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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둑이라는 제재를 통해 동양적 유현함을 표현한 이인문의 '위기도'. |
우리나라의 바둑 역사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구려의 승려 도림이 백제로 거짓 망명하여 개로왕에게 접근한 이야기가 삼국사기에 실려 있다. 신라에서는 효성왕과 신충이 바둑으로 우정을 맺고 나중에 군신관계가 된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과거에 조상들이 즐기던 바둑이 쭉 이어져서 오늘날에는 대중적인 여가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세월이 많이 흘러 바둑이 스포츠로 분류되고 있고 프로선수들이 인기 직업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은 바둑에 대한 특별한 인식이다.
바둑을 즐거운 오락으로 활용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은 바둑을 고상하고 격조 있는 문화로 인식을 한다. 한 철학자는 "바둑 속에 철학이 있고 도가 있다"고 말했는데, 한국과 일본에서는 바둑을 하나의 예도(藝道)로 간주하는 사람이 많다.
이처럼 바둑을 흥미로운 유희와 고상한 예도의 상반된 두 측면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을 고려대 대학원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한 유주희 씨가 조선시대의 위기도 즉 바둑그림을 통해서 분석하였다.
유주희 씨는 '조선시대 위기도 연구'라는 제목의 석사 논문에서 34개의 조선시대 바둑 그림을 '선인(仙人) 위기도'와 '문인 위기도'로 분류했다. 선인 위기도는 문인들이 탈속의 경지를 추구하면서 그린 선계(仙界)의 모습이고, 문인 위기도는 문인 자신들의 대국 모습이다.
선인 위기도에서는 그림(이인문의 위기도)과 같이 바둑을 동양의 유현함이 담긴 세계를 묘사했고, 문인 위기도에서는 여흥으로 즐기는 일반세계의 모습을 그려냈다. 조선시대 후기엔 우아한 풍류보다는 유흥을 목적으로 한 대국 장면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바둑에 대한 이와 같은 이중적 태도는 오늘날에도 흔하게 볼 수 있다. 많은 팬들은 바둑에서 전쟁놀이와 유사한 재미를 느끼며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그러면서도 바둑을 격조 높은 기예나 문화로 간주한다.
그래서 어떤 팬은 바둑이 스포츠로 들어가자 격을 떨어뜨린다며 아쉬워했다. 자녀에게 바둑을 배우도록 하는 학부모들은 바둑 기술보다 지적 능력이나 인성교육, 정신수양 등과 같은 측면을 기대한다.
오락적 게임에서 철학을 논하고 도를 얘기하는 것은 다른 게임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 바둑에서 이런 면을 부각시키는 것은 우리나라의 독특한 바둑문화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우리 선조들의 바둑에 대한 문화적 인식이 전해져 온 결과라고 여겨진다.
바둑 속에 담긴 이러한 고상한 요소를 발굴하여 인간삶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문화콘텐츠로 개발해 보면 좋을 것 같다.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 선인 - 仙人
# 문인 - 文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