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탑 설명 없고 건립취지문 사라져
- 中, 몇 년 간 한국인 방문 막기도
100년 전 두만강 건너 지금의 중국 지린성 옌볜 조선족자치주 허룽(和龍)지역 산골짜기 일대에서 치러진 청산리전투. 독립군은 일본 정규군의 추격을 피하고 병력을 보존하고자 험한 백두산으로 이동하려 했는데, 그 과정에서 일본군과 엿새 동안 생사를 건 싸움을 벌여 대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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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9일 찾아가 본 중국 지린성 청산리전투 현장 기념탑. 연합뉴스 |
한중 양국은 천산리전투 80주년을 즈음한 2001년 17.6m 높이의 ‘청산리 항일대첩 기념비’를 세웠다. 이곳을 기념공원으로 만들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하지만 청산리전투 100주년을 맞아 지난 19일 기념탑을 찾았을 때는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돼 있었다. 주변 바닥 돌 틈에는 올 여름내 자랐을 것으로 보이는 잡초가 말라 있었다.
탑 주변에 돌로 만든 울타리 곳곳이 훼손됐고, 사적지 표식은 녹슬어 알아볼 수 없었다. 또 8, 9년 전 기념관으로 쓰려고 지은 건물도 기념공원 계획이 흐지부지된 뒤 방치 상태다. 특히 탑에 새긴 ‘청산리항일대첩기념비’ 글자 외에, 청산리전투 설명은 찾아볼 수 없다.
탑 뒤쪽 벽면에 설치했던 건립취지문은 사라졌다. 건립취지문에는 원래 한국어·중국어로 “동북지역 반일 무장투쟁 사상 새로운 시편을 엮음은 물론, 조선 인민의 반일 민족독립 운동을 주동한 역사로서 청사에 새겨졌다”는 평가가 적혀있었다. 지금은 건립취지문 석판을 설치할 때 쓴 나사만 녹슨 채 남아, 석판이 없어진 지 오래됐음을 알려줬다. 대신 탑 본체에 새긴 청산리 전투 장면 부조 조각이 눈에 들어왔다. 청산리전투 때 총을 든 독립군이 앞서 싸우고 뒤에서 남녀노소가 지원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는데, 남녀노소가 입은 옷은 한복이 아니고 중국식 의복이다.
기념탑이 중국 땅에 세워지다 보니 중국 측과 협의 과정에서 이렇게 결정되었다고 하는데, 청산리전투에 대한 설명이 없는 상태에서 해당 부분을 보면 한국과의 관련성을 찾기 어려웠다.
중국 당국은 기념탑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인의 기념탑 방문도 막고 있다. 한국인의 방문 요청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 없이 난색을 보이거나, 먼 길을 거쳐 입구까지 갔을 때도 그냥 발길을 돌리게 만드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차량들이 이용하는 내비게이션 지도에서도 ‘청산리 전투 기념탑’은 검색되지 않는다.
접경지역 한 소식통은 “시진핑 국가 주석 집권 이후 공산주의 홍색(紅色) 교육과 중화 민족주의가 강해졌고 소수민족의 한족화가 이뤄지는 분위기”라면서 “한국 사람이 와서 자기 것이라 하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서 “중국은 일제강점기 조선의 독립군에 대해 조선족이자 중국인으로 본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