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마는 오지 않는다' '하얀 전쟁' 그리고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를 쓴 소설가로만 안정효(사진)를 기억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는 번역가이며 영어의 전문가다. 그는 미국 문학작품 속에 나오는 흑인노예들의 어수룩한 영어를 우리 말의 사투리로 번역해낸 창조적 번역가이며 '가짜 영어사전' 같은 영어학습서를 펴낸 영어공부법의 전도사이기도 하다.

작가 안정효 씨가 뒤집어지는 영어라는 영어 학습서를 펴냈다. 한마디로 이 책은 보기 드물게 탁월하다.

영어 잘 가르친다고 소문이 나서 전국에 수많은 분원을 거느리고 있는 한 영어학원의 교재를 최근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한 적이 있다. 그런데 사실 지금은 그 책의 내용 중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 이 교재가 평범한 기본 패턴을 수없이 반복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교재는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발음을 강조하고 있었다. '이왕 배우는 영어 처음부터 제대로 배우자'고 마음 먹은 영어학습 초심자들에게 이는 매우 요긴하고 유효한 방식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게 다인가. 영어는 단순히 '미국의 언어'가 아니다. 세계와 대화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보편적인 소통의 도구에 가깝다. 미국영어, 영국영어, 호주영어, 인도영어, 필리핀영어, 홍콩영어, 캐나다영어, 남아프리카공화국영어, 아일랜드영어 등은 사실상 따로 존재하고 발음과 표현방식 등 그 양태도 다르다. 이밖에도 영어를 나름의 방식으로 준공용어로 쓰고 있는 나라는 많다.

미국영어의 미끄러운 발음과 관용적 표현을 배우는 데만 집착하는 영어학습은 부산말로 하면 한마디로 '택도 없는' 짓이다. 중요한 건 메시지이며 그 메시지를 풍부한 어휘와 세련된 표현으로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방법을 총체적으로 배우는 것이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받고 투 쁘라스 뚜리 쁘라스 뚜리(2+3+3)라는 영어표현을 썼다.… 하지만 그의 발음이 나쁘다며 반 장관을 사무총장 자리에 앉히면 안된다고 반대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이 책 35쪽)

'뒤집어지는 영어'는 안정효 씨가 봐왔던 약 2000편의 영미권 영화에서 대사들을 뽑아 예문으로 쓰고 있다. 이것이 이 책의 핵심이며 엄청난 강점이다. 영어 영화 2000편이라니…. 이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안정효 말고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는 이 영어 대사들을 동원하고 더블 토크(double talk: 발음은 비슷하지만 상황에 따라 다른 뜻으로 쓰이는 영어)의 개념을 활용해 풍부하게 영어 학습의 방법을 제공한다.

'너 어제 뭐했니' '응, 나는 어제 존의 집에서 존과 존의 친구 메리와 함께 TV를 봤어' 식의 판에 박힌 예문들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 뇌리에 콱 박히는 특별한 대화를 통해 메시지와 풍성한 표현력 중심의 영어를 익히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구체적인 방법을 제공한다.