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의 ‘봄철 대반격’을 앞두고 러시아 대통령 관저인 크렘린궁이 지난 3일(현지시간) 드론(무인기) 공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는 이번 드론 공격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암살을 노린 우크라이나의 공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측은 이를 즉각 부인했다.

이번 드론 공격이 러시아의 자작극이나 우크라이나의 심리전 등 무성한 관측이 제기되는 가운데 어느 쪽이 맞든 ‘확전’의 구실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 크렘린궁을 겨냥한 드론 공격이 있은 지 하루 만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또한 블라디미르 크렘린궁이 정체불명의 드론(무인기)에 공격받은 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여러 도시에 집중적인 공습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4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러시아 공격으로 도시 상공에서 드론 폭발이 발생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리아노보스티·타스 통신 등은 크렘린궁 피격 이튿날인 4일(현지시간) 새벽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비롯한 전국 주요 지역에서 러시아군의 공습이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키이우에선 이날 새벽 2시20분께 공습경보가 발령됐다. 인근 키이우주에선 새벽 2시 3분, 중부 키로보흐라드주에선 새벽 2시9분께 공습경보가 울렸다.

앞서 북부 체르니히우주, 북동부 수미주, 동부 하르키우주, 중부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주, 중부 폴타바주, 남부 오데사주 등에도 공습경보가 발령됐다.

수도 키이우에선 공습경보 발령과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고 현지 언론 ‘스트라나’가 전했다.

키이우시 군정 수장 세르게이 포프코는 소셜미디어 텔레그램에 올린 글에서 “오늘 키이우에 대한 공격 강도가 올해 들어 가장 강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도시 여러 구역에 미사일 잔해가 추락했다고 전하면서 인적·물적 피해 현황은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매체는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에서도 8차례의 폭발이 일어났다고 보도했다. 현지 언론이 공개한 사진에는 오데사 상공으로 치솟는 연기 기둥이 보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역 집중 공습은 전날 크렘린궁이 드론 공격을 받은 데 대한 보복으로 보인다.

앞서 크렘린궁은 3일 “오늘 새벽 우크라이나가 무인기로 크렘린궁 대통령 관저에 대한 공격을 시도했다”며 “2대의 무인기가 크렘린궁을 겨냥했으나 군이 전자전 체계를 적절히 사용해 드론을 무력화했다”고 밝혔다.

또한 이번 공격으로 푸틴 대통령은 다치지 않았고 파편 등으로 인한 건물 손상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4일(현지 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빌럼 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을 만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크렘린궁은 “이번 행위는 러시아 대통령의 생명을 노린 계획적인 테러 행위”라면서 “러시아는 적절한 시기와 장소에 보복할 권리가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하지만 이날 핀란드를 방문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헬싱키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푸틴이나 모스크바를 공격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 영토에서만 싸운다”면서 러시아의 주장을 반박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고문 미하일로 포돌랴크도 “우크라이나는 크렘린궁에 대한 드론 공격에 간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러시아가 자국민에게 전쟁 지속의 명분과 광범위한 사회동원 필요성을 부각하기 위해 자작극을 벌였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앞서 크렘린궁은 지난 3일(현지 시간) 새벽 우크라이나 드론 2대가 크렘린궁을 공격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러시아는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언제 어디서나 보복할 권리가 있다”며 보복 공격을 예고했었다. 크렘린궁은 4일 “이런 테러 행위에 대한 결정은 우크라이나가 아니라 미국이 내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미국이 배후라고도 주장했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3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으로 의심되는 동안 크렘린 상원 건물 돔 근처에서 강렬한 빛의 폭발로 비행 물체가 폭발하고 있다. 이 화면은 로이터가 입수한 영상.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3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으로 의심되는 동안 크렘린 상원 건물 돔 근처에서 강렬한 빛의 폭발로 비행 물체가 폭발하고 있다. 이 화면은 로이터가 입수한 영상. 로이터=연합뉴스

분석가들은 드론 공격이 발생한 지 12시간이 흐른 후 크렘린의 공식 발표가 나온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간 러시아 정부가 본토 공격을 공식적으로 언급하기를 꺼려온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이번 공격에 대한 러시아 정부의 메시지가 ‘고도로 조율’됐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서방의 군사 전문가들은 이번 드론 공격이 러시아의 ‘가짜 깃발’, 즉 위장 작전일 가능성을 내놓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두 대의 드론이 여러 층의 러시아 방공망을 뚫고 크렘린 심장부 바로 위에서 폭발하거나 격추됐을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며 “러시아 정부가 자국민에게 전쟁 위기를 부각시키고 더 광범위한 동원을 할 수 있도록 이 같은 일을 벌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