전제는 가장 이상적인 제도로 여겨지며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해왔지만 서주에 이르러 비로소 완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경작지 면적에 대해서는 사방 1리(里)를 1정으로 했다거나, 900무(畝)를 9등분하여 중앙을 공전(公田)으로 했다는 등의 기록이 있지만, 도량(度量)의 기준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수시로 변한지라 오늘날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이때까지 토지는 개인의 소유가 아니었다는 점에 주목하자. 토지는 천자, 즉 나라를 주인으로 하는 공유제였으며 백성은 오직 경작권만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토지공유제는 서주 중기에 들어서면 일부 귀족세력을 중심으로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탐욕에 눈 뒤집힌 피의 세상이 열리니, <격양가>를 떠올리게 하는 태평성대는 영원히 막을 내리게 된다.

■언제나 짧은 치세, 그 근원의 먹구름

강왕이 붕어하고 아들 하(瑕)가 즉위하니 그가 소왕(昭王)이다. 화평한 치세에 태자의 위에 있었던 그는 전쟁을 좋아한 왕으로 기록된다. 사관은 비판의 붓으로 그리 기록했겠지만 좋아했다기보다는 자신감이 넘쳤던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소왕이 도발해 전쟁을 치른 것도 아니었다.

재위 중기인 기원전 985년, 장강 유역 형초(荊楚) 지역에 있던 보(報)나라가 반란을 일으키자, 작은 나라들도 서로 결연하여 중앙 정권에 맞섰다. 소왕은 친히 군사를 이끌고 한수(漢水)를 건너 반란군 정벌에 성공했다. 이때의 대승은 청동기 ‘종주종(宗周鐘)’에 기록된 명문으로도 확인된다.

8년 뒤, 다시 보 나라를 주축으로 여러 나라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소왕은 다시 군사를 일으켜 정벌에 나섰다. 한수는 섬서성에서 발원해 호북성을 가로질러 무한(武漢)에서 장강과 합류하는 최대 지류 강이다. 당시 한수를 건너기 위해 소왕이 탔던 배는 아교로 접착한 ‘교주(膠舟)’였다. 그 접착이 허술했던 모양이다. 배가 강 가운데에 이르렀을 때 아교가 녹아 배가 해체되면서 소왕은 물에 빠져 죽었고, 왕의 군대는 형초의 공격에 크게 패했다. 소왕의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한 서주 왕실은 위세에 손상을 입었고, 쇠락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왜 모든 화평과 안정은 이토록 불안하고 수명이 짧은 것일까. 내부는 나른한 안정에 게을러지고, 외부 세력은 화평의 틈을 엿보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그렇지만 내부는 나른하지 않았다. 전쟁을 좋아했다는 사서의 기록은 승전에 대한 자신감, 즉 국력이 강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국력은 곧 치자, 왕권의 강함이었고 그에는 풍부한 재원 확보가 뒷받침되었음을 말한다. 드러나지 않았지만 세를 거두는 치자와 납부하는 피치자의 갈등이 고조되어 있었던 것이다. 단순히 직접 다스리는 백성만이 아니라 천자로 칭해지는 절대 권력자의 영향이 미치는 제후와 변방의 세력들도 마찬가지였을 테니 결국 치세라는 이름의 안정이 곧 불안이기도 했던 것이다.

역사는 이처럼 정벌과 안정, 다시 갈등과 반발, 정벌의 반복을 가르치니 군사를 키우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오늘날에도 여전한 끊이지 않는 분쟁, 그 근원이라고 다를까?


# 삼국지 영웅인 관우, 부를 가져다 주는 ‘재신(財神)’으로 추앙받다

- 중국인 ‘재물’ 부르는 우상 숭배
- 국가가 부강하면 나라도 神 추대
- 中 굴기에 열광한 모습 마뜩찮아

   
영업장 입구의 관재상. 재신으로 변한 관우상이다. 타이베이 고궁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종주종.
종교를 사전에서는 ‘초인간적 세계와 관련된 신념이나 의례 등으로 인간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 의미를 추구하는 문화 체계’로 설명한다. 즉 초월적 존재가 있어야 하고, 그에 대한 신심(信心)과 마땅한 의례가 따라야 하며, 궁극적 가치를 추구하여 고뇌를 떨친다는 것이다. 이처럼 다소 막연한 개념이 수천 년간 인간의 정신세계를 붙잡은 것은 신(神), 영(靈)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초월적, 절대적 존재에 대한 체험과 그에 따른 교리인데 막상 직접적 체험의 과학적 증명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종교가 인류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인간은 자신이 직접 체험하지 않았어도 초월적 존재에 대한 믿음으로 현실에서의 끊임없는 고통을 위안 받으며 견뎌왔다.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불평등이나 억압의 경우에도 죽음 뒤 영혼의 세계, 또는 내세(來世)라는 미래에 기대했다. 무엇보다 절대자나 그 교리가 밝히는 가치에 따라 넘지 말아야할 마지막 선을 지키며 인간사회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 가장 큰 의미일 것이다.

중국인에게 종교를 물으면 많은 수는 도교를 든다. 그런데 도교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이지만 절대적 유일신은 없다. 자연숭배와 무술(巫術)이 혼합되어 방술(方術)이 생겨나고, 그를 행하는 방사(方士)가 출연하니 피안(彼岸)보다는 현실에서의 길복을 추구하는 현상이 짙다. 뒤이어 인도에서 들어온 불교 역시 ‘깨침’이나 ‘해탈’보다 ‘기복(祈福)’의 대상으로서의 의미가 더 크다. 역사를 훑어봐도 종교가 종교로서의 의미를 지킨 것은 북방의 유목족과 같은 이민족 정권의 지배층에서였고 다수의 주류 백성은 현실에서의 ‘복’보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재물’이 신앙이었다. 단적으로 <삼국지>의 영웅 관우(關羽)가 느닷없이 ‘재신(財神)’으로 화하여 각종 영업장은 물론 개인의 집에까지 모셔지는 현상이 그 증명이다.

   
농경을 통해 하늘의 운행과 자연의 순환을 파악한 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절대자의 존재는 아무래도 희떠운 소리나 될 뿐이고 현실을 보장해주는 것은 무엇보다 재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물을 모을 수 있는 안정되고 활기찬 사회는 국가의 역할이기에 그 힘이 약하면 다른 재신에 의지하고, 강하면 그 국가를 신처럼 여긴다. 오늘 중국의 굴기는 중국인에게는 곧 절대적 신의 재현에 다름없으니 그 힘의 과시에 열광하는 것이다. 지켜보는 이웃으로서는 불안하고 때론 괴로운 까닭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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