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대륙에서 이른바 춘추시대라는 치열한 각축전의 무대가 펼쳐지고 있던 기원전 670년 무렵, 인류 최초의 문명 발상지 중 하나인 서아시아지역에서도 국가 간에 치열한 대립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기원전 671년에는 아시리아가 그동안 패권국으로 군림하던 이집트 25왕조를 상이집트로 몰아내고 서아시아지역 대부분을 통일했다. 그보다 더 서쪽 그리스와 로마에서도 나름의 정치체제를 구축한 채 문명발전과 더불어 지역 패권을 추구하고 있었다. 또한 중앙아시아지역 스키타이족은 탁월한 기마술을 바탕으로 한 기동전으로 수시로 그리스와 인도 북부 지역에 출몰해 농경민을 약탈하고 피바다를 이루는 살육을 저지른 뒤 사라져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모두 살아남기 위해 더 큰 힘으로 뭉쳐야 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국가는 더 큰 덩치의 국가와의 대립에서 또 살아남기 위해 이기고 약탈하고 점령해야 하는 야만의 진보와 문명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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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경의 한 미술 공간에 ‘모주석 만세’ 등의 경구가 걸려 있다. 모택동은 중국 인민에게 거의 신적인 존재다. |
문명의 발전에 가장 큰 계기가 된 것은 아마 종교일 것이다. 그리스를 비롯한 서쪽에서는 제우스를 비롯한 포세이돈, 아폴론, 헤라, 아테네… 심지어는 사랑에는 여신 아프로디테, 술에까지 디오니소스라는 신이 등장해 문명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었다. 동쪽 인도지역의 종교 브라만은 카스트라는 계단식 신분제도로 사람 간에 엄격한 차별을 두어 최하층민인 수드라 계급은 노예를 방불케 했지만 최상류 계급인 브라만을 중심으로 나름 찬란한 문명의 꽃을 피워가고 있었다. 어쨌거나 그들의 종교는 단순한 기복의 기원이 아니라 마음속으로부터의 숭배와 믿음으로 체질화, 정신화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중국에서는 이렇다 할 종교의 등장이 없었다. 산천과 조상의 영혼에 빌고 추모하는 의식은 있었지만 그것을 종교라 이를 수는 없는 일이다. 대신 천자와 나라가 그 자리를 메웠다. 이미 보았지만 천자의 허울은 벗겨진 바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천자를 버리지 않았고, 제후와 나라라는 또 다른 대안으로 따르고 복종했다.
그렇다고 대안이 반듯했던 것도 아니다. 방탕하고 무능한 군주, 가혹한 관리, 우악스러운 군대…. 아무리 참혹해도 백성은 다른 군주를 찾아 국경을 넘을지언정 다른 신을 찾지는 않았으니 결국 중국인 신은 국가인 셈이었다.
오늘날에도 다르지 않다. 나라의 위세에 따라 돌변하는 행태. 단순히 힘을 믿은 우쭐함의 발로일까? 아니다. 종교의 계율처럼 치밀한 조직으로 배후가 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유학생들의 그 무례한 행동에까지도. 그럼 길은 완전히 막힌 것일까? 다음 회에 이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