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회담이 언쟁 속에 합의 없이 마무리되면서 우크라이나와 러시 종전 외교는 난관에 봉착했다.

이날 회담은 트럼프 대통령이 2월12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를 시작으로 착수한 종전 외교에서 반(反)러시아 진영 내 1차 의견수렴을 마무리하는 자리가 될 수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프랑스, 27일 영국과 각각 정상회담을 하며 전쟁의 간접 당사자 유럽 주요국 의견을 들었다. 이후 직접 당사자인 우크라이나와 정상회담 뒤 ‘종전안’을 만들어 푸틴 대통령과 담판을 지으려 구상한 것으로 보였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대가로 희토류 등 광물개발권을 갖길 원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러시아를 상대할 수 있는 군사력을 가진 유일한 국가인 미국의 안전보장을 바라는 젤렌스키 대통령 간에 ‘광물협정’이라는 타협을 만들어 낼 것으로 예상됐다. 광물 협상이 마무리 단계라는 미국 측 주장과 달리 두 정상은 언론이 지켜보는 가운데 백악관 집무실에서 설전을 벌였다.

두 정상은 전쟁을 보는 입장이 판이하게 달라 충돌한 양상이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설전을 벌였다. AFP=연합뉴스

취임 이후 정상회담때마다 마치 TV리얼리티 쇼를 하듯 취재진이 있는 상황에서 수십여분씩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로 인해 두 정상의 말싸움은 전세계에 그래도 중계됐다.

미국의 지원없이 전쟁을 이어가기 어려운 우크라이나가 ‘양보’를 해서 조기에 종권을 이뤄야 한다는 입장을 트럼프는 개진했다. 러시아로부터 영토 침공을 당한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한 연대감 표현이나 러시아 비판은 없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살인자에게 영토를 양보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백악관을 떠나 SNS에 올린 글에서 젤렌스키는 “정의롭고 항구적인 평화가 필요하다”고 쓴 데서 보듯 점령당한 영토 반환 문제와 미국의 안전 보장 문제에서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당시 상황이 담긴 영상을 봤다는 쿠르스크 전선의 우크라이나군 병사 올렉산드르(40)는 “와우(wow)”란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우리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다. 부끄러운 평화보단 전쟁이 낫다”고 마음을 다잡는 모습을 보였다고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우크라이나 정치 전문가 마리아 졸키나는 “그(젤렌스키)가 자신을 억누른 것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인정한다”면서 “오늘의 쇼에서 젤렌스키는 그 개인을 넘어 우리 모두를 대표하고 있었다. 당신의 주된 카드는 자신의 나라를 지닐 권리와 존엄, 그리고 이를 수호할 용기였다”고 말했다.

안드리 예르마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비서실장도 엑스에 올린 게시물에서 “영웅적인 우리나라의 국익을 지키는 대통령을 지지한다. 어떤 상황에서도”라면서 “우리는 우리편에 서 있는 이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을 지켜보는 자국민 앞에서 ‘기백’을 보여주기는 했으나 미국의 지원없이 러시아와 항전을 이어가긴 어렵다는 것이 국제 사회의 대체적 평가다.

유럽의 지원이 있지만 그 역시도 한계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본다.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을 상대로 추가 군사 지원 중단 등 카드를 써가며 휴전안 수용을 강도높게 압박할 가능성도 있다. 일정한 냉각기 후 젤렌스키 대통령이 미국과의 합의를 모색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지만 입장 차이로 조기에 봉합이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 개선 행보와, 유럽 및 우크라이나와 미국 사이의 균열 양상이 서로 엇박자를 내면서 종전 협상에 난항이 예상된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러시아는 회담 파국의 책임을 젤렌스키에게 돌리는 모습이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텔레그램에 올린 글에서 “트럼프와 밴스(J.D 밴스 부통령)가 어떻게든 스스로를 억제해 이 인간쓰레기를 때리지 않은 건 자제력이 낳은 기적”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