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말 누군가로부터 책 한권을 받았습니다. '책읽는 사람들'(사진)이란 제목의 75쪽짜리 소책자더군요. 그냥 던져 놓으려다 부제에 눈길이 이끌렸습니다. '책읽는 삶의 풍경을 만들어가는 학교 이야기-창간호/데레사여고'. 그저 그러려니 하고 몇 페이지를 들추다 다 읽고 말았지요. 아, 그곳에 학교 독서활동의 노하우와 콘텐츠가 가득 들어있을 줄이야….
지난 한해(2006년) 재학생 독서활동의 성과물이라고 하는데, 내용은 어떤 보고서보다 알찼습니다.
내용 중 유난히 눈길을 끈 것이 '릴레이 독서' 였습니다. 데레사여고는 지난해 4월부터 12월까지 8개월간 학부모·교사·학생 팀으로 나눠 독서 릴레이를 벌였다고 합니다. 진행 방식은 이렇습니다. ①각 팀별 출발 주자 8명 선정 ②팀별 지정 도서를 읽은 뒤 독서 기록장에 독후감 작성, 2번 주자에 전달 ③마지막 주자는 지정도서와 독서 기록장을 담당교사에 제출 ④심사 평가 및 시상.
임무를 완수한 이들은 학부모 7명, 교사 11명, 학생 30명 등 총 48명. 책을 읽고 감상을 전하며 결승점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너무나 소중한 독서체험을 했다는군요. 마음과 마음을 이어 릴레이를 했으니 추억도 쌓였을 테죠.
'한국의 미 특강'(오주석)을 읽은 천경화 교사는 "두 눈이 새롭게 뜨이는 것을 느꼈다"고 전했고, '원미동 사람들'(양귀자)을 읽은 학부모 최미숙 씨는 "단칸방에서 힙겹게 신혼 살림을 하던 시절이 생각났다"고 고백합니다. '간이역에서 사이버 스페이스까지'(최재봉)를 읽은 2학년 김혜진 양은 '우리집에서 데레사까지'라는 기발한 제목의 글로 최우수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학교 주변을 탐사한 뒤 사진과 그림을 곁들여 작성한 재치 만점의 독후감이더군요.
'독서퀴즈대회'도 재미가 있더군요. 퀴즈대회는 누가 '황금징(골든벨)'의 주인공이 되느냐도 관심거리였지만, 전교생이 함께 어울려 실력과 장기, 재치를 자랑한 독서축제였다는데 더 의미가 있었다고 합니다. 데레사여고는 또 매년 문학기행까지 갖고 있는데, 지난해 10월말 강진·해남·보길도 기행에선 7개 모둠 84명의 학생들이 '하멜 표류기'(서해문집) 등을 '촌극'으로 꾸며 독서 역량을 과시했다는군요.
이 모든 것을 누가 기획하고 주도했을까요. 현정실 교장선생님의 독서 철학이 바탕이 되었겠지만, 실제 기획·연출을 도맡은 주역은 국어 담당인 서형오(41) 교사 였습니다. 그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바보같은 질문 하나를 던졌습니다. "지금 논술이 관심사인데, 시간이 많이 드는 독서가 과연 도움이 될까요" 서 교사는 이렇게 답하더군요. "논술은 기술이라고 하죠. 그런데 기술로는 부려 쓸 수 있는 바탕이 안나와요. 책을 한 권 읽으면 연관 지식이 고구마처럼 주렁주렁 달려 나오죠. 이 고구마로 논술을 삶아 먹어야죠."
'책읽는 사람들'의 깊은 뜻을 알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