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김인환씨가 쓰레기를 이용한 설치미술 작품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순룡 기자seosy@kookje.co.kr

연금술이란 무엇인가. 비금속(卑金屬)을 귀금속(貴金屬)으로 변화시키는 화학적 기술을 말한다. 비(卑)가 귀(貴)가 되는 연금술의 비밀을 터득하게 되면 쓰레기도 화학적, 질적 변화를 통하여 보석과 같은 빛을 발한다.

쓰레기를 예술로 승화시키고 있는 화가가 있다. 소두(蘇斗) 김인환(66) 씨다. 질적 변환을 시켰다는 의미에서 김 씨를 연금술사로 부를 만하다.

사람들은 쓰레기를 사갈시(蛇蝎視)한다. 하지만 김 씨는 남들이 모두 꺼려하는 것을 소중히 다루고 대접했다. 자발적인 넝마주이처럼, 아니 아무도 모르게 눈빛을 은은히 발하며 산 속을 헤매는 심마니처럼 열심히 줍고 찾았다. 땅 속에서 발효를 거부하는 거친 쓰레기를 모아 환경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김 씨는 매년 봄이면 자신이 살고 있는 경남 밀양시 초동면 봉황리 외지대 마을 봉황저수지 주변에서 주은 쓰레기로 '공기와 물을 위한 설치미술전'을 개최하고 있다. 올해로 네 번째다.

외지대 마을은 봉황이 날개를 펼친 형상의 산으로 둘러싸인 청정 산촌 마을. 김 씨의 집 바로 앞에 있는 봉황저수지에는 참붕어 등 민물고기가 많아 원근의 낚시꾼들에게 인기가 많다. 전형적인 산촌마을을 배경으로 한가롭게 낚시를 드리우고 있는 강태공들의 모습은 한 폭의 풍경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봉황저수지는 저 멀리서 보면 그림처럼 아름답지만 가까이서 보면 '쓰레기 천국'이다. 6년 전 부산에 살다 이곳으로 이사를 온 김 씨는 지천으로 널린 쓰레기를 보고 있자니 악다구니가 터져나왔다. 여름이면 인근의 축사에서 풍기는 악취와 폐수로 고통의 연속이었다.

낚시꾼들에게, 이웃 주민들에게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고 '소리쳐' 봤지만 공염불이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생명과 환경, 물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설치미술전이다.

버려진 페트병을 이용해 만든 작품.

김 씨는 1년 동안 봉황저수지에 버려진 각종 쓰레기를 수거했다. 건져낸 쓰레기는 낚시꾼이나 주민들이 버린 폐비닐 페트병 등 몇 t이나 될만치 많고 다양했다. 자동차 부속품, 폐전자제품, 폐시계, 폐우산 등 가정용 생활용품 등이 우후죽순처럼 널려 있다.

김 씨는 "쓰레기로 만든 작품으로 깨끗한 환경을 지키자는 메시지를 마을 주민들과 낚시꾼에게 전해보자는 취지로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처음에는 이웃 주민들이 땅값 떨어진다며 따가운 눈초리를 보냈지만 지금은 많이 이해하고 동참한다고 덧붙였다.

올해 전시에는 7개 작품이 설치돼 있다. 지상에 철사다리를 세우고 층계 곳곳에 빗자루와 시계를 매달아 둔 '태극기 휘날리는 이상한 시간들'은 시도 때도 없이 청소하자는 소박한 의미가 들어 있다. 시골에서 수확한 감자나 고추를 담아 두는 붉은 망주머니에 온갖 쓰레기를 가득 담아 4m 높이의 대나무에 매달아둔 '일년 수확'은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말고, 정성껏 모았다가 버릴 곳에 버려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전신주에 감나무 삭정이를 철사로 묶고 폐비닐봉지를 주렁주렁 매달아 바람에 날리도록 한 '악취는 바람타고 공기 속으로', 산불조심 물조심 똥조심 낚시바늘조심 기형붕어조심 등의 글자가 쓰인 깃발로 장식한 '조심 깃발 휘날리다', 낚시꾼들이 버리고 간 미끼통 30여 개를 묶은 '열매가 열렸다', 저수지의 폐수에 더러운 느낌의 물감을 풀어놓은 '물-생명'도 선보인다.

모은 쓰레기와 포대를 활용해 만든 설치미술 작품. '고맙습니다 쓰레기 일동?'이란 글귀가 이채롭다.

'감사합니다. 쓰레기 일동'은 흩어져 있던 쓰레기들이 자신들이 있을 자리를 찾아간다며 즐거워하는 표정을 담고 있다. 설치작품 곳곳에는 '낚시꾼은 쓰레기 놈들 가지고 가라' '당신 쓰레기 당신네 집에 가지고 가라'는 일갈이 표어처럼 적혀있다.

그는 "자연 생태계를 보전해야 한다는 생각의 실천으로 쓰레기 입체물 설치작업을 벌이고 있다"면서 "작품 발표는 자랑도 아니고 경력 축적도 아니며 사회 참여이자 참여 의식의 실천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미술은 단순히 장식품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 밀착해야 한다는 소신을 또렷하게 밝혔다.

쓰레기, 김 씨는 그것을 따뜻이 품어 예술로 승화시키는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부인과 함께 노모를 모시고 살며 안빈낙도의 삶을 실천하는 김인환 화가. 그가 살고 있는 외지대 마을과 농가 창고를 개조한 작업실은 생명 사상을 잉태하는 공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