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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가 요시히데가 16일 임시 국회에서 정식으로 제99대 총리로 선출돼 스가 요시히데 내각을 공식 발족했다. 사진은 14일 오후 총재 당선이 확정된 뒤 손을 들어 환호에 답하는 스가 총리.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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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신임 총리 스가 요시히데는 1975년 4월 오코노기 히코사부로 중의원 비서관을 시작으로 정계에 첫 발을 들였다.
그는 11년간 오코노기의 비서로 활동하다 1987년 4월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시의원으로 당선돼 본격적인 정치인의 삶을 시작했다.
스가는 2013년 11월 19일 안중근 표지석 설치를 위한 한국과 중국의 움직임에 관한 질문을 받고 “우리나라(일본)는 안중근에 관해서는, 범죄자라는 것을 한국 정부에 그동안 전해왔다”고 대답했다. 2014년 1월에는 중국 안중근 기념관이 개관하자 “우리나라의 초대 총리를 살해, 사형판결을 받은 테러리스트”라고 발언하며 대립각을 세웠다.
스가는 일명 ‘자수성가형 정치인’으로 정치권에서 자리매김해왔다.
그는 고교 졸업 후 도쿄의 박스 공장, 쓰키지 시장 등에서 막노동을 하다 학비가 가장 저렴한 사립대에 입학해 학비를 벌며 졸업했다는 배경을 강조해왔다. 그러면서 총재 선거 경쟁자였던 일명 ‘세습 정치인’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조회장과 자신을 차별화했다.
스가와 자민당의 관계는 그가 1996년 10월 중의원 총선거에 자민당 소속으로 출마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자민당 소속으로 가나가와2구에서 처음 당선돼 지금까지 연속 8선을 기록했다.
그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에서 국토교통성 정무관, 경제산업성 정무관, 총무성 부대신 등을 지내고 2006년 9월 제1차 아베 내각 발족과 함께 총무상에 임명됐다.
나카지마 다케시 도쿄공업대 교수는 저서 ‘자민당, 가치와 리스크의 매트릭스’에서 스가와 아베가 일본인 납북 문제를 매개로 가까워졌다고 분석했다.
스가는 당시 북한 화객선 만경봉호가 북한의 대일 공작 활동 거점이며 사령탑이나 금고 역할을 하고 있다며 만경봉호의 일본 입항 저지를 위해 2002년 항만법 개정을 요구했다.
당시 관방 부장관이던 아베 전 총리는 이러한 스가의 주장에 주목해 전면적으로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이후 스가는 2012년 12월 제2차 아베 신조 정권 발족 후 8년 가까이 관방장관으로 재임했다. 그는 재임 기간 동안 대외적으로 ‘일본 정부 대변인’, ‘아베 정권의 입’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스가는 우익 단체 4곳에 소속되어 있고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기도 했다.
역사·사회 활동가 다와라 요시후미의 저서 ‘일본회의의 전모’에 따르면 스가는 대표적인 우익 단체인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 신도정치연맹(신정련) 국회의원 간담회, 다함께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창생 ‘일본’ 등 4개 단체에 이름을 올린 상태다.
그는 2011년 자신의 블로그와 2014년 2월 중의원 예산회의를 통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고 밝혔다.
일제 강점기 징용 문제를 다룬 한국의 사법 절차가 “국제법 위반”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하는 등 일본군 역사 문제와 관련해서도 그는 한국과 대립하는 시각을 꾸준히 내세웠다.
스가는 16일 임시국회에서 제99대 총리로 취임했다. 신동욱 기자 손혜림 인턴기자 woogy0213@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