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이 49년 만에 낙태권 보장 판결을 뒤엎을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미국 사회가 둘로 쪼개졌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가 지난 2일(현지시간) ‘미연방대법원이 여성의 낙태할 권리를 획기적으로 보장한 1973년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폐기하기로 했다’는 내용의 결정문 초안을 입수, 보도하자 3일 워싱턴DC 연방대법원 앞은 찬반 시위대로 북적였다.
사전 유출된 이 문건은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이 작성해 대법원 내 회람한 다수 의견서 초안이다. 미국은 ‘임신 약 24주 뒤에는 태아가 자궁 밖에서 생존할 수 있다고 보고 그전에는 낙태를 허용한다’는 내용의 ‘기념비적’ 로 대 웨이드 판결에 따라 여성의 낙태권을 49년 전 확립했다. 그러나 이것이 폐기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 보수 우위로 바뀐 연방대법원이 낙태 가능 기준을 임신 15주로 좁힌 미시시피주의 법률을 작년부터 심리, 올여름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이 예고된 바 있다.
폭로된 초안을 보면 얼리토 대법관은 “로(로 대 웨이드)는 시작부터 터무니없이 잘못됐다. 우리는 이 판결을 뒤집어야 한다고 결론내렸다”고 했다.
미국에선 찬반양론이 이어졌다. 낙태권을 옹호하는 미국가족계획연맹은 “대법원이 낙태권이라는 헌법적 권리를 끝내려고 준비한다”며 비난했다. 낙태 금지를 찬성하는 미국생명연합은 “대법원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며 환영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의 정치쟁점으로 떠오를 조짐도 보인다. 낙태권 문제는 옹호하는 민주당과 반대하는 공화당을 구분하는 대표적인 사안일 정도로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첨예한 논쟁거리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소속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성명에서 “대법원이 판결을 뒤집는다면 모든 선출직 공직자는 여성의 권리를 지켜야만 하고, 유권자는 중간선거에서 이를 옹호하는 후보를 선택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삼권분립이 엄격한 미국에서 대통령이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이런 성명을 발표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민주당은 아예 입법으로 낙태권을 못 박는 카드를 꺼내 들 심산이다.
반면 공화당은 대법원의 움직임을 지지하면서 초안 유출 문제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분위기다. 테드 크루즈 공화당 상원의원은 “(초안 유출은) 2세기가 넘는 미국 역사에서 결코 일어난 적이 없는 파괴적인 일”이라며 일부 좌파 직원의 소행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