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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의 중국인 이야기 <35> 서주 사람들 양극의 삶

귀족, 죽어서도 호사 누리려 귀중품 매장 … 평민 무덤엔 쌀 몇 톨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10-20 18:50:02
  •  |  본지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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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주 백성들은 자신들의 분노와 힘으로 탐학한 왕을 쫓아냈지만 인류 최초로 마주친 ‘공화’의 기회는 외면했다. 왕은 천자, 하늘의 아들의 자리이니 감히 엄두조차 내지 않았던 것인가?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는 너무 어려운 일임을 깨달아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인가? 그도 아니면 먹고 살길이 막혔다가 길이 뚫렸으니 그것으로 만족했던 것일까? 아무래도 마지막 그것일 것 같다. 그렇다면 서주의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 살았을까.

# 종법제 따른 장묘 예법

- 혈연·신분 엄격한 괵나라 공묘
- 금은보석 부장품만 5000여 점
- 하층민 분묘엔 관곽조차 없어

# 건축기술 장족의 발전

- 기와·벽돌 등장, 규모·양식 진화
- ‘전조후침’ 예법… 외벽 장식도
- 평민은 초가집서 농사 지어

# 사탕수수로 설탕 만들어

- 지배계층 먹거리 풍족했지만
- 일반 백성은 겨우 입에 풀칠
- 의복·장식도 계급별로 구분

■의·식·주의 차이

   
주나라 대 건축술은 장족의 발전을 이뤘고, 신분 계급에 따라 천차만별의 주거형태를 띠었다. 왕궁과 귀족 집들의 대표적인 형식인 전조후침(앞쪽에 조당 뒷쪽 침당)의 개념도 및 그래픽을 통한 복원도.
당시 서주의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어졌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귀족과 평민. 귀족에는 ‘천자’ ‘천자의 직·방계’ ‘제후·공·경·대부’ 등이 포함될 것이고, 평민은 군사가 될 수 있는 ‘국인(國人)’과 그 조차 할 수 없는 ‘서인(庶人), 야인(野人)’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사람, 노예가 있었지만 그들은 인신의 자유가 없고 매매가 가능했으니 ‘인간’으로 분류해 논하기 어렵다. 현실이 그러했으므로 어쩔 수 없다는 뜻이다.

먼저 주거 상태를 보자.

귀족의 주거지는 왕궁 또는 성 안의 저택이었다. 반면 평민은 직업에 따라 성 안에 살 수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성 밖에 거주하며 농사를 지었다.

주나라 대에 들어오면 건축 기술은 장족의 발전을 이룬다. 상나라 대에서 시작된 기와의 발전과 벽돌의 발명 덕분이다. 이들 건축자재의 등장으로 기존의 나무와 흙을 이용하던 건축과는 규모나 양식 면에서 비교할 수 없는 진보를 이룬다.

섬서성 부풍(扶風)현 소진(召陳)의 왕궁 유적을 보면 ‘전조후침(前朝後寢)’의 예법에 따라 앞쪽에는 조당이 있고 뒤쪽에 침궁을 건축했다. 규모는 조당에 해당하는 건물의 경우 가로 22m 세로 13.5m 정도였으며, 외벽에는 마름모꼴 무늬의 장식 벽돌을 붙이기도 했다. 또 하수시설을 만들기 위해 도기 하수관을 제작했다. 반면 평민의 주거지는 여전히 반지하식이 대부분이었으며, 나무와 흙으로 집을 짓고 짚으로 지붕을 엮었으며, 크기도 10㎡ 정도에 불과했다. 다만 주거 구역은 바닥을 불로 한번 태우거나 진흙에 짚을 섞어 단단히 다져놓았다.

먹거리는 어떠했을까?

귀족의 경우는 육류와 생선, 곡류 등 다양한 식자재를 계급에 따라 확보할 수 있어서 가장 낮은 계층인 사(士)의 경우에도 먹거리 자체는 부족하지 않았다. 오히려 먹거리를 담는 그릇으로 신분을 과시했다. 다양한 청동기와 더욱 발전한 도기에서 그 실상을 확인할 수 있다. 특기할 것은 당시에 이미 맥아(麥芽)와 사탕수수를 이용한 일종의 설탕을 제조했는데, 이는 인류사에서 가장 이른 경우에 해당한다. 반면 평민은 대개 자급자족으로 일정한 곡물과 채소에 약간의 어류를 섭취했으며 이마저도 넉넉한 양은 아니었다. 당연히 식기는 토기나 조악한 수준의 도기가 사용됐다.

의복과 장식에 이르면 더욱 차이가 도드라진다.

복식은 계급에 따라 엄격한 구분이 있었다. 윗저고리와 치마로 나뉘는 상의하상(上衣下裳)의 복색은 귀족의 예복이자 관복이었다. 윗옷과 치마가 분리되지 않은 심의(深衣)는 경·사대부와 고위층 사의 복색으로 겉섶은 짧고 치마는 발목까지 내려왔다. 포복(袍服)이라 불리는 상하가 붙은 긴 옷은 낮은 계급의 사부터 일상의 평민들이 입었는데 홑으로 입기도 하고 겹으로 입기도 했다. 또한 신분에 따라 금·옥·마노석 등으로 만들어진 여러 장신구를 착용했다. 이에 따라 그때 벌써 지금의 신강위구르자치구 호탄(和田)의 옥이 중원은 물론이고 멀리 장강 이남까지 퍼져나가는 무역로(제이드 로드:Jade Road)가 열렸다.

■죽음으로도 벗어날 수 없는 신분의 차이

   
주나라 대 귀족의 예복이자 관복인 상의하상(上衣下裳·윗 저고리와 아래 치마)의 예(위)와 경·사대부의 복색인 심의(深衣).
구분과 차이는 삶에서 뿐만 아니라 죽음에서는 더욱 엄격했다.

귀족의 죽음을 살펴볼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유적은 괵계를 비롯한 괵 나라의 공묘다. 괵 나라는 왕실과 같은 희(姬)씨 성의 제후국으로 비교적 후대인 서주(西周) 말기에 도읍 인근에 분봉된 나라이다. 그들은 종법제에 따른 예법을 엄격히 준수하여 당시의 장묘 예법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괵 나라 공묘의 모든 무덤은 철저히 혈연 및 신분에 따라 조성됐다. 분묘의 배치뿐만 아니라 묘실, 관곽의 형태, 구조, 부장품 등 모든 면에서 그러했다. 그중 괵계의 묘를 살펴보면 전차나 수레를 부장하는 거마갱(車馬坑)이 별도로 있었고, 금·옥·마노(瑪瑙)·청동·유리 등으로 제작한 각종 기물이 5000점 넘게 매장되어 있었다. 기물의 종류도 청동 예기, 악기의 일종인 편종, 금제 허리띠, 병기, 장식물 등 실로 다양했다. 또한 그러한 각종 기물들의 배치도 신분의 품계에 따른 예법을 정확하게 준수했다. 반면 평민의 경우는 작은 분묘에 관곽조차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부장품도 질박한 토기 몇 점이 있을 뿐이었다.

보이지 않는 절대신이나 유일신은 믿지 않았지만 죽은 이의 영혼은 어디에서인가 존재하리라 믿었다. 물론 삶의 끝인 죽음이라는 두려움이 만든 막연한 믿음이었다. 상나라에서 극성을 보였던 살아있는 사람의 순장은 주대에 들어서며 빠르게 사라졌지만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은 달라지지 않았기에 부장품은 여전했고, 사회의 발전에 따라 더 화려하고 다양해졌다.

살아서의 영화를 저 세상에까지 이어가겠다는 바람은 당연히 많은 것을 가지고 누렸던 지배층, 귀족들이었다. 살아생전의 신분에 걸맞은 호사를 누릴 수 있도록 산채로 순장된 말이며 마차가 있었고, 앞서 가신 조상처럼 제수를 받을 수 있는 제기가 부장됐다. 그가 입을 화려한 옷가지며 노리개, 곡물, 요리용 돼지, 닭까지. 하지만 평민은 무엇을 가져갔던가. 기껏 질박한 토기 몇 점에 곡물 몇 톨이 전부였다. 그러니 평민은 저 세상에서도 여전히 노동하고 배고픔에 시달리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평민은 명계(冥界)에서조차 다른 삶을 바라지 않은 것일까. 화려한 부장품을 장만하기 쉽지 않은 처지였겠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이에게 다른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장묘도 예법을 따라야했기 때문이다.

■극복하지 못하는 한계

   
괵나라 왕 묘에서 출토 된 장신구.
지배층의 권력, 그들과 가진 자들의 영화와 사치는 탐욕으로 비쳐지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무조건 비난할 바도 아닌 듯싶다. 영화를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고 그들의 재화와 사치는 문화 혹은 문명의 진보를 이끄는 씨앗과 동력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진보한 문명은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아래로 내려가 그들의 삶도 개선되고, 그것은 문명화의 과정이기도 했다.
또한 부의 축척은 기본적으로 불평등을 전제로 한다. 특별한 기회와 재능으로 불평등을 극복하는 경우에는 그에 따라 또 다른 불평등이 빚어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출발선에서의 공평을 지향하는 인간의 노력은 존중과 지지를 받아야 마땅하지만, 출신으로 인한 불평등은 어느 정도 용인할 수밖에 없는 것이 역사가 보여주고 극복하지 못한 현실이다. 다만 출신으로 수혜를 받은 자들이 지나치게 탐욕, 방종하거나 부를 축척하는 과정에서 도를 넘은 착취와 약탈을 자행하면 판을 뒤엎는 혁명이 일어나고, 역사는 그런 사례를 수없이 기록했다.

3000여 년 전, 서주의 공화도 그에 따른 결과였지만 왕조의 교체조차 없이 너무도 조용히 이전으로 복원되었다. 유례를 찾아보기 드문 경우이다. 아직 ‘중국’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았을 때니 중원의 그들은, 왜? 지배체제와 제도의 결과라면 너무 섬뜩하고, 그들의 한계라면 너무 기막히다.
   

# ‘민이식위천(民以食爲天)’… 음식은 중국인 삶에 가장 큰 화두

-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아’
- 배 채우면서 자연히 음식 발달
- 각 지역엔 대표 요리도 나와

   
민이식위천(民以食爲天).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 ‘사기’의 역생육가열전에 ‘왕자이민위천(王者以民爲天 : 임금은 백성을 하늘로 삼는다)’이라는 경구와 함께 실린 말이다. 먹지 못하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이니 지극히 당연한 자연의 이치임에도 중국에서는, 중국인을 마주하면, 중국의 역사를 읽으면 더욱 공감된다.

‘보천지하막비왕토(普天之下莫非王土)’라는 말도 있다. 중국대륙을 처음 통일한 진시황이 ‘하늘 아래 황제의 땅 아닌 곳이 없다’고 말한 것이니 천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선언이다.

하늘의 아들이 천하의 주인으로 다스리는 세상. 권력을 추구해도 그 아래 피지배자일 뿐이고, 돈을 신으로 여겨 재부를 쫒아도 권력에 기대야하고 그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다. 더군다나 권력이든 재부든, 그 정점과는 거리가 먼 보통의 백성이라면 그저 하루를 살아내며 배불리 먹을 수 있고, 맛까지 훌륭하다면 더 바랄 것이 없었을 법도 하지 않은가.

‘지대박물(地大博物)’ ‘땅은 넓고 물산은 풍부하다’ 고원에서 바다까지, 밀림에서 사막까지, 아열대기후에서 냉대까지. 실로 다양한 자연환경에서 생산되는 온갖 물산 중에서 가장 빼어나고 좋은 것은 모두 천자에게 향했다. 그가 주인이고 정점이니 그의 자보(滋補)와 양생(養生), 정기를 보하고 건강과 장수를 도모하는 것은 나라의 근본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세계 양대 요리 중 하나로 손꼽는 프랑스요리의 특징이 레시피가 바뀌지 않으면 맛의 일정함을 유지하는 섬세함과 정밀함이라면 중국요리는 그 종류와 맛의 다양함을 자랑하는 바탕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절대권력을 향한 박물과 장인의 노력은 상상 이상의 요리를 만들어내고, 이어지며 다양하게 발전했다. 또한 최고의 요리는 천자의 거처로 모여드니 오랫동안 수도로 자리한 베이징에 덧대 ‘베이징요리’라는 이름도 나왔다. 그렇지만 중국에서는 ‘베이징요리’라는 이름은 통용되지 않는다.

   
각 지역의 이름을 내세운 저마다의 요리가 있고, 그것은 천자에 앞서 백성이 즐기고 하늘로 삼은 ‘식위천’의 상징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는 ‘루차이(魯蔡 : 산동요리)’ ‘화이차이(회양요리)’ ‘촨차이(사천요리)’ ‘웨차이(광동요리)’의 4대 요리와 ‘민난차이(복건요리)’ ‘샹차이(호남요리)’ ‘후이차이(안휘요리)’ ‘저차이(절강요리)’를 더한 8대 요리를 들 수 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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