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앞둔 미국 정치권에서 난임 시술인 체외수정(IVE)에 대한 논란에 불이 붙고 있다. 체외수정(IVE)을 위한 냉동 배아도 사람에 해당한다는 앨라배마주 대법원의 판결 때문이다.
앨라배마주 대법원이 지난 16일 냉동 배아도 태아이며 이를 폐기할 경우 법적 책임이 따른다고 판결했다. 앞서 ‘배아는 아이의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소송을 기각한 하급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또한 보수 성향이 강한 앨라배마주는 연방대법원이 낙태권을 폐기한 후 주 차원에서도 전면적으로 낙태 금지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이에 더해 배아까지 사람으로 취급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번 재판은 실수로 다른 부부의 냉동 배아를 떨어뜨려 파괴한 한 환자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냐가 쟁점이었다. 이에 앨라배마주 대법원은 “태어나지 않은 아이도 아이”라고 판단. 재판부는 냉동 배아도 불법 행위에 따른 미성년자 사망 관련 법에 따라 아기와 같은 법적 보호를 받아야 한다면서 “이는 태어났든 안 태어났든 모든 아이에게 재한 없이 적용된다”라고 밝혔다.
특히 톰 파커 앨라배마주 대법원장은 성경을 인용해 “모든 인간의 생명은 심지어 출생 이전에도 하나님의 형상을 품고 있으며, 그들의 생명은 하나님의 영광을 지우지 않고서는 파괴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시험관 시술 시 임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다수의 배아를 만들어 냉동 보관하며, 임신에 성공한 부부는 보관해둔 배아를 기부하거나 폐기한다. 이번 판결로 임신 성공 후 배아를 폐기하는 부모나 의료기관이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될 수도 있다. 이에 의료계는 “병원이 시술을 중단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낙태권 보호를 공약으로 내세운 바이든 행정부는 판결을 즉각 비판에 나섰다. 커린 잔파에어 백악관 대변인은 20일 “연방대법원이 낙태권 폐기 판결을 내렸을 때 예상했던 혼란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대법원을 비판. 대법관 9명 중 6명이 보수 성향인 연방대법원의 인적 구성과 낙태권에 비판적인 공화당 때문에 미 여성들은 임신 관련 시술, 응급 치료와 피임 등에서 모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지난 2022년 중간선거에서 혼란한 경제 상황과 조 바이든 대통령이 낮은 지지율 속에서 공화당의 압도적 우위가 예상됐지만, 민주당이 낙태 이슈를 선점하면서 여성의 투표를 끌어내 예상 밖 선전을 한 바 있다.
낙태권 쟁점화로 선거가 민주당에 유리하게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공화당 경선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23일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난 소중한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하는 커플이 IVE를 받는 것을 강력히 지지한다”라며 진화에 나섰다.
미 매체 액시오스(Axios) 조사에 따르면 미국 국민 3분의 2가량이 앨라배마주 대법원의 판결에 반대하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정치 성향에 따라 응답이 갈리기도 했다.
28일(현지시간) 미 매체 액시오스(Axios)가 지난 23~25일 18세 이상 미국인 10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66%는 “IVF을 위해 만들어진 냉동 배아도 태아”라는 판결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찬성은 31%.
정치 성향에 따라 응답이 갈리기도 했다. 진보 성향의 민주당 지지자들은 IVF 판결에 82%가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찬성은 17%.
보수 성향의 공화당 지지자들은 IVF 판결에 49%가 반대, 49% 찬성한다 밝혔다.
대법원 판결 후 일주일 뒤 실시된 해당 설문조사에서 IVF 판결을 알고 있는 공화당 지지자는 35%에 그쳤다. 하지만 민주당 지지자의 65%는 알고 있다 응답했다. 액시오스는 IVF 판결이 민주당 진영에서 얼마나 빠르게 퍼졌는지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판결로 거센 역풍이 일자 공화당이 의석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앨라배마주 상·하원은 29일(현지시간) IVF 시술 제공기관 보호를 위한 법안을 처리했다.
지난달 27일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상정돼 이틀만에 상·하원을 통과한 이 법안은 IVF 시술을 제공하는 기관에 대한 민·형사상 면책권 부여를 골자로 한다.
냉동 배아의 법적 지위 관련한 논쟁을 피하면서 IVF 시술 제공에서 발생할 수 있는 ‘배아 손상이나 사망’과 관련한 법적 책임을 묻지 못하도록 해 난임부부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앨리배마주 공화당은 법안 토론 등 후속절차를 거쳐 이르면 6일 케이 아이비 주지사의 서명을 받아 해당 법안을 발효시킨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