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픈스페이스 배에서 미술평론가와 화가들이 만나 작품을 놓고 열띤 공방을 벌였다. 김동하 기자 kimdh@kookje.co.kr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내 글의 독자는 단 한 사람, 그 영화를 만든 감독이다. 내 글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에는 사실 관심이 없다"라고 했다. 미술평론가들도 정성일과 같은 생각일까.

1차 텍스트를 생산하는 화가와 그 텍스트를 풍성하게 해석하는 평론가가 상호 소통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 2~3일 부산 기장군 철마면 삼성리 '오픈스페이스배'에서 열린 'Door to Door 5'라는 대안공간네트워크 심포지엄에서 이들은 미술이라는 주제를 놓고 열띤 공방을 벌였다. 70여 명의 관객들도 자리를 함께 해 열기를 더했다. 행사는 미술 작가 강태훈 신무경 이광기 이선경 사타가 프리젠테이션을 하면 평론가인 박영택 이대범 진이정 임정희 조선령 강선학이 일침(?)을 가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어 심점환 김은주 심문섭이 '까칠한 40대' 를 주제로 참가자와 대화를 나눴다. 20~30대 청년 작가들은 평론가들의 '장풍'에 다소 밀리는 기색이었지만 재기발랄한 입담으로 빠져나갔고, 불혹을 넘긴 40대 작가들은 예리한 비판의식으로 현상을 똑바로 직시하며 날카로운 담론을 생산하는 평론 부재를 아쉬워했다. 현장에서 쏟아진 무수한 공격과 방어의 말들을 재구성해 이 시대 작가와 평론가의 관계를 조명해 본다.


# 미술아 놀자(놀이를 기초로 한 영상작업을 통해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작가는 '한국도로공사의 답변'이

사타의 'Fowl story'

라는 영상 작품에서 고속도로에 방치된 돌멩이로 피해를 입자 도로공사에 시비를 걸고 있다. 스피디한 화면 전개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문자서비스를 확실하게 제공하고 있다).

▲재기발랄한 작가=(한 작품이라도 더 보여주고 싶은 작가적 욕심을 은근히 드러내며)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것보다 영상 작품 하나 더 보는 것 낫지 않겠냐. 작업 의도에 대한 설명은 시간을 아끼기 위해 평론가가 질문하면 답하겠다.

▲진지한 평론가=(냉정한 어투로) 아이디어로만 승부를 걸어 생각의 흔적을 느껴볼 수 없다. 방법적으로는 신선하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너무 뻔하다. 형식에 편승해 내용에 대한 천착이 약해 보인다. 또다른 은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에 TV화면에 나오는 광고나 영상보다 나은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이선경의 'Face'

▲덜 진지한 평론가=전반적으로 박진감 있고 감각적인 작품이라 생각한다. 내가 재미있다고 본 이유는 작가의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지한 평론가'의 지적은 너무 전체론적이다. 그렇다면 피카소보다 나은 작가가 아니면 작품 못하는 것이냐. 스피디한 영상에 문자가 따라 붙는 최근 이미지 생산자들의 방식을 보여줄 뿐이다.

▲재기발랄한 작가=(놀이는 놀이일 뿐이라며) 혹시 빠르게 흘러가는 글자 읽기가 힘들어 그런 것 아니냐. 세상을 지루하지 않게, 심심하지 않게 살려고 하다 보니 생각이 왔다리 갔다리 한다. 그냥 가볍게 세상에 대해 시비를 걸어 봤다. 시비의 깊이는 없다. 적당한 선에서 시비 걸고 빠졌다. 아마 40대 넘어가면 세상에 대해 신랄히 비판할 것이다.


# 주변의 시선은 아랑곳 않은 채 혼자서 외쳐대기(기화하는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는 작가의 경우)

이광기의 영상작품 '커뮤니케이션'

▲순진한 작가=나는 주로 자화상 작업한다. 그림은 나의 상처를 치유하고 평온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유년기의 상처에 충격받아 성격이 폐쇄적이다. 요즘 자신과 화해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아직 다중인격자처럼 혼란스럽다. 나는 왜 자아가 여러 개일까. 때론 자기혐오에, 때론 자아도취에 빠진다. 추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작가란 무엇이냐.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 않은 채 몸부림치는 것 아니겠냐.

▲냉정한 평론가=너무 정형화된 자아다. 상처가 어떻든 간에 존재론적으로 규정해 봐야 동어반복만 나온다. 자꾸 '아파, 아파'라는 이야기 들으면 지루해진다. 객관적으로 승화할 필요가 있다. 폐쇄적인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폐쇄적인 세계가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불러일으켜야 한다. 즉 스스로를 객관화할 수 있는 태도, 그것이 바로 예술가의 태도다.

▲좀 더 냉정한 평론가=(비꼬듯이) 계속 혼자 슬퍼해라. 작품은 공유되어야 한다. 자기 몰입에 빠져 있으면 안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지독한 관심을 타인에게 돌려봐라. 작품의 마감이나 드로잉에서 아마추어 냄새가 난다. 상처받는 질문일지 모르겠지만 그것도 의도된 것이냐.

▲순진한 작가=자기 복제가 이뤄지고 반복되지만 나는 하루 하루 다르다고 느낀다. 작가적 고집으로 스스로 갇혀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그것도 모르냐는 어투로 ) 의도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비판에 절대 상처받지 않는다.


# 중요한 것은 새로운 재능의 발견(사진을 합성해 신선한 재미를 선사하는 '뽀샵' 작가의 경우)

▲여물지 않은 작가=(경쾌한 어투로) 산보 오는 느낌으로 왔는데 이렇게 빡셀(?) 줄 몰랐다. 성인사이트 등 필요하면 닥치는 대로 이미지 끌어다 쓴다. 주위에서 초현실주의니 뭐라 해도 안중에도 없다. 사진을 하면서 이런 재미가 있구나 느꼈다. 포토샵 10년동안 다루다 보니 손에 익었다. 돈이 없어 모델은 못쓰겠더라. 2003년에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를 처음 알았다. 그때부터 '마 선생'이라고 부르며 몰두했다. 마 선생 '삑사리'니, 되지도 않는 사진 올리지 말라는 비판 많이 받았다. 그래도 니가 한번 해봐라, 라는 심정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할 말을 잃은 평론가=작품 세계가 굉장히 자유롭고, 비주류와 하위문화에 대한 맥을 갖고 있다. 스토리텔링 강화해 독창성을 가졌으면 한다. 가능성은 있지만 포지션이 아직 어정쩡하다. 좀 더 한쪽으로 밀고 나갔으면 한다. 이미지 조작으로 충격줘야겠다는 강박 없었으면 한다. 그건 그렇다 치고 미술판에 들어왔으니 죽자사자 할거니.

▲여물지 않은 작가=(싱글벙글대며) 좋은 말씀 감사하다. 나이 먹으면 나아지지 않겠나. 작업하기 위해 회사 그만뒀다. 그러면 이 분야에서 열심해 해야 살아남지 않겠는가.


# 여담(餘談)=40대 작가들, 평론가에 일갈

▲전투적인 40대 작가=서울에서 활동하는 비평가들에게 할 말 많다. 비평의 잣대 의심스럽다. 부산 작가와 서울 작가 작품성에 별다른 차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전시에서 소외되고 있다. '아시아의 블루칩'이라는 최소영 등 국내의 젊은 작가들, 제대로 비평의 과정을 거치고 소개되는지 의심스럽다. 요즘은 전시와 평가의 과정을 생략하고 팔리고 있고, 그런 작가의 작품이 매체에서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는 40대 여성 작가=작가도 외롭지만, 평론가는 더 외롭다. 그럼에도 평론가는 색깔 분명히 해야 한다. 지역에서는 평론가가 소수이기 때문에 색깔 밝히기가 곤란한 측면이 있지만 평론가가 자신의 생각을 뚜렷하게 밝히는 것을 업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해야한다. 우리나라 문화는 동맥경화증에 걸렸다. 서울 평론가들 부산에서 올라온 지역작가라는 꼬리표를 달지 않았으면 좋겠다.


평론가와 작가는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에 비유될 정도로 밀접하다. 하지만 생산적 긴장 관계(언론과 권력의 관계를 두고 한 노무현 대통령의 표현)가 형성되지 못하면 평론가는 주례사 비평에 그치기 일쑤고, 화가들은 자족적인 세계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이날 심포지엄은 화가가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이 치열하게 모색되기에는 역부족인 자리였지만, 그래도 공생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동업자 관계임을 분명히 인식하는 마당이었다. 평론가 임정희는 "작가들 이론에 대한 편견을 가질 필요없다. 평론가들이 이론 많이 알아도 작품 하나 못 만든다"면서 "서로 이렇게 만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래 좀 더 치열하게 살면서 윈-윈 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