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 안도현 글 / 이혜리 그림 / 계수나무 / 9800원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 교과서에서 한 번쯤 봤을 만한 이 말에는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즉, 사람은 서로 서로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고, 많게든 적게든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깊은 산 속에 혼자 집을 짓고 살고 있더라도 쌀을 사다 먹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면 농사꾼과 자전거 만드는 공장 노동자와 맺은 사회적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림동화인 이 책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미처 깨닫지 못한 수많은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한다. 보이지 않는 것에는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작은 도토리와 불필요해 보이는 낙엽의 관계를 통해 관계의 의미에 대해 풀어 놓는다.

'톡…….'

어느 가을날 갈참나무에 매달려 있던 도토리가 땅으로 떨어진다. 어둠 속에 갇힌 도토리에게 이내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바로 얼마전 까지만 해도 같이 나무에 매달려 있던 나뭇잎의 속삭임이었다. "걱정하지마, 지금부터 우리가 너를 지켜 줄게."

이제는 낙엽이 된 나뭇잎들의 호의에 도토리는 가슴이 찡해 눈물이 날 것 같다. 땅에 떨어진 도토리는 움직여 보고 싶지만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인간과 쥐들의 위협에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도토리에게 낙엽들이 또 한 번 속삭인다.

"안돼 도토리야, 너는 끝까지 살아남아야 해. 그래야 우리도 다시 태어날 수 있어. 너와 우리가 또 다시 만나 새로운 관계를 맺는거야. 그게 우리들의 꿈이야." '관계'가 무엇인지 모르는 도토리에게 낙엽들은 '관계란 서로 도와주면서 함께 살아간다는 뜻'이라고 일러준다.

흰 눈이 내리는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와 도토리를 긴 잠에서 깨어난다. 주변을 둘러보니 자기를 꼭 껴안아주던 낙엽들이 썩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속상해 하는 도토리에게 낙엽들은 말한다. "넌 지금 큰 일을 하는 중이야. 네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다시 태어날 수 있는걸."

바로 그 때 도토리는 갑자기 온몸이 터지는 고통을 느낀다. 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단단한 껍데기를 찢고 싹을 틔운 것이다. 그제서야 도토리는 낙엽들이 말한 '관계'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작가는 보잘 것 없고 나약한 도토리와 말라 비틀어져 전혀 쓸모 없어 보이는 낙엽의 관계를 통해 아이들에게 각자 자신이 품고 있는 관계의 씨앗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 한다. 아직은 자기 안에 들어있는 희망의 씨앗을 알지 못할 지라도 사회와 관계를 맺으면서 그 싹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이다. 따뜻한 색감과 섬세한 터치로 완성된 그림은 관계가 가진 포근함과 희망을 한 층 더 의미있게 전달하고 있다. 귀여운 도토리의 변화무쌍한 표정을 보는 것은 이 책의 또 다른 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