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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의 중국인 이야기 <34> 백성의 분노로 열린 공화 세상

로마보다 300년 먼저 연 공화정 시대, 백성 스스로 걷어차다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10-13 19:04:58
  •  |  본지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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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 최초 공화제 정치

- 귀족 반란 아닌 민란 의해 도입
- 두 신하 무난히 정무 처리 불구
- 로마와 달리 15년 만에 폐지

# 종법제에 취한 제후 천하태평

- 천자 옹립할 힘 가지고 있지만
- 가만히 있어도 세상은 돌아가
- 공화정치로 백성 눈치 보기 꺼려

# 백성 역시 지배체제 길들여져

- 목숨 위태로워 천자 내쫓고도
- 역법 바껴 굶어 죽을까 전전긍긍
- 쫓겨난 왕 죽자 아들 선왕 추대

백성이 왕을 쫓아냈다. 그저 왕이 아니라 ‘하늘의 아들’ ‘천자’를 쫓아낸 것이다! 이제 백성이 하늘인 세상이 되는 것인가.

‘사기’는 이때의 일을 ‘여(厲)왕이 도망친 왕궁에서 소목공(召穆公)은 주정공(周定公)과 함께 집정하여 나라의 일을 처리하니, 이를 역사는 공화(共和)라 한다’고 적었다. 인류 최초의 공화제가 시행된 그 해는 기원전 841년으로 기원전 509년 경에 시작된 로마의 공화정보다 300년 이상 앞선 것이었다. 더구나 로마의 공화정은 주나라와 달리 귀족들의 반란으로 비롯됐다. 정당성으로 따지자면 훨씬 더 당당한 ‘명분’까지 갖춰진 것이다.
   
중국은 기원전 841년 인류 최초의 공화제를 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제도를 이어가지 못하고 불과 15년 만에 다시 왕정으로 복구하게 된다. 지배층 스스로 뿌리 깊은 종법제의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사진은 현대 중국의 공화제를 상징하는 중국인민대회당.
■최초의 공화, 15년만에 끝나다

공화 14년, 여왕이 도망간 체(彘) 땅에서 죽음을 맞았다. 소목공의 집에 얹혀살던 여왕의 아들 정(靜)이 장성하자 그 다음 해 왕으로 옹립했다. 11대 선왕(宣王)이다.

무슨 황당한 짓인가! 굳이 왕이 있어야 했다면 진작 현명한 이로 옹립하든가. 공화의 정치를 15년이나 이어오다가 그것도 기껏 백성에게 쫓겨난 무도한 왕의 죽음을 기다려, 태자랍시고 폭군의 아들을 옹립하다니!

공화가 무엇인가? 백성이 인정하는, 또는 따르는 다수가 공동으로 뜻을 모아 정무를 처리하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소목공, 주정공 두 사람이 불화하여 나라의 일을 망치기라도 했다는 것인가? 그런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만약 그랬다면 아무리 넋 나간 사관이라도 겨우 15년 남짓의 일을 감히 ‘공화’라 기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실을 보아도 정무는 무난히 처리되었음이 분명하다. 이제 만나겠지만 선왕은 제법 중흥이라 할 만한 치적을 쌓는데, 이는 밑바탕에 탄탄한 국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니 그야말로 공화시대의 성과를 증명하는 것이 아닌가.

그보다 300여 년이나 늦게, 그것도 귀족의 반란으로 도입된 로마의 공화제는 인류 역사의 큰 물줄기를 바꾸지 않았던가. 그런데 중국인들은 왜?

뒤늦게 따져보면 7대 의(懿)왕의 뒤를 이은 동생 효(孝)왕의 즉위가 단순히 왕실의 무능에 따른 혼란이나 권력 다툼의 끝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즉 태자의 능력이 부족하거나 불량한 성정(性情)으로 나라의 고난이 뻔히 보이는 데도 장자세습이라는 틀에 갇혀 왕으로 받들어야 하는 어리석은 고리를 끊어보려는 효왕의 결의에 따른 결과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태자의 권리를 빼앗았으니 일종의 반역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효왕이 죽은 뒤, 태자의 권리를 찾아 즉위한 9대 이(夷)왕은 역사에 단 한 줄의 치적도 남기지 않았다. 자질 없는 군주로 여길 수 있는 것이다. 그 뒤를 이은 이가 여왕 아닌가, 역사상 처음으로 백성에 의해 쫓겨난, 탐욕스럽고 포악한 왕. 여자를 헌상하지 않았다고 제후국을 멸하는 졸렬하고 포악한 증조부 공왕, 연이어 무능했던 조부 의왕과 아버지 이왕, 그리고 공화를 부른 여왕. 가히 핏줄의 문제라 여길 만하지 않은가? 그런데 태자의 권리를 빼앗고 즉위한 효왕 역시 기록상으로는 별다른 치적을 찾아볼 수 없다. 생각해보면 그는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반발에 직면했음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종법제를 벗어날 수 없는 지배층

   
주나라 선왕의 복위 장면을 그린 그림.
서주에서 전국시대에 이르는 동안의 역사를 기록한 사서에는 ‘제후들이 옹립하여 왕이 되었다’는 기록이 산재한다. 그처럼 제후는 왕을 옹립할 힘은 있었어도 여전히 주 왕실의 신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분봉된 땅의 실질적 지배자이기도 했다. 또한 훗날에는 식읍의 재부(財富)와 군사를 바탕으로 천하제패를 꿈꾸는 군웅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아직은 천자라는 권위에 기대야했다. 백성은 여전히 하늘의 아들, 천자에 의지했기 때문이다. 또한 종법제라는 치밀한 그물을 벗어나지도 못했다.

정점의 천자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명분이면 제후는 아래의 대부(大夫)와 사(士)의 복종을 이끌어낼 수 있었고, 대부는 제후를 인정하며 사를 거느릴 수 있었다. 사 또한 대부를 따르며 백성을 다스리니 저마다의 이익이 보장되는 것이다. 얼마나 달콤한 그물인가.

더 높은 지위에 오르면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지 않느냐고? 어리석고 무모한 헛소리다! 촘촘히 짜인 틀 속에서 저마다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그들의 눈과 손발은 가만히 있겠는가. 여차하면 모든 것을 빼앗길 수도 있는 일이거늘. 그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맞거나 노예가 되는 일이거늘…. 주공 단의 말년이 생생하지 않은가. 주의 뼈대를 세운 최고의 권력이었던 그마저 망명이네 도망이네 분분하지 않았던가.

그래, 종법제의 그물에 얽힌 제후와 귀족의 지배층, 대부와 사의 관리층은 그러니 어쩔 수 없다고 치자. 그렇지만 왕을 몰아낸 백성, 그들은 무엇인가? 이미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지 않은가. 왕이 없어도 세상은 문제없이 돌아가고, 여러 사람의 공론을 통해 결정하는 정치체제는 백성의 눈치를 보지 않는가. 이제 산에서 땔나무를 할 수 있고, 벌판에서 사냥을 할 수 있고, 호수와 강에서는 고기를 잡을 수 있으니 그것으로 만족한다는 것인가? 저들이 언제 또 마음을 바꿔 자신들의 목을 옥죌지 모르는데? 이참에 아예 저들의 정치판에 당신들도 한 몫 끼어드는 건 어떤가? 아니라고? 어째서?
   
■‘공화’를 외면한 백성의 DNA

무슨 되잖은 소리. 잠시 그 자리가 비어있어도 나라와 백성을 다스리는 것은 천자여야 한다, 하늘의 아들! 어차피 촘촘한 그물로 엮여있는 그들이 작은 한 자리나마 내어줄 리도 없지만 백성도 이미 너무 길들여져 있었다. 질박한 음식으로 단련된 위장에 갑자기 기름진 고기가 들어가면 창자가 뒤틀리고 설사를 하게 마련이다. 몇 차례 더 견뎌내면 고기가 훨씬 나은 음식이란 것을 알고 익숙해지겠지만 그들에게는 당장의 두려움을 극복할 힘이 없었다.

무엇보다 백성 대다수는 하늘에 순응하며 살아온 농자(農者)였다. 하늘의 이치와 움직임을 파악하고 자연의 순환을 알려주는 것은 치자(治者)의 몫이었고, 그들은 오로지 정해진 력(歷)에 따르기만 하면 되었다. 또 그렇게 살아서 지금껏 목숨을 부지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어찌 하늘의 아들 ‘천자’를 두려워하지 않고 받들지 않겠는가.
기어이 목숨이 위태로워 천자를 쫓아내기는 했지만 속내는 두렵고 두려웠다. 덜컥 하늘의 운행이 바뀌기라도 한다면 꼼짝없이 굶어죽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그러니 다소 서러운 구석이 있어도 어쩌겠는가. 빼앗기고 두들겨 맞더라도 그러려니 하고 살아야지.

그렇다고 말이라도 한 마리 훔쳐 타고 멀리 도망쳐 따로 살 궁리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혼자서 무슨 재주로? 나라에서 알려주는 력도 없고, 할아버지와 아버지, 친구의 농익은 조언도 없이 무엇을 어찌해 살라고….

모두가 백성이고,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공화’는 그렇게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딱히 누가 의도한 조종이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관리는 종법제에 묶이고 백성은 농경이라는 목숨줄에 뼛속까지 길들여진 때문이었다. 그렇게 형성된 그들의 DNA는 오늘날에도 지배체제에 순응하고 열광하는 바탕이다.


◆노력 의한 신분상승 기회 제한 … 서민, 재력으로 눈돌려

- 배움·출세에 대한 갈망 컸지만 철옹성 같은 기득권에 좌절 일쑤
- 재물욕에 눈떠 권력 결탁도 마다

   
요녕성인민검찰원 반탐오수뢰국 현판. 우리의 검찰 반부패부에 해당한다.
백성이 깨치고 세상이치에 밝아지면 다스리는 자는 위세를 잃는다. 그래서 백성의 깨달음에 왜곡을 더해 혼란으로 위세를 지키기도 하는 것이 위정자들이다. 그래서 고대에는 백성의 교육을 제한했다. 다스리는 일을 할 사람과 다스림을 받을 사람을 나눈 것이다. 다스리는 일을 하는 사람은 귀족이니, 지위를 세습 받을 그의 자제들은 세상의 이치와 예법을 배웠다. 반면 다스림을 받는 백성은 그저 농사와 수공업 기술이나 익히면 되었다. 농사를 짓고 수공업 기술을 익히는 데 세상의 이치와 예법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들에게 해당하는 예법이란 시키면 시키는 대로 따르는 굴종의 예일 뿐이다. 그러니 한번 울컥하여 세상을 뒤집었다고 다스리는 일에 끼어들 생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뒷날 노예제가 없어지고 신분의 차이를 능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과거와 같은 제도가 마련된 뒤에도 능력의 기준이 되는 학문은 만만치 않은 벽이었다. 세습되는 전통 밖의 사람들로서는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다른 세계의 이치였고 오랜 시간을 요하기 때문이다.

   
재부를 염원하며 초대형 향에 불을 붙이는 모습.
그래도 그야말로 용이 하늘로 오르듯 등용문을 오르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기득권의 벽은 철옹성이었고, 더 높은 천자에게는 옳고 그름을 간하기조차 어려웠으니 좌절하기 일쑤였다. 결국 그들은 은둔하는 것으로 자신을 달래고 시문(詩文)으로 세상에 항거했다.

예법이라는 이름의 공허한 형식과 끝없는 논리의 괴이쩍은 벽에 좌절하는 명철함을 지켜보며, 결코 넘을 수 없는 하늘이라는 절대벽을 뼈에 새기며 백성들은 다른 길을 찾아냈다. 돈, 재부! 돈은 위기로부터 그 가진 만큼 자신을 지킬 수 있게 했고 재부가 되면 권력의 곁에서 함께 향유할 수 있었다. 그러니 치부(致富)를 부끄러워할 까닭이 없고 권력과의 결탁에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지식의 축척도 권력에 다가가는 방편이고, 권력은 부와 함께하는 길이었다. 탐오(貪汚 : 부정부패)와의 전쟁도 언제나 있어왔다. 슬로건은 공정한 세상으로 백성의 희망을 빼앗지 않기 위해서다. 하지만 권력에 도전할 재부를 견제하는 것이 주된 목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정부는 민영기업은 물론 외국기업에까지 공산당조직(당위원회) 설치의 확대를 꾀하고 있다. 기업이라는 재부의 원천을 들여다보고 통제하는 것이 권력의 안정이기 때문이라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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