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작가 장정일이 '공부'라는 책을 낸 적이 있습니다. 비록 고등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스스로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써 만만찮은 지적 내공을 갖춘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작가인 장정일은 이 책에서 "젊었을 땐 아웃사이더로 떠돌면서 '싫다!'고 외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만 나이 들면 사회의 구조와 배면(背面)을 살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 의무를 충실히 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모름지기 공부란 배우고 깨달으며, 삶의 길을 열어가는 평생 친구 같은 것이라고 했죠.

공부는 왜 할까요. 공부하는 기술은 발전하고 있지만 인문학적 조망은 결여돼 있는 요즈음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의문을 던져 봅니다. '대학에 가기 위해' '승진하기 위해' '돈 벌기 위해'는 좋은 대답이 아닙니다. 이런 목적을 위한 공부는 괴로울 수밖에 없고, '목적을 향한 과정을 즐긴다'는 명분도 괴로움을 잊기 위한 자기 위안일 뿐이겠죠.

사실 오늘날의 공부는 입시와 취업을 위한 천박한 출세주의에 매몰되어 버린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모든 청소년은 입시와 시험의 덫에 걸려 죄수 아닌 죄수가 되어 오랜 수형생활을 감내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죠.

조선 시대에 공부는 어떠했을까요. 현재 한국학대학원 교수로 있는 정순우 씨가 쓴 '공부의 발견'은 퇴계 이황, 화담 서경덕, 남명 조식, 순암 안정복, 다산 정약용 등 조선 선비들의 공부 방법과 교육열에 대한 역사적인 궤적을 따라가면서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교육의 새로운 대안 찾기를 시도합니다.

순암 안정복은 "공부의 '공(工)'자는 여공(女工)의 '공'자와 같고 '부(夫)'자는 농부(農夫)의 '부'자와 같다"며 "이는 사람이 학문을 하되, 여공이 부지런히 길쌈을 하고 농부가 농사에 힘쓰듯 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풀이했습니다.

퇴계 이황은 후학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널리 행해지는 일이란 그 범위가 천 가닥 만 갈래여서 진실로 끝이 없습니다. 이렇게 끝없는 곳의 다단한 것을 낱낱이 만족하게 하려면 궁리(窮理)와 거경(居敬)의 지극한 경력이 없으면 끝내 이룩하기가 어렵습니다."

'공부의 황금시대'인 조선시대와 달리 오늘날 '자본주의의 탐식성과 게걸스러움에 질식당한 교육'은 야스퍼스의 말대로 '기술을 가진 네안데르탈인'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질식사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공부를 해야겠습니다. 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은 정치권력이나 자본주의적 욕망에 쉽게 속거나 휘둘리는 사람이 되게 마련입니다. 새 학기가 시작됐습니다. 꼬이고 꼬인 이 시대의 교육에 일침을 가하는 옛 성현들의 죽비소리에 귀 기울여야겠습니다.

유창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