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3000여 년 동안 동아시아의 맹주로 군림한 것은 오직 영토적 힘 때문만은 아니었다. 중국은 그 긴 세월 동안 참으로 많은 것을 앞서 창조했고 문화적 우위를 과시했다. 문자 사상 철학 등 정신적인 면을 비롯하여 천체(天體) 월력(月曆) 등의 과학, 양잠 종이 자기(瓷器) 화약 등 수많은 물질 면에서 앞섰고 주변 제국(諸國)은 그 혜택를 받은 바 크다. 물론 문명은 상호교류에 의해 더욱 발전해나가는 것이니 일방적인 수혜만은 아니었지만 그 선진적 탁월함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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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오랜 문화 창조의 활력은 공산혁명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시들었다. |
중국의 창조와 발전기반은 동남서북으로 다양한 환경, 박물(博物)이라는 단어로 설명되는 수많은 산물이었으니 과연 드넓은 영토의 힘이었고 그 확장에 대한 욕망은 멈출 수 없는 것이었다. 영토 확장을 위한 전쟁 또한 엄청난 피해의 이면으로는 이기기 위한 도구로 많은 기술의 이기(利器)를 만들어 창조와 발전의 한 축이 되었다. 그런데 무엇보다 큰 원동력은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묵인이었다. 사농공상의 질서가 있었지만 무작정 차별하지 않았다. 부의 숭상을 비천하게 여기지 않고 장려했다. 이익을 위한 인간의 노력에 제한을 가하지 않았기에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영토에 대한 진취적 기상은커녕 고대 골품제의 폐단을 잇기라도 하는 것처럼 사농공상이라는 한심한 이념을 고수하며 창조의 싹을 자르던 조선의 악습이 오늘에도 제도의 제한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아무튼 중국의 그 오랜 창조의 활력은 공산혁명으로 시들었고 문화대혁명으로 완전히 말라버린 것인가 했다. 그러나 죽의 장막이 걷히자 단번에 싹을 틔우더니 금세 화려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그들과 부대끼면 어렴풋이 보이는 것이 있다. 단절에 따른 공백이다. 이를테면 자석식이나 공전식 전화기에서 곧바로 핸드폰으로 넘어가고, 라디오에서 제대로 텔레비전이나 비디오를 거치지 않고 DVD를 향유하는 데서 빚어지는 허술한 틈새 같은. 대수롭지 않을 듯싶지만, 특히 문화는 발전단계를 거스르면 그 빈틈의 영향은 의외로 크고 쉬 메워지지 않는다. 아마 ‘한류’라는 이름으로 중국인의 많은 사랑을 받는 우리 문화의 성과는 그 반동의 영향이 클 것이다. 다음 회에 좀 더 구체적으로 이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