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가, 작품만 읽어선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소설 속 장면들에선 낑낑대며 낮은 포복을 하는 80년대 대학생들('포복에 대한 명상')부터 통통 튀다 하늘로 솟아버릴 것 같은 젊은이들('로이 리히텐슈타인 풍의 여자')까지 등장인물은 다양하고, 문장은 딱딱 끊어치는 것이 발랄 경쾌하다.

소설가 이상운(48) 씨의 소설집 쳇, 소비의 파시즘이야(문이당·9800원)가 최근 나오자마자 언론의 관심을 낚아챈 것은 작가와 작품 자체의 개성 그리고 재미 때문일 것이다. 검증받은 그의 내공도 무시 못할 요인이겠다. 그는 올해로 등단 10년 차. 1997년 장편 '픽션클럽'이 '세상의 위선과 허위에 대한 풍자와 해체'로 관심을 끌었고 지난해에는 '내 머릿속의 개들'로 '문학동네' 작가상을 탔다. 지금까지 장편 5편, 소설집 4권('쳇, 소비의 파시즘이야' 포함)을 냈다.

'쳇, 소비의…'를 읽노라면 유쾌하고 재미있다. 기존의 믿음, 기존의 관념, 기존의 가치를 찌르고 뒤집는 '풍자와 해체의 명수' 계보가 그에게도 닿아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작가가 겨냥하고 공략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 대상이 아주 분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은 표제작 '쳇, 소비의 파시즘이야'이다.

별 볼일 없이 진지하기만 하던 한 시인 지망생이 제약회사에 별난 상품 기획안을 제안했는데 이게 대박이 터진다. 그는 일약 유명한 광고인이 되고 돈도 많이 번다. 삶의 본질을 캐물으며 은둔과 침잠을 꿈꾸던 그의 시 세계 또한 자본주의의 물신성과 소비의 기쁨을 노래하는 감각의 제국으로 선회한다. 이게 또 대박이다.

그러나 소설의 화자인 여행작가 이마립은 이 유명하고 돈 많은 시인이 내면에다 대고 "모든 게 소비재가 되어 버렸고 추상적인 것이건 구체적인 것이건 우리는 다만 그것을 소비할 뿐"이라고 자신을 조롱하면서, 극한의 소비 기계가 되는 방식으로 자학하고 있음을 목격한다. 사람이 물건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가 주체가 되어 사람을 소비하는 현실을 진지한 듯 경쾌하게 꼬집는다.

그는 세상이 뭔가 보편적이고도 타당한 원리에 따라 마치 그 운명이 정해진 것처럼 운행된다는 주장을 크게 불신하는 듯하다. 나의 추억이 사실인지 공상인지, 내가 쓴 글이 진실인지 아닌지 등 작가는 의심도 많다. 이런 생각을 풀어내는 방식은 우연성이다. 우연한 만남, 우연한 사고, 우연한 여행 등등 보편적 질서의 틈을 쭉쭉 찢으며 파고드는 우연들이 '포복에 대한 명상''아버지 생각' 등 수록작 전반에서 중요한 구실을 한다. 그것이 필연, 질서, 이성적 논리의 지배 등 기성에 대드는 그의 도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