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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의 중국인 이야기 <42> 패자의 위엄과 제 환공의 한계

齊(제) 환공, 규구회맹 통해 패자 군림… 교만해지자 제후들 멀어져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12-08 20:22:00
  •  |  본지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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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공, 패자 의식 치르다

- 열강 맹주들 모인 첫 회맹 자리
- 제물로 소 귀 잘라 옥반에 담고
- 피는 서열 따라 차례대로 마셔

# 제, 초나라에 군사 일으키다

- 포저 공납·소왕 실종 명분으로
- 남방세력 힘 커지자 정벌 나서
- 주 왕실에 복종 약속받고 철군

# 환공, 갈수록 위세를 부리다

- 진, 회맹 참석하려고 급히 가다
- 교만하다는 얘기 듣고 발길 돌려
- 땅과 하늘에 제사 지내려는 등
- 천자 역할 탐하자 관중 겨우 말려

회맹(會盟). 열국의 맹주들이 모여 갖는 회합이고, 회맹을 주재하는 자는 당대의 패자(覇者)로 인정받는 것이었다. 회맹의 의식은 엄중하였으니, 먼저 단(壇)을 만들고 제물로 가져온 소를 잡아 귀를 잘랐다. 소의 귀를 자른다는 것은 패자를 의미했는데, 귀는 옥반(玉盤)에 담고 소의 피는 돈(敦)이라는 그릇에 담았다. 두 명의 사회자가 각각 반과 돈을 들고 맹약서를 읽어 하늘에 고하고 피는 서열에 따라 순서대로 마셨다.
   
제 환공이 규구에서 열린 제후들과의 회맹에 참석하기 위해 출발하는 모습. 환공은 규구회맹을 주재하며 당대의 패자로 인정받았다.
맹주들은 저마다 나라의 주인임을 내세웠고 따르는 신하들은 ‘왕’이라 부르기도 했던 모양인데 공식적으로는 주나라의 제후국에 불과했다. 사서에 ‘환공’ ‘장공’ 등으로 기록된 것도 그런 까닭이다. 그런데 제후국마다 ‘환공’ ‘장공’ 등 다수의 호칭이 겹친다. 좋은 뜻의 글자를 선호한 때문이겠지만 아무래도 당시에는 요즘보다 문자 수가 적었던 까닭도 있을 것이다.

■북방 국경까지 뻗는 환공의 위엄

   
회맹의식 때 사용한 제기들. 제물로 바쳐진 소의 귀를 잘라 담았던 ‘옥반’(오른쪽)과 소의 피를 담았던 그릇 ‘돈’.
환공 23년, 북쪽의 연(燕)나라가 산융족(山戎族)의 침공을 받자 제(齊)에 도움을 청했다. 이에 환공은 군사를 이끌고 나가 산융족을 쫓아내고 동쪽의 고죽국(孤竹國)까지 토벌했다. 연(燕)은 당시 주나라 동북쪽 국경에 해당했고 산융족은 뒷날의 동호(東胡), 흉노(匈奴) 등의 선조로 추정되는 북방 유목족이었다. 또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의 고사로 유명한 고죽국은 발해만 북쪽, 지금의 진황도(秦皇島)시 인근이니 모두 동이계열로 고조선(古朝鮮)과 맥이 닿기도 하는데 이에 관해서는 북방민족이 본격적으로 등장할 때 자세히 알아보겠다.

환공이 귀국길에 오를 때 연(燕) 장공(莊公)이 환송에 나섰다가 제나라 땅까지 들어왔다. 이에 환공은 이렇게 말했다. “천자가 아닌 제후끼리의 전송에는 국경을 넘지 않는 것이 관례입니다. 이렇게 전송을 받았으니 나도 예를 갖추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고는 그 자리에서 국경의 도랑을 파게 해 연(燕)에 할양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여러 제후가 감복해 더욱 환공을 따랐다.

환공에게 애강(哀姜)이라는 여동생이 있었다. 큰형 양공과 통정해 노(魯)와 분쟁의 원인이 되었던 문강과 자매였다. 문강이 혼인했던 노 환공은 양공에 의해 죽었고, 재위를 이어받은 노 장공의 부인이 애강이었다. 그런데 애강은 또 장공의 동생 경보(慶父)와 통정했다. 자매의 문란이 어이없는데 더욱더 기막힌 일들이 있었다. 다름 아닌 노 장공이 문강과 제 양공의 통정으로 낳은 자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애강은 친오빠와 언니가 낳은 조카와 혼인하고 또 그 동생과도 통정했던 것이다.

더하여 재위를 탐한 경보는 형을 죽이고 어린아이인 동생 계(啓)를 재위에 올렸는데 그가 민공(閔公:기원전 661년∼기원전 660년 재위)이다. 민공은 노 장공의 잉첩이었던 숙강(叔姜)이 낳은 아들이고, 숙강은 애강의 동생이었으니 민공에게는 외숙모가 되었다. 막장이다. 그런데 더한 막장이 계속된다. 경보는 2년 만에 민공을 죽이지만 재위에 오르지는 못하고 거(莒)나라로 도망친 것이다.

당대의 패자였던 제(齊) 환공으로서는 몹시 민망했을 것이다. 환공은 여동생 애강을 제(齊)로 불러들여 죽인 뒤 그 시체를 노(魯)로 보내는 것으로 위엄을 보였다.

■대의명분을 위해 초나라를 치다

지난 회에 환공이 부인의 일로 채(蔡)나라를 멸한 것을 보았다. 환공 30년의 일이었다. 그런데 그 일은 개인적인 감정에 의한 것이니 패자로서 대의명분이 없었다. 이에 환공은 군대를 남방의 초(楚)나라로 돌렸다.

중원 세력에게 초를 비롯한 남방 세력은 야만의 오랑캐였다. 그런데 초의 우두머리는 스스로 왕을 칭하며 주나라 왕실에도 무례했다. 더구나 제법 강성한 힘을 믿고 중원 세력에 공공연히 위협이 되고 있었으니 정벌의 대의명분이 번듯했다.

제의 군사가 밀려오자 초 성왕(成王)은 전군에 동원령을 내려 대비하며 사신을 보냈다.

“어찌하여 우리의 영토를 침범하는 것이오?” 사신이 묻자 관중이 말했다.

“지금 초는 주나라 왕실에 포저 공납을 소홀히 하여 제사를 모시는 데 차질을 빚고 있다. 또 3백 년 전 주나라 소왕께서 초나라로 가신 후 실종되었는데 어찌 된 일인가? 우리는 그로 인해 군사를 일으킨 것이다.”

포저(包茅:포모)는 제사용 술을 빚을 때 사용하는 식물이고, 소왕의 일은 형초 정벌에 나서 한수(漢水)를 건너다가 배를 접착한 아교가 녹아 침몰하여 익사한 일을 말하는 것이었다.

“공납을 게을리한 것은 우리의 잘못이오. 앞으로는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소. 그러나 소왕의 일은 우리와 무관한 일이니 한수 강물에 물어볼 일이오.”

사신의 말에 딱히 그름은 없었지만 군사를 돌릴 명분도 되지 못하니 환공은 공격을 개시했다. 대의니, 명분이니 하는 말의 실상이었다.

초는 대부 굴완(屈完)을 장군으로 삼아 대적하니 서로 일진일퇴의 공방을 펼쳤다. 오랫동안 승부가 나지 않자 환공은 군사의 우세를 말하며 항복을 권유하자 굴완이 대응했다.

“제나라의 행동이 도리에 맞는다면 그렇게 하겠소. 하지만 도리에 맞지 않는다면 우리는 방성산을 성으로 삼고 장강과 한수를 참호로 삼아 한 치도 물러나지 않을 것이오. 아무리 제나라 군사일지라도 쉽게 정복하지 못할 것이오.”

환공은 초를 완전히 굴복시키지는 못했어도 주나라 왕실에 복종하겠다는 맹세는 받은 터이니 대의는 이루었다는 명분으로 철군했다.

■환공의 절정, 규구회맹

5년 뒤, 환공은 규구(葵丘:하남성 상구시 민권民權縣)에서 제후들과 회맹했다, 이때 주(周) 양왕(襄王)은 재공(宰公)을 사신으로 보내 환공에게 문무조(文武胙)와 동궁시(彤弓矢), 대로(大路)를 하사했다. 문무조는 천자가 주 문왕과 무왕에게 제사 지낼 때 제단에 올리는 고기이고, 동궁시는 붉은색을 칠한 활과 화살, 대로는 천자가 타는 수레로 특별한 공로가 있는 제후에게 하사되는 것이었다.

재공이 “양왕께서 환공께서는 무릎을 꿇고 신하의 예를 갖출 필요 없이 그냥 받으라 하셨습니다” 하자, 환공이 그대로 하려 했다. 이에 관중이 나서 “신하의 예를 갖추어 받으소서” 간하자 따랐다.

그해 가을, 다시 회맹을 가졌는데 환공은 이전과 달리 거들먹거리며 위세를 부렸다. 그러자 제후들의 마음은 점점 멀어졌다.

북쪽 진(晉)의 헌공(獻公)이 처음으로 회맹에 참석하려 했는데 병으로 늦어져 도중에 재공을 만났다. 재공은 헌공에게 “지금 제 환공이 지나치게 교만하니 가지 않아도 될 것이오”라고 말하자 되돌아갔다.

환공은 이렇게 공언하기까지 했다.

“나는 남쪽으로 소릉(召陵:하남성 탑하漯河시)까지 이르러 웅산(熊山)을 바라보았고, 북쪽으로는 산융, 이지(離枝), 고죽을 정벌하였다. 서쪽으로는 대하(大夏)를 토벌하여 사막을 넘었고, 태항산(太行山)에 올라 비이산(卑耳山)에 당도한 다음 돌아왔다. 제후 중 아무도 나의 명을 거스르지 못하였고, 전쟁을 위해 세 번 회맹하고 평화를 위해 여섯 번 회맹했다. 옛날 하, 상, 주 삼대의 왕들이 천명을 받든 것처럼 나도 태산(泰山)에서 하늘에 제사를 받들고, 양보산(梁父山)에서 땅에 제사를 받들려 한다.” 제후로서 천자의 일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관중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간했지만 환공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다시 먼 곳에서 진수괴물(珍獸怪物:봉황, 기린, 비익조, 비목어)이 모여들지 않는 한 천명을 받들어 제사를 모실 수 없다고 설득하여 겨우 환공의 교만을 꺾을 수 있었다.


# 중국 3000년간 이어진 천하국가 우월의식…지금도 시대착오적 자부심 확산

- 내부갈등 줄이고 단합 도모 역할
- 경제·문화도 우월감 느끼는 그들

   
중용에 등장하는 ‘천하국가’ 구절. 중국이 천하국가라는 우월의식은 3000년을 이어오며 중국인의 의식에 각인돼 있다.
보아왔지만 하나라는 하남성 낙하 연변의 작은 마을에 불과했고, 상나라 대에는 하남성을 비롯한 인근 몇몇 성의 주변까지 영토를 넓혔다지만 불완전한 연맹체 정도였다. 게다가 주인공은 동이족이었고 유목적 성향으로 수도를 여덟 차례나 옮길 만치 영토에 대해 그렇게 집착적이지 않았다.

주나라에 이르러 비로소 제후국을 봉하며 영토 확장적인 면모를 나타내지만 패권을 겨루는 무질서의 혼란이었다. 물론 뒤에 이르러 대륙이 하나로 통일되지만 특별한 점은 모든 세력이 황하 중류 하남성과 섬서성 일원을 중원(中原)이라 부르며 지향했다는 것이다.

하남성과 섬서성 일원이 황하문명의 주요 발상지임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중국 곳곳에서는 신석기시대를 전후로 다양한 문명이 태동했고, 북방의 홍산문명이나 삼성퇴, 하모도 등 장강유역 문명에서 보듯 그 일방적 우위를 가리기는 사실 어렵다.

그럼에도 특정지역을 중원으로 여겨 지향함으로써 ‘중앙’이라는 인식을 낳았고, 그 중앙을 기점으로 오랑캐라 멸시하던 사방까지 아우르는 ‘천하’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천하국가天下國家’, ‘중국’이라는 단어가 나오기 이전부터 통용되던 ‘천하를 다스리는 나라’라는 인식으로 보아 무방할 것인데 이에는 지리적인 것뿐 아니라 문화적 인식도 포함하며 ‘천자’라는 개념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아무튼 그렇게 천하국가라는 우월의식은 거의 3000년을 이어져 내려오며 중국인의 의식에 각인되었다가 근세에 들어서며 쇠락했다.

하지만 개혁개방 이후 다시 ‘붉은 용’으로 부활하며 천하국가라는 의식이 꿈틀거리기 시작했고, 지도층의 의지는 일반 인민에까지 자부심으로 확산해가고 있는 중이다. 우리나 보편적 세계인의 상식으로는 시대착오적 인식이지만 중국으로서는 되찾고 싶은 영광이고, 그로써 내부갈등을 다독이고 단합을 도모할 수 있는 프로파간다이기도 하다.

   
교육 및 다양한 매체를 통해 현대문명의 세례가 쏟아지지만 대다수의 중국인은 우월적, 지배적 의식에 동의하고 자부심을 느낀다. 비상식적이고, 지나쳐 횡포가 되는 행태가 언제라도 불거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이제 천하국가의 우월이나 지배는 지리적이 아니라 경제적, 문화적 개념인 세상이고 거기에서 우리의 활로를 찾을 수 있고 뚫어야 할 것이다. 다음 회에 잇는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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